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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없는 삶 (2021년 8월 29일 주일낮설교)

부족함이 없는 삶

 

8. 29, 2021

:시편23:1-6

說敎:崔仁根

 

톨스토이가 즐겨하던 이야기 중에 어떤 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니는 땅은 모두 다 네 것으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농부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좀 더 많은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땅을 차지하고 나서 자신이 시작했던 출발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어리석거나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의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고 말입니다. 돈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만큼 그 돈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인생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이후라는 사실을 이 종이 수십 년 동안 숱하게도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돈이 많은 것과 행복한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당연히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삶의 근본목표는 행복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군 다윗의 고백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만족한 삶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8월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주일인 오늘은 이 귀한 말씀을 중심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에 대한 진리를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32:3-4)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시지만 가장 사람과 다르게 두드러진 것은 바로 공평하시고 진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공평하거나 진실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돈이 있으면 사랑이 없고 돈과 사랑이 있으면 자녀들이 문제아고 참으로 이제는 행복한 삶만 남았구나 하면 몸이 병들고......,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듯 공평하신 성품 그대로 우리 인생들을 인도하시고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하시려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두셨습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4:8-9)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렇게 된 요인이 있을 것이고 만약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렇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종이 전도사가 되고 오늘까지 부산, 서울, 미국에서 목회에 전념한 지가 내년 말이면 만 50년이 됩니다.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겪어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개인적으로 이 종에게 잘해주었던 사람들도 있고 너무나도 악하게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50년을 종합해 보니 추수 때와 같이 그 열매가 보이더라고요. 그 두 가지의 열매는 과연 극명하였습니다. 이 종에게 잘 해 주었던 성도들은 한결같이 본인과 자손들이 다 잘 되었으나 악하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비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종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를 쓴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낳은 아들 압살롬의 배신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 다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러던 중 유다광야에 머물고 있을 때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을 때 두 부류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시므이라고 하는 신하였고 다른 하나는 바실래라고 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시므이는 왕위를 잃고 쫓겨 다니는 다윗을 보고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났다고 판단하고 그 다윗을 독한 말로 저주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실래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힘겨운 피난생활의 다윗을 사심 없이 섬겼습니다. 다윗이 인생을 다 살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신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솔로몬을 불러 유언을 하였는데 예외 없이 이 두 사람에 대해 유언을 하였습니다.

(왕상2:7-9)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평이고 한 평생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에 있는 유익만을 위해 작은 자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바로 살고 바로 믿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하루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대를 이어가는 자손들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삶이 될 수 있는지는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달려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고 오늘의 부족함이 내일의 풍족함으로 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갱년기를 맞았을 때 외로움과 우울증에 많이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애지중지 하던 아이들은 다 자란 새들과 같이 미련도 없이 둥지를 떠나가 버리고 돈 번다고 정신없이 아귀다툼하며 함께 살아왔던 남편은 멀찌감치 멀어져 그저 함께 사는 동거인으로 변해버리고 망망한 대해에 혼자 떠 있는 一葉片舟(일엽편주)와 같이 황망한 세상에 혼자 버려져 있는 것과 같은 쓸쓸함을 온 가슴과 몸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외로움에 그만 마음의 병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여자들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은퇴한 남자도 더 더욱 외롭습니다. 뼈마디가 다 닳도록 일만하면서 낙도 없이 세월을 다 보내버리고 은퇴하고 나면 친구도 없지, 갈 곳도 없지, 당연히 밥 때에 먹어야 할 밥조차도 마누라에게 눈치 보이지......., 결국 인생이란 이렇게도 외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 인생들의 외로움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도 아닌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왕권을 빼앗긴 채 도망 다녀야 하는 다윗의 신세를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인생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절절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금 무엇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까?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대단한 신앙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렇게도 사랑하시고 자신의 모든 뜻을 그를 통하여서 이루셨던 것입니다.

(13:21-23)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믿음과 확신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들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큰 기쁨과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될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한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육신을 넘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인생 여정에 육신적인 것은 육이고 영적인 것만이 신령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5-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도 중요하시만 우리들의 삶이 육신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변화를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다윗과 같이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될 때 결코 일어나지 못한 채 넘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윗이 그 살벌한 반역자들의 칼날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제거하시고 다윗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여정에도 다윗과 같은 위기를 만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 때 다윗과 같이 당당하게 선포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들의 믿음이 위급한 상황에서 축복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놀라운 비밀을 잊지 말고 우리 또한 그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부족함이 없는 삶으로 행복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대상14:10)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장 대표직인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울 왕과 이스라엘 모든 용사들이 두려워 떠는 골리앗 앞에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늘날 이와 같은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잘 되면 교만하여서 망하게 되고 못되면 절망하여서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과 같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에 굳게 서게 되면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못 되도 하나님의 뜻이 계실 줄을 믿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한 번 보십시오. 어떻게 죽음이 촌각으로 다가오고 반역의 세력들이 창과 칼을 들도 쫓아오는데 유다광야에서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시나 지어 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고 말입니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배짱이 아닙니다. 그 누가 그와 같이 참담하고 두려운 순간에 이렇게 노래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고 철석같이 믿는 믿음이 있는 다윗만이 할 수 있는 여유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 절대 주권적인 믿음은 가장 비참하게 신하로부터 저주의 소리를 들을 때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삼하16:5-11)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다윗은 이렇듯 감히 신하가 왕인 자신을 저주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자신에게 하시는 것으로 인정하고 묵묵히 감내하며 참아냈던 것입니다. 과연 그는 신앙인이요 위인이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와 같은 다윗의 위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싸개 속에 품어주시고 지켜주신다고 먼 발취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던 아비가일도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삼상25:29-33)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은 아비가일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믿음과 지혜를 높이 평가하고 그 손에 피를 뭍이지 않고 돌아갔다가 결국 나발이 죽자 아비가일을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아비가일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불러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과 눈물을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한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드림으로 만사형통하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자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리고 그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시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없는 삶은 모든 것이 넉넉하고 다 갖추어져야 누리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성도들만이 누리는 특별한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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