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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형통하리라! (2021년 9월 19일 주일낮설교)

네가 형통하리라!

 

9. 19, 2021

:여호수아1:5-9

說敎:崔仁根牧師

 

이 세상에서 자식들이 잘 되기를 가장 소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두 말 필요도 없이 낳고 키우신 부모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이 잘 되기를 가장 바라고 소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이 세상은 악한 마지막 때를 맞아서 그런지, 부모님의 그 마음과 목사님의 그 소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잘 되면 다 자기 탓이고 못되면 다 부모와 목사 탓으로 돌리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주간 텍사스에서는 열다섯 살 난 소년이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강아지 2마리를 총으로 쏘아죽인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에는 자신도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기에 원인조차도 알 수 없이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참으로 너무나도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큰딸은 집에 없었던 관계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엄청난 충격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슬픈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목사는 끊임 없이 자식들과 성도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과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말세가 될수록 식어진다고 하니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24:3-12)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는 자식도 버리고 도망가는 부모가 속출하고 교인도 버리고 제 좋은 곳으로 미련 없이 떠나가 버리는 목사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말세를 역행하는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네가 형통하리라!”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종은 진심으로 여러분들이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는 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과 믿음을 담아 드리는 이 놀라운 축복의 비밀을 깨우쳐서 복을 받아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따라야 형통하게 됩니다

(1:7-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대상22:13)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한결 같이 형통하게 하겠다는 축복과, 말씀을 순종하는 조건을 동시에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코 형통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자식을 키워보고 목회를 해보면 말을 잘 듣는 자식이 이쁘고 말을 잘 따르는 성도들이 이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실 만큼 극진히 사랑하셨던 사울을 보아도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겸손한 사람이었고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여 잃어버린 아버지의 양을 찾아 몇날 며칠을 고생하며 돌아다니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 위에 오르고 나서 그만이야 변질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는 끔찍한 죄를 범하여 그만이야 그 인생은 물론이고 그 자손들의 삶마저도 완전히 망하게 되는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손들도 형통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네가 형통하리라!”고 주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존 맥코넬은 혼자서 "워싱턴 인더스트리사"를 창설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지금 획기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당시 연간 5백만 달러의 순수입을 올리는 형통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맥코넬이 이토록 놀랍게 성공을 거두자 행정 관료들까지도 그의 성공 비결을 배우려고 빈번히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맥코넬은 자신의 성공 비결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7:12)는 이른바 황금률에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황금률을 달리 표현해 보면 남들이 당신을 대해 주기 원하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라는 말입니다. 맥코넬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황금률 회사입니다. 황금률은 내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황금률의 핵심은 남의 처지를 나의 처지로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렇게 하면 어떤 문제라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 단순한 철학이 워싱턴 인더스티리사"가 위대한 성공을 거두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약속에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순종하면 친히 약속하신 형통의 축복을 반드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게 되어 칭찬을 받게 되니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를 내려놓고 조금은 바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훈련부터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자아가 강하고 오만하게 되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하게도 네가 형통하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멀리 떠나야 형통하게 됩니다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속성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빨리 승진하고 높은 연봉을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님의 성품과 가치관을 바로 알고 거기에 합당하게 맞추어 가야만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손에 우리들의 모든 생사화복이 다 담겨져 있는데 그 분이 누구신지 조차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분의 사랑과 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부터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속성은 바로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거룩하지 못하고 속된 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그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죄는 그만큼 하나님과의 거리를 넓혀주고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시편 기자는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결론을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복이 있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형통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여러 말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러운 죄를 떠나 나와야 비로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죄를 떠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고 꿈에도 소원하는 형통의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하나님의 그 엄청난 축복을 어떻게 해애 아낌 없이 받아 누릴 수 있는지, 똑바로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능력 있는 성도, 말씀이 있는 사람,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어떤 용기를 가지는지 한번 살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국의 목회자 중 가장 존경받는 한경직 목사님의 이야기는 신앙인들의 삶에 말씀의 능력이 정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증입니다. 1992년에 한경직 목사님이 템플턴 상(Templeton Prize)을 받았습니다. 템플턴 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금도 노벨상금에 버금가는 명예로운 상입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의 그 해 템플턴 수상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뜻밖의 말씀을 하셔서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바로 일제치하 때 신사참배를 했던 일에 관한 발언이었습니다. 19926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그날 한 목사님이 한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나는 이 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상은 결코 나 개인에게 준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락교회에 준 상이고 한국 교회에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지금 와서 구태여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자기만 신사참배를 했습니까? 신사참배하고도 아무런 고통 없이 목회 잘하신 분이 얼마나 많은데 왜 자신만 죄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 고백하지 않아도 누구하나 한 목사님을 추앙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왜 구태여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였을까요? 1942년에 범했던 과오를, 50년이 지난 1992년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목사님의 삶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말씀이 늘 자신을 제어하여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을 대한민국 최고의 목사로 세우시고 템플턴 상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죄를 멀리하고 행여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때 하나님은 이처럼 놀라운 형통의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믿으면 형통하게 됩니다

(대하20:20)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고귀한 말씀을 또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세워주신 선지자를 신뢰하면 견고하게 서서 형통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잘난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야 어떻게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최고로 필요한 덕목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에서 이와 같은 믿음으로 똑바로 서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것으로 자랑을 삼고 교만하며 잘난 척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까요? 하나님을 친히 소개해 주신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니 어떻게 믿음이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과 같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 예수님의 근심과 탄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교회에 나오실 때 다 운전을 하고 오셨을 것입니다. 운전대를 어떻게 조작하시며 오셨나요? 좌회전 우회전 하실 때 운전대를 돌리는데 엄청 힘이 드셨습니까? 아니지요. 요즘은 모든 훈전대가 다 파우워로 움직이니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핸들이 다 수동이어서 매우 핸들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핸들하시기에 부드럽고 편한 그런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도 힘들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 죽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없으면 망하고 있어야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이 형통하게 되는 비결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부디 말씀으로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만사형통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중세기 성자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이야기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했다. 그날은 찌푸린 날씨에 몹시 추운 날이었고 땅 위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나는 문 밖에 나가 곡식을 한 움큼 쥐어서는 새들에게 뿌리고 새들이 와서 주워 먹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새들은 눈을 멀뚱히 뜨고 멀리 앉아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도 내가 두려워서 가까이 오지 아니했다. 새들은 나를 신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거기 앉아서 새들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동안에 차츰 하나님의 마음을 전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를 주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기다리시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과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영광과 기쁨 등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앞에 오셔서 기다리시며 우리가 그분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므로 두려워하고 선뜻 다가서지 못하며 새들과 같이 그 자리에 서서 추위에 떨고만 있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축복을 받고는 싶은데 그 축복을 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성큼 다가서지 못하고 서 있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들과 같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도 다가서지 못하는 두려움을 걷어내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다가서서 그렇게도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품에 푹 안겨버리는 그런 단순한 신자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또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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