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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신을 시험하라! (2021년 10월 3일 주일낮설교)

네 자신을 시험하라!

 

10. 3, 2021

:고린도후서13:1-7

說敎:崔仁牧師

 

미국의 모든 돈에는, 페니 하나에도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는 말입니다. 세계의 돈인 Dollar에 이와 같은 말씀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원래 이랬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어떻습니까? 온갖 죄악으로 나라가 무너져 내리고 믿음에서 떠나 세속으로 첨단을 치닫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아닌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현실을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입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시험해보고 믿음에 굳게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만약 우리들이 이처럼 믿음에 서 있지 못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것은 그렇게도 중요한 일임을 오늘 우리 모두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비참한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까지 되었었지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그는 지상에서 가장 비참한 미친 사람이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아들들과 신하들과 모든 것들이 초토화 되는 비참한 결국을 맞고야 말았던 것을 상기해 보신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어 버림받지 아니하고 믿음이 있어 신령한 축복을 넘치게 받을 수 있도록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하겠습니다. 만물이 결실하는 아름다운 결실의 달 첫 주일에 귀한 말씀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후13: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이 종이 김포공항을 떠나 처음 미국으로 떠나올 때 공항에는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과 성도님들이 다 모여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은 자신의 연주를 녹음하고 어떤 아이들은 마음을 녹음테이프에 담아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주었고 어떤 아이들은 정성을 다 한 편지를 주었습니다. 이는 처음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 때 부산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렸습니다. 아마 그렇게 청순하였던 그들도 이제는 50-60대가 되어 어디선가 늙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렇게도 죽고 못 살았음에도 서로 떨어져서 함께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니 잊혀지고 사라지고 소식조차도 알 수가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사라졌을까 두렵습니다. 한 때는 눈물로 회개도 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결단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으며 하나님을 사랑했었는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노라고 허우적거리다 보니 감정도 말라버리고 사랑도 식어버리고 막연하게 교회에만 다니는 하나님 없는 초라한 종교인은 아닌지, 오늘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한 번 시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하나님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생활 속에서 그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우리들의 사정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으로 성경에 기록해 두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특별히 그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에 서 있는가 너 자신을 시험하라.”는 말씀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믿음에 서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들보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6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껌 하나를 훔쳐도 절도죄로 아주 엄하게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경찰이 곁에 있는 한 그 누구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요즘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참으로 모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빨리 달리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저만치서 폴리스 카가 보이면 저절로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과연 이와 같은 변화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곁에서 보실 것이므로 말도 절제하고 행동도 조심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 속에 있는가 말입니다. 만약 이런 의식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이에 대한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 하나가 기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땅을 팔고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고 네 것 내 것 구별이 없이 서로 통용하는 기적 같은 역사에 편승하여 그들도 밭을 팔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땅을 판 다음 그 모든 것을 몽땅 다 바치려고 하니 너무나도 아까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 값 일부를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 두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갖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을 알아채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 때에라도 깜짝 놀라 깨닫고 회개하였으면 좋았겠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사도 베드로를 속이려고 하였습니다.

(5: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귀한 땅을 팔아 바치고도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속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계시고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믿는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심험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매사에 그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고후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이제 우리는 믿음의 두 번째 단계를 찾아야 합니다. 믿음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계시는 그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그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22: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고후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4:8)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은 그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갈아놓으시기도 하셨고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감히 그림자조차도 밟을 수 없었던 천하의 바로를 꺾으시고 그 아들을 죽이시기 까지 하시고 결국 항복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시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죽은 자도 살리신 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고후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면 기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믿음이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 삶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니 모든 물품의 보급이 끊어짐으로 성안에서는 아비규환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아이를 잡아먹었겠습니까? 그 정도로 비참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어나 예언하였습니다.

(왕하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 하리라는 말씀은 최악의 상황이 정상으로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 나라의 왕도 의지하는 한 장관이 이렇게 예언한 엘리야에게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왕하7: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며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나?”하면서 엘리야의 예언을 부정할 때 엘리야는 참으로 단순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그렇게 되는 것을 보리라. 하지만 너는 그 결과로 풍족해 진 양식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말입니다. 왜 그는 그것을 먹지 못하리라고 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이 예언대로 그는 실제로 그렇게 죽었습니다.

(왕하7:18-20)

일찌기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었으되 곧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죽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에 서 있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라고 사도 바울은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불신은 결국 이렇게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임을 성경은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들이 과연 믿음에 굳게 서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시험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바로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제 믿음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과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에서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을 걷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6:30-32)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들을 남겨 두시고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직전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겼는데 그 첫 번째 말씀 또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 두 말씀만 가지고 보더라도 염려와 믿음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염려하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염려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현실을 한 번 들여다보십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심험해 보십시다. 과연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이 나의 믿음을 탓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을 책망하시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믿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풍성하게 열매를 맺힌 나무는 보기만 해도 탐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덩치만 크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그런 나무는 보기만 해도 그냥 그렇게 초라하게 보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바라보실 때 풍성한 우리들의 믿음으로 기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걱정 근심이 없는 삶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코멜대학교 교수인 럿셀 세실박사는 세계적인 관절염 권위자입니다. 그는 관절염을 일으키는 가장 평범한 원인으로서 결혼의 파탄, 경제적인 재난, 비극, 고독과 근심, 오장질환과 궤양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메이어 의료원의 헤럴드 하베인박사는 미국 산업의협회에서 발표한 그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176명의 지배인급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긴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세 가지 질병으로 심장병, 소화기 궤양, 고혈압을 들었습니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입니다. 메이어 의료원의 두 박사는 신경성 환자들이 입원실의 반을 차지하는데, 그들이 죽은 후에 정밀한 현미경으로 신경검사를 해보면 그들의 신경은 건강한 레슬링 선수의 신경과 꼭 마찬가로 건강하다고 했습니다. 단지 [신경성]질환은 신경이 실질적으로 손상되는 것이 아니고 무기력감, 좌절감, 불안, 염려, 공포, 패배감, 절망 등의 정서적 이유로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프라토는 "의사들의 가장 큰 잘못은 환자의 정신을 그냥 두고 육체만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의학에서 인식하는데 23백년이 걸려서 오늘날은 정신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는 정신요법 약품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을 제거하시려는 가장 좋은 처방으로 믿음을 제시한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의사보다 강력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장수도, 만서형통도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이 세상에서 복도 누리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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