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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할 수 있다! (2021년 10월 10일 주일낮설교)

나도 할 수 있다!

 

10. 10, 2021

:마가복음9:14-27

說敎:崔仁牧師

 

오래 전 한국방문을 했을 때 사랑의 교회 담임이신 고 옥한흠목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를 인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놀라 제가 어떻게 사랑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나요?”했더니 화를 내시면서 ? 최목사 총신 나오지 않았어? 우리 교회는 특별한 교회야? 목사이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설교할 수 있는거지 사랑의 교회는 안 된다는 이유라도 있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는 주일 1부예배부터 4부까지 온 종일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동대문 쪽에서 묵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교회에서 고급차를 보내주어 편안하게 가고 왔으며 매 예배가 끝날 때마다 각 종 죽이며 과일이며 음료를 푸짐하게 대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옥한흠목사님의 그 소박함과 모든 목사를 동일하게 대하시는 그 겸손함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 합동측에서는 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그 어디서나 그 어떤 교회에서든 강단에 설 수 있고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이민교회에서 작은 목회를 하는 목사들을 2만 여명이 모이는 교회에 절대 세우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가 죽고 주눅이 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옥함흠목사님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인격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믿음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이율배반적인 신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면서도 생활로는 불신자와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현상을 극복한 자 답게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민생활의 현실에 눌려서 알게 모르게 기가 죽고 주눅이 들어 매우 소극적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니 더 더욱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움츠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신앙인격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는 우리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9:21-23)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 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주님은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믿음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의외로 그 길은 간단합니다. 생각과 기도와 순종이라는 놀라운 세 가지의 단계를 따르게 된다면 기적 같은 축복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영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늘 우리들이 알고 느끼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들의 생각이 우리들의 인생을 만들어 놓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무슨 일이든 안 되게 만들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은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풍요롭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생각부터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는 내면의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도 삶의 원동력이 되고 우리들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은 부정적인 생각을 들고 나온 아비를 향해 매우 강력하게 책망하시고 그 생각과 믿음을 변화시켜 놓으셨던 것입니다. 아들이 귀신에 들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안타까운 고통을 겪고 있던 아버지가 그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왔으나 그들은 결국 그 아이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그 아비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절망과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고 그 사정을 물어보시는데도 그 아비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소극적으로 예수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예수님, 할 수 있거든 제 아이에게서 귀신을 좀 쫓아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즉각 책망하셨습니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아비는 불에 덴 것처럼 외쳤습니다.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인생에서 우리는 우리들을 붙들고 있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알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자신을 세뇌시켜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확신이요 우리들의 가능성을 열매 맺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술 훈련시간에 호기심에 찬 학생 몇 명이 스스로 시험대상이 되기를 자처하며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있어 보이는 한 학생을 지목하여 교단에 서게 하였습니다. 교실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습니다. 학생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 압력계를 들고 손으로 힘껏 쥐어 보십시오." 강사가 그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압력계를 있는 힘을 다해 거세게 쥐었습니다. 계기에는 압력 101 파운드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최면을 걸어 아까 했던 것을 다시 시켜보겠습니다." 학생은 최면상태에서 다시 압력계를 잡았습니다. 강사는 그에게 힘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있는 힘을 다해도 29파운드 이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최면술 강사는 그 학생에게 최면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힘이 다시 돌아와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암시했습니다. "이제 다시 압력계를 잡아 보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압력계 계기가 142파운드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안 됩니다. 반대로 할 수 있다고 굳게 확신하면 결국 해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고 우리들의 삶을 좌절시키는 우리 속의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든 그 생각대로 삶의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인류 최초의 심판인 노아 홍수의 요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부끄럽게도 제자들은 무려 아홉 명이나 우글거리고 있었지만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비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는지 즉시 예수님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왜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우 엉뚱한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외친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믿음의 기도가 先驗(선험)되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거나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에 대한 아주 명확한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 두시고 오늘 우리들을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디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많이 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축복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더 큰 축복은 믿고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기도를 배워야 하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막연한 기도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엄격하게 말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한 집안에 살면서도 하루 종일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거나 매우 중대한 문제가 생겼는데도 서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남이지 결코 가족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겠다고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믿고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우리들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순종은 우리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인격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의 인격 중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바로 이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많이 닮은 사람일수록 진정한 의미의 순종을 알고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복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면 크건 작건 우리 모두는 지도자가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지도자가 되고 자녀들의 지도자가 되며, 직장에서도 어떤 면에서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혼하기 전에 복종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추는 일은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복종이란 굴욕적이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가장 여유 있고 숭고한 자세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그와 같은 복종이 가능하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것처럼 그 사람도 부활의 능력을 맛보며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계를 정복해 왔으며 정복하고 있고 정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권력이나 금력이나 완력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온 인류의 마음을 정복하시고 우주를 정복하셨으므로 성령을 모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나님께 복종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의 권위에 복종함으로 우리 주위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거기에 상응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만큼 순종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복종하신 예수님께 엄청난 보상을 하심으로 모범과 증거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순종한 노아에게도 동일하게 복을 주시고 그와 그의 온 가족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구원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은 말세라 총체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온통 혼란과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살아 본 어른들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면 그만큼 시간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왜 스스로 모든 것을 다 겪어보고야 후회하고 깨닫게 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불순종하다가 홍수로 다 죽었음에도 두려움이 없는 어리석음이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것임을 깨닫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열매를 맺힐 수 있도록 순종할 줄 아는 인격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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