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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대로 되리라! (2021년 10월 24일 주일낮설교)

네 믿음대로 되리라!

 

10. 24, 2021

:마태복음 9:  2  7  -  3  1

說敎:崔仁牧師

 

영국의 스트라칸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친구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딸이 들어왔습니다. 딸은 아빠에게 살짝 눈짓하고는 줄넘기 줄을 아빠의 손에 놓고 나갔습니다. 딸의 줄넘기 줄은 엉망으로 엉켜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무심결에 그 줄의 매듭을 다 풀어놓았습니다. 잠시 뒤에 그의 딸이 들어와 "아빠, 감사해요!" 하고는 그 줄을 들고 깡충깡충 뛰어 나갔습니다. 스트라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는 없는지요?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그것을 다 해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기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지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직장을 바꿔야할 것인지, 집을 파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못하여 우왕좌왕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사소한 일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인 것입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도 정중하게 오늘 우리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때까지 감사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생활이 되어 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의 한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소경들을 돌아보시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능히 너희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소경들이 외쳤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믿습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선포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순간소경들의 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소경들이 기적을 본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안과 의사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결실의 달 10월에 깊은 도전과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우리 주님의 선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6:40-41)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선포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하늘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선포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이든 이 말씀 한 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그는 곧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 자체로 稀少性(희소성)이 강하여 신구약 전체에서 오직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9:29에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그만큼 이 세상에는 믿음으로 무장된 성도들이 없다는 뜻입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이 말씀의 반대 개념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이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났을 정도이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무엇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16:7-10)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생활 속에 믿음이 없다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실로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보다 좀 더 가졌으면 그것으로 비교하고 우월감을 가지며 반대로 열등감을 가진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준비하고 내가 이루어 놓아야 안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부복함이 없는 삶을 완성해 놓았다고 해도 불행과 비극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라도 잘못 되면 부모 된 우리는 평생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프게 살아가야 합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 불행을 당하게 되면 울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무슨 능력 무엇으로 우리들의 삶을 준비하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릇된 생각부터가 육신적인 것이고 부질없는 불신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인 생각만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부정적이고 육신적인 생각부터 바꾸고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인 소경처럼 단순하고도 명료한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진정한 신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작은 반딧불로 밝게 빛나는 것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믿음이 사라질수록 작은 믿음이라도 하나님께 크게 어필하는 법이니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상대적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9:28-30)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렇게 감동하신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한 수많은 위인들이 그렇게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이유도 하나님께서 그토록 믿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에녹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징그럽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죽음도 보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선포해 주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9:22-23)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여기에 있는 산을 명하여 바다에 옮기라 하여도 옮겨지리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기를 그 얼마나 소원하고 계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도저기 불가능한 이런 일들이 가능하도록 하시겠다고 까지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 속에 믿음이 있는 것을 확인만 하시면 언제든지 이와 같은 기적으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두 소경의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 그 즉석에서 두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해 주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197996일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서 1등으로 당선 된 세릴 프레위트양의 간증은 한때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녀는 1968년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쳐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포가 죽었기 때문인지 발육이 정지되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2인치나 짧은 절름발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뛰어난 용모를 아까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배에 참석하며 훌륭한 신앙의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19741021일 그녀는 미시시피주의 잭슨 시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30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섞여 하나님께 자기의 다리가 낫게 해달라고 마음을 쏟아 기도했습니다.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의 왼쪽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나 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그녀의 믿음대로 다리가 깨끗이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52대 미스 아메리카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미스 아메리카는 미스 유니버스나 다른 미인대회와는 달리 용모만이 아니라 교양이 있어야만 당선이 되는 것이므로 거기에 뽑히는 사람은 더 명예롭다고 합니다. TV에 나와서 그녀는 간증하였습니다. "주님 외에 누가 저를 고칠 수가 있었겠습니까?"라며 아름다운 소리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렸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18:42-43)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사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먼 훗날 이 세상 떠날 때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솔직하게 고백하기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삶이 이 생뿐이면 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우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진정한 신자는 이 땅에서만 잘 사는 것에 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구나 다 죽어야 하는 마지막 그 순간에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히 다시 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구원을 받아 죄에서 자유하고 평안을 누려야 하겠지만 나중 죽어서 영원토록 안식을 누리는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살과 같이 빨리 지나고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죽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와 같은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16:19-28)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고생하던 나사로도 결국은 죽었고 날마다 연락하던 부자도 결국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마 했는데 그곳에 가 보니 위로와 평안이 가득한 천국이 있었고 다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여야만 하는 지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만은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어 가르쳐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따가운 소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런 소중한 진리를 아무리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죽어서 그곳에 가 보았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 가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후회는 언제는 늦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1846년쯤 목사를 지원한 한 젊은이에게 의사는 "이런 병약한 몸으로 목회를 하면 1년 후 사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만 포기하십시오."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순교한다는 각오로 복음을 증거 했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구제사업을 펴는 가운데 무려 84세까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1878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입니다. 그는 생의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나를 지켜주었고 구원하여 주었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 종도 개척 이후 악한 자들과 싸우며 혼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신경을 써서 그런지 30대 후반부터 위장병이 생겨서 그 때부터 내시경을 받으며 위장약을 먹었습니다. 할머니도, 삼촌도 위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의사는 고위험군에 속한 환경이니 오래 살려면 극도의 신경을 써야 하는 목회를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천국까지 앞서서 가시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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