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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사랑입니다! (2021년 11월 21일 주일낮설교)

감사는 사랑입니다!

 

추수감사주일

11. 21, 2021

:시편1 3 6 : 1 2 - 2 3

:崔仁根

 

[늦은 배달로 인해 면이 불은 음식을 받았는데도 맛있게 먹었다고 업주에게 답장한 손님의 사연이 전해졌다.

자영업자 3개월 차인 작성자 A씨는 이날 오후 543분쯤 배달 요청을 받았다. 그는 10분 만에 조리를 완료했고, 배달기사는 바로 음식을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25분이 넘도록 음식은 배달되지 않았다.

밀린 주문을 처리하던 A씨는 포스기를 보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배달기사에게 연락해 지연되는 이유를 물으니 내비게이션이 길을 이상하게 안내해 목적지를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배달기사에겐 가끔 그럴 때도 있다, 추운 날 고생이 많다며 위로를 건넨 후에 손님에게 문자를 보내 미리 양해를 구했다. 배달 기사가 초행길이라 늦을 것 같으니 만약 도착한 음식의 면이 불어있거나 문제가 있다면 편하게 연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음식은 43분이 지난 오후 636분에 배달이 완료됐다. 환불 요청을 기다리던 A씨는 해당 손님에게서 예상 밖의 문자를 받았다. 해당 손님이 면이 많이 불고 식었지만 맛있게 먹었다이곳을 못 찾으시는 것 이해한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답한 것이다. 이어 시켜 먹었던 것 중 제일 맛있었다.”고 덧붙였다. 감동을 받은 A씨는 매장에 방문하면 따끈따끈한 탕 한 그릇 대접하겠다.”고 화답했다.

A씨는 자꾸 실수하고 일을 너무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울어도 봤다손님이 없어서, 남편과 싸워서, 처음으로 별점 3점 받아서, 몸이 힘들어서, 속상하고 울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지만 오늘처럼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밖은 다들 롱패딩을 꺼내 입을 정도로 추운 날인데 나의 세상은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 걸까라며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 같다. 자영업도 아직 할 만한 것 같다고 글을 마쳤다.

네티즌들은 같이 울컥해 진다” “배달기사와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장님의 마음씨에

손님도 화답한 것”, “배달이 좀 늦더라도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등의 의견을 남겼다. 또 다른 자영자 네티즌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배달 지연 문자를 보냈더니 빗길 운행 조심하라는 답장을 받았다그분 덕에 저도 변하게 됐다고 했다.](20211115일 조선일보 뉴스에서 발췌)

몇 년 전 뉴욕효신장로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방지일 목사님의 사촌 동생인 방지각목사님이 개척하고 큰 교회로 잘 성장시켜 놓은 좋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방지각 목사님은 후임으로 문석호목사를 세워 놓은 이후에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갔던 것입니다. 이따금씩 원로목사인 방목사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대화 중에 큰 감명을 받아서 여기에 간단하게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 번은 교회에 큰 불이 나서 그 좋은 교회가 다 타버리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하에 있는 친교실 부엌에서 개스가 새어나와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방목사님은 참으로 많은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건이 예배가 있는 날에 일어나지 않아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순식간에 교회당을 잃어버리고 오갈 데가 없어 예배를 어디에서 드리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이웃 미국교회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예배당을 사용하라고 먼저 요청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방목사님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험사에서 나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예배당을 잘 지어주어서 너무나도 또 감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없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넘치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강조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체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감사의 진정한 이유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 공부하면서 복된 추수감사절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소망합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136: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기자는 우리들이 감사드려야 할 이유로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손아귀에서 430년 동안이나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자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출애굽 시킨 사건을 설명하는 한 것입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그 사이에 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魂飛魄散(혼비백산)하고 절망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였고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를 베풀어 홍해라도 갈아주셨을까요? 그 이유가 바로 성경에 정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43:1-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홍해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시며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그들을 덮을 수 없게 하셨고 특별히 그들을 지명하여 불러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바로 이와 같은 사랑에 화답하는 거룩한 행위인 것입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워싱턴 장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는 필라델피아의 벨리 포지라는 마을에서의 전투였습니다. 군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워싱턴이 전투에서 승리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비서인 루이스는 '필승'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절망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장군은 하루에 네 번씩 성경을 펴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화로웠습니다. 전투는 끝까지 침착성을 유지하는 쪽이 승리하는 법입니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렇듯 워싱턴은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음의 평안과 지혜를 얻어 대승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곳 벨리 포지에는 워싱턴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을 섬기게 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믿음의 기도는 '절망, 한숨, 눈물''희망, 찬양, 미소, 감사'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와 그 군대를 제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136:15)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가 치리하던 애굽은 당대에 가장 큰 나라였고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라를 통치하던 자가 바로 바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로 앞에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고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종용하였으나 바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 바로의 장자와 바로가 통치하는 애굽의 모든 초태생을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죽이시는 초유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는 단 하나의 재앙도 임하지 않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하여 주셨습니다. 오직 애굽의 장자들만 치셨던 것입니다.

(136: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바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힘으로는 능히 어찌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고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통이 바로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두 번은 바로 이와 같은 고통 앞에서 절망하고 신음하게 됩니다. 죄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자체가 고통의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바로 앞에서 어쩌지 못한 채 고통을 당하여만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들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고통의 바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영국 어느 지방에 등뼈에 고장()이 생겨 40여년이나 자리에 누워 고생하는 덴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덴데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예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참으로 좋아서 그 방에 들어온 사람마다 천국에 온 것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무디 선생이 영국에 부흥회를 크게 인도하던 중에 덴데라의 소문을 듣고 바쁜 일정가운데서도 믿음 좋다는 덴데라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교인의 안내를 받아 찾아가보았습니다. 긴 세월 움직이지 못한 채 방안에서만 머물고 있었던지라 방에는 역한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디는 조용히 덴데라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무디 선생은 환자에게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하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그때 덴데라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풍기면서 말하였습니다.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도 지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아 천당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는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무디 선생은 덴데라의 방을 나서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오늘 천국을 보았노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태산 같은 엄청난 고통의 바로를 안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이처럼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곧 사랑인 것입니다!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고 시인은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덴데라 평생을 고통의 멍에를 매고 자리보전하고 있으면서도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고 세상의 귀한 축복은 다 받아 누리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외치며 감사를 드리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넉넉하게 고백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고 감사는 그런 고백이 있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136:21-23)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기자는 또한 우리들에게 재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머무는 60만이 넘는 백성들에게 단 한 끼라도 굶지 않도록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5천명이 넘는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 가득히 남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들을 친히 먹여주시되 풍성하게 먹여주셨습니다. 왜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예배를 마치고 Vision Project 준비위원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날씨는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고 을씨년스러운데 모두가 다 시장끼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회의를 끝나고 나니 정수영, 정기현목사님 가정에서 따뜻한 점심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끈한 김치찌개와 고등어조림, 가지와 콩나물무침, 그리고 오이무침으로 준비된 점심은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성찬이었습니다. 그들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업을 하느라 피곤하고 특별히 틴에이저 두 딸이 몇 시간을 서늘한 교회에서 친구들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놀라운 수고로 많은 사람들을 섬길 수가 있었을까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당회장 목사님을 비롯하여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식가가 끝나고 돌아간 후에도 정목사님은 뒷정리를 하고 비를 다 맞으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동이 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 그 무엇이 메마른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토록 헌신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그 사랑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으로 오늘까지 우리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 할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에 똑 부러지게 기록해 두시고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먹이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우리 하나님께 우리 모두 감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땅이란 바로 오늘 우리들이 누리는 재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많이 가졌다고 교만하지 말고 적게 가졌다고 불평하지 말 것은 그 누구도 굶주리지 않았고 꾸러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삶을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신 것은 그것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감사를 드리되 넘치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보스톤 해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이면 똑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었습니다. 한 노인이 싱싱한 새우가 가득 담긴 통을 들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갈매기들이 금방 그 친구를 알아보고 그의 발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일부 갈매기들은 용감하게도 그의 어깨 위에 올라앉기도 하였습니다. 새우를 갈매기들에게 나누어주는 동안 노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과 기쁨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갈매기들은 고급 요리를 그야말로 마음껏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매일의 이 광경을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분을 내며 욕을 하였습니다. “그 비싼 새우를 새들에게 낭비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을 알고 나서는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그 노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군의 유명한 해군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군이 어뢰를 발사하여 그의 배를 격침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와 부하 일부만이 구명정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고 승조원들은 거의 다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 구명정 위에서 뜨거운 태양과 폭풍과 굶주림의 어려움을 당하며 몇 날 며칠을 보내야만 하였습니다. 부하들은 한 명씩 죽어가기 시작하여 장군을 비롯한 몇 명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장군도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굶주림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누워 있는 바로 옆에 작은 흰 물체가 안경을 통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매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갈매기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떨리는 힘없는 손으로 천천히 그 갈매기를 잡았습니다. 그 갈매기는 몇 시간 수명을 더 연장하도록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였고 그 몇 시간은 그가 섬을 발견하기에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섬에서 안전을 찾고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보스톤의 갈매기들에게 값비싼 새우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그 장군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군의 행동은 겸손하게 감사를 표현한 단순한 행동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새우 한 조각조각마다 하나님과 갈매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감매기 한 마리를 보내시고 생명을 살려주시는 거룩한 사랑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지키시고 건강하게 살도록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과연 무엇을 드려 감사를 대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뜨거운 사랑을 가슴으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희생적인 감사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감사가 없는 재물은 결국 부질없는 고통과 비극만 안겨주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소장하게 되었다고 공개하였습니다. 그 보석의 이름은 호프 다이아몬드로 무려 45캐럿의 인 도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소유했던 사람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 다이아몬드를 일명 저주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합너다. 이 보석의 원래 소유자인 페르시아 총독은 도둑에게 살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소유자인 페르시아 왕은 반란군에게 처형을 당했습니다. 보석은 다시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넘겨졌으나 그는 그것을 단 한번 목에 걸어본 후 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결국 이 보석은 영국의 최고 재벌인 헨리 필립호프에게 넘어가 호프 다이아몬드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호프가()는 곧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재물이 축복이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거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재물이 아니라면 이렇게도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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