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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치료해주나요? (2021년 12월 12일 주일낮설교)

누가 나를 치료해주나요?

 

12. 12, 2021

:요한복음5: 1  -  9

:崔仁根牧師

 

부산의 명물 송도의 전망 좋은 언덕위에 하얀 병원이 하나 우뚝 서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산복음병원입니다. 푸른 송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웅장한 그 병원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병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당 중의 명당에 서 있습니다. 병실에서 푸른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힐링(Healing)이 될 정도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그 병원의 원장인 장기려박사입니다. 그는 의료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막사이상을 받았을 정도로 소문난 名醫(명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은 그 장박사님이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 일단 수술부터 해주고 치료비를 월부로 갚아나가게 하면서 이것을 제도화 하여 의료보험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은 오직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임상실험을 하였는데, 난치병에 걸려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게 고운 밀가루를 처방하여 약봉지에 잘 싸고 일본에서 직수입한 특효약.’이라며 기도하고 먹였더니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나을 수 있다는 사람의 심리와 기도는 사람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유명한 의사이기 이전에 진정한 사람으로서 환자의 고통과 외로움과 문제를 먼저 해결 해 준 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병든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말에는 “3년을 앓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자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아파 누우면 자식도 떠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외롭고 슬픈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을 의사인 장기려박사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았으니 치료와 명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 번 진솔한 질문 하나를 던져 보십시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치료해주나요?”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에 대한 대답을 한 번 찾아보십시다. 아마도 서글퍼질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코로나 환자가 하루에도 6-7천 명씩이나 나타나 병원의 병상이 모자란다고 하니 참으로 문제가 심각한가 봅니다. 그렇게도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는데 병원에서 격리하며 특별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모든 가족들에게 전염이 되기 마련이고 또 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니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이와 유사한 비참한 사건이 하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질병으로 무려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2021년도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역사를 이룩해 놓으셨는지 함께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들을 귀를 가지시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홀로 가는 외로운 여정(旅情)입니다

(5:5-7)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병든 자의 안타까운 하소연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시내에는 베데스다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그곳에는 하루에 한 번 물이 동하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그렇게 물이 동할 때 뛰어들면 그 어떤 병에 걸렸을지라도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곳에 뛰어들기만 하면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병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물이 동할 때 들어가기만 하면 나을 텐데 나를 그곳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없다!” 바로 이것이 불쌍하고 가련한 그 환자의 현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행하게도 그 환자만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 땅 위에는 예나 지금이나 늘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내가 아플 때나 외로울 때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인생을 참으로 슬프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결혼을 하려거나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구하려고 할 때 쉽게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몸이 병들어 자리에 누워있어야만 했을 때는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실제로 이 세상은 너무나도 삭막하고 사랑이 메말라 있기에 이렇듯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부모도 배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냄새가 난다며 노모(老母)를 옷 벗겨 집 밖으로 내쫓아 숨지게 한 4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A(·47)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7시쯤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의 한 원룸에서 B(78)씨를 집 밖으로 내쫓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속옷까지 벗긴 채 집 밖으로 내쫓긴 B씨는 원룸 주차장에서 1시간 30여 분 동안 추위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원룸 주변을 지나던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B씨를 발견해 집 안으로 옮겼다. 희미한 의식이 있던 그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오후 1030분쯤 숨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씻지 않고 냄새가 나 겉옷 하나만 걸치게 한 뒤 집 밖으로 내쫓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씨가 저체온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의료진의 소견 등을 토대로 A씨를 체포했다. 9일 전주 최저기온은 영상 2.6도였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했다.](20211210일 조선일보에서 발췌)

이 할머니는 남도 아닌 장성한 딸에게 내어 쫓겨 추위에 떨며 죽어갈 때 과연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이 세상이 이보다 더 차갑고 매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38년 동안 단 한 사람도 곁에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이 병자의 외로움을 우리는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던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시고 그 자신의 병이 오래고 깊은 줄 아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하실 때 그는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랑, 그 어떤 병도 고쳐주시는 능력, 그리고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까지 우리들을 책임져 주시는 그런 예수님의 이 사랑을 이 성탄의 계절에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19가 악화시킨 외로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의 명예교수인 노리나 허츠 교수의 고립의 시대라는 책은 외로움과 정치경제와 기술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어 돌아가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 걸작입니다. 세계적인 정치경제 석학인 허츠 교수는 우리는 외로움의 세기에 살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그는 어린아이가 상담원에게 전화해 엄마가 날 안아주지 않는다.”며 울었다고 전합니다. 청년들은 고립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고, 노인들은 경범죄를 저지르고 차라리 덜 외로운감옥행을 택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보다 외로움을 더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염만큼 외로움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외로움 경제가 폭발할 것이라고 예고한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의 명예교수인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이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동일하게 해로우며, 외로울수록 우리는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무서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를 돈으로 고용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실제로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렇게 고용해 보았는데, 같이 샤핑도 하고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냉정하게 약속한 시간당 150불을 달라.”고 해 씁쓸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마트 폰에 머리를 박고 사는 오늘 날 우리는 영혼도 육체도 외로움에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생명을 내 놓으시기까지 사랑하시며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진정한 친구로 모시고 복된 성탄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으로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5:5-7)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11-12)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외롭고 비참한 지 우리는 38년 된 병자를 통해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의 한 사건 사건들은 그 당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올 때까지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사건은 한 순간에 머물고 있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이 인간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는 황금만이 만능이 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점차 상실되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더욱 더 소외되고 외로움에 젖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 20201월부터 8월까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서 쓸쓸히 죽어간 고독사가 118건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1년에 150여 명이 이렇게 혼자서 죽어나가는 셈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1/3인 약 30%가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처럼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더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렇게 외로운 것도 서러운데 그 외로움을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혼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경에 놓여 진 것 같습니다. 그가 고백한 바와 같이 물이 동할 때 얼른 물에 뛰어들어야 기적을 볼 것인데 너무나도 오랫동안 아픈 나머지 스스로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곁에서 그를 도와 그 물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누가 우리들의 안타깝고 힘든 현실을 도와줄까요? 누가 우리들을 기적을 볼 수 있도록 물속으로 내려 보내 줄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어쩌다 서울에 나가 길을 잃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아야 하는데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저마다 급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물어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누가 나와 함께 물이 동할 때까지 머물고 있다가 물이 동하면 나를 이끌고 급히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모두가 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자랑까지 하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제대로 된 신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죽 오늘 인간들의 거짓된 신앙을 가슴 아파 하셨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탄식하셨겠습니까?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고 말입니다. 실제로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씨는 저는 어머니께서 권사님이시고 저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신자입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그가 출석하고 있다고 고백하였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는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이재명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지가 10년도 넘었고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이미 그를 제명하였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신앙도 정치에 팔아먹는 그런 안타까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기본인 섬김이라는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나 행동으로는 이웃을 돕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그 극단적인 이야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60이 된 한 가장의 슬픈 고백이 있습니다. 딸과 아들을 두고 아내와 그들을 위해 평생을 고된 일만 하다가 직장암 3기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수술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병원비와 수술 후에 간병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혔습니다. 아내는 병원냄새를 이길 수 없을 만큼 냄새엘러지가 있고 아들은 취업준비를 해야 하고 딸은 결혼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수술을 포기 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전세를 빼서 자신이 살아나갈 밑천으로 쓰고 생명보험은 아직도 취직을 못한 아들과 결혼준비를 하고 있는 딸에게 보태주어야 한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살고 싶었고 죽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젊었기에 그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이후 병원에 오지 않았고 그 누구의 간병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렇게 병원에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는 이혼서류를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은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돈 버는 기계처럼 일만하다가 병석에 누웠는데 정작 그런 가족들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극단적인 순간에는 그 모든 가족들이 원수같이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충격이 커서 그랬던지 그는 6개월 만에 다시 재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도 사람도 다 사라진 그는 식사도 치료도 포기하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45년 만에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리고 가난하였을 때 당시 부유했던 아버지가 자신도 모르게 엄청나게 도와주었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에 크게 성공한 다음 어릴 때 받았던 친구 아버지의 사랑을 갚기 위해 한국에 나왔으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이 흥신소에 의뢰해 3년 만에 병원에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미국으로 건너와 남은 삶은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렇듯 사랑과 우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사랑과 우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함께 해 주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처럼 사랑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유일무이하신 구세주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5:5-6)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외로운 우리들을 찾아오시고 또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우리들의 아프고 외로운 현실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그런 도움이 아니라 38년의 고통을 순간에 해결해 주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우리들의 진정한 친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웃이 어려울 때 도와주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가장 놀라운 힘은 오직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심어두셨던 헌신적인 사랑이 자신의 인생 위기에서 이처럼 축복이 되어 나타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사랑은 결국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 되어 위기의 때에 큰 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112: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치료해주십니다

(5:5-9)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능력은 실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친히 병든 자들을 많이 고치셨는데 거의 열여덟 가지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 주의 주님이시오 만 의사의 의사이신 것이 입증 되는 사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늘 우리들의 모든 질병을 고치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요 그러므로 그 어떤 능력도 기적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능력을 행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쨌거나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으며 더 이상의 소망을 잃어버린 불쌍한 그 병자는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38년 동안이나 누워 뒹굴었던 그 비참한 자리를 스스로 들고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고쳐달라고 호소하지도 않았고 고쳐주셨다고 치료비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의 현실을 스스로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가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성탄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까? 이 세상 그 누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와 주십사고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살고 있던 인간들은 그 주님을 어떻게 환영하였습니까?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이것이 당시 인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였고 저주하고 욕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외로움에 떨어야 했고 온갖 질병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불쌍한 인생들을 살려내시려고 예수님께서 조건 없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거룩한 성탄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수십 년씩 다니면서도 예수님의 이 사랑과 희생과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자신이 유익을 얻어야 하고 자신이 인정을 받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듣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욕하고 떠나고 분탕질을 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병든 육신보다 더 영혼을 고쳐야 하고 마음을 치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이 복된 성탄의 계절에 이와 같은 풍성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과 영혼이 치료되면 육신의 질병은 저절로 해결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고치시는 만유의 의사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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