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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 (2022년 2월 6일 주일낮설교)

예수님의 기도

 

2. 6, 2022

:마가14:32-42

:崔仁根

 

사랑하는 빌립보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영육이 건강하여 2022년도 2월 첫 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과연 누구의 공로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없으면 기도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기도의 소중함을 아는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거룩한 성전으로 올라와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가장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우리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덕분에 오늘 우리들이 그 무서운 사탄 마귀와 이 세상에서 보호를 받으며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1-9절은 베드로가 밤에 옥에 갇혀 고난을 당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력들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나서 이제는 베드로도 죽이기 위해 잡아 가두어 두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들은 죄악의 깊은 밤을 지나고 있습니다. 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허리띠를 띠고 순종의 신발을 신어 주님이 부르시는 진리의 빛 가운데로 뛰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양고보가 이미 죽었고 베드로 또한 죽이려고 이미 잡아 두었는데 성도들은 그 얼마나 두렵고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옥에 갇힌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를 깨워 쇠사슬을 끊고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까지도 베드로는 그것이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합심하여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는 이렇게도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신다면 그 얼마나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기도에 관해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우리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2월을 시작하면서 오늘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기도를 공부하면서 도전과 위로와 축복을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마음 귀를 열고 말씀을 들어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따를수록 혼자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6:13-15)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우리는 언제 기도합니까? 사람들이 배신하고 떠나가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외로움과 절망에 사로잡히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구나 하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사업이 잘 되고 아이들이 문제없이 잘 자라나고 주변에 모든 일들이 형통하고 잘 될 때는 오히려 기도하지 않습니다. 마치 좋은 장난감을 받은 아이가 엄마 아빠가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장난감에 빠져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아도 망한 사람은 무슨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잘 되었을 때 망했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던 다윗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전장에 나아갈 때나 사울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어 도망을 다닐 때는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리고 지난 날 사자들이 움켜간 양을 빼앗아 올 때를 기억하고 용맹과 믿음으로 두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였습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랬었던 그가 왕위에 올라 태평성대를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족하게 살아갈 때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하11:2-4)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다윗은 아직도 이른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침상에서 뒹굴었고 여유롭게 지붕 위에서 서성이다가 이웃 집 여인을 보고 탐욕을 일으켜 밧세바를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염두에 두고 우리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대비시켜 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때에 더욱 깨어 기도하여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 가득히 거두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고자 몰려들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다 아시고 오히려 그들을 떠나 조용한 산에 오르시고 온전히 기도에만 전념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질병을 고쳐주시고 하늘의 권세 있는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감격과 감동을 주시자 역시 사람들은 벌떼처럼 모여 들어 병도 고치고 말씀도 듣겠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조용히 산으로 오르시고 혼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심중을 헤아려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잘될 때,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추종하는 성공자가 되었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며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쭐하고 잘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때 기도하셨습니다

(6:8-11)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1:39-44)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능력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인성적 입장에서 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이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고 완전하신 사람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먹을 것 하나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하루 종일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지극히 아팠습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제자 빌립에게 물어보셨습니다.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 같이 말입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한 소년의 도시락을 하나 얻어서 예수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역부족인 것을 깨닫고 탄식하며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손에 들고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떼어 주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을 때까지 그 떡과 물고기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제공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얻으신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능력이 넘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52어로 기도하시고 기적을 만들어 내신 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 기도 하라고 하시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고 해서 예수님 앞에서까지도 부정적으로 부탁을 하던 귀신들린 아들의 아비를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9:22-23)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이렇듯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똑 같은 환경에서 이 아버지의 소원을 해결해 드리지 못했던 제자들이 나중에 조용히 예수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왜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고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기도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들도 이젠 확실하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또한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영국에 한 악명 높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사람을 사다가 파는 노예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그의 어머니와 아내는 밤낮으로 그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0년 동안이나 그렇게 한결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그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싼값으로 사다가 팔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오는데 그만 엄청난 태풍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되자 그는 아내와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서원하였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악한 일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말입니다. 구사일생으로 그는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예수님을 영접하고 당시 유명했던 시인 쿠퍼를 만나 조용히 시를 쓰며 주님과 교통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한 편 두 편 시를 계속 써 나갔습니다. 훗날 그의 시가 찬송가가 되었고 그것이 무려 348편이나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에도 그의 작품이 4편이나 실려 있고 그 중에서도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부르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405-Amazing Grace)라는 위대한 찬송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John Newton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기도가 이렇게도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생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할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고통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도가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워하셨습니다.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인성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들을 구속하시는 십자가의 고난은 완전하신 사람으로 당하셨기 때문에 그 고뇌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에 공감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가 되어 떨어지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때에 우리는 어떻게 그와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도 명확하게 온 몸으로 보여주신 바와 같이 기도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이와 같은 기도를 통하여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모든 고통까지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들의 고난과 고통이 견딜 수 없고 힘들지라도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모진 고난을 앞에 두고서도 자신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해 달라.”고 기도 드렸던 것입니다.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쓴 잔은 예수님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처절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기도도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주장일 뿐 성경은 다르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기도는 100% 다 응답되었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구하신 기도보다 더 놀랍고 풍성한 축복으로 응답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악한 세상이 예수님의 몸은 죽였지만 그 영혼은 손도 대지 못했고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부활하게 하심으로 사망권세조차도 극복하게 하시어 온 세상이 그 위대하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던 것입니다.

(2:23-24)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기도는 3일도 지나기 전에 응답이 되었고 그 결과 영광스럽게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부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 예수님의 무릎 앞에 굴복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넘치도록 응답하시고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비록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고통가우데 빠져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말고 예수님과 같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땀방울이 피가 되어 떨어지도록 간절하게 기도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셔서 자녀들의 눈물과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38:5-6)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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