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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조심하라! (2022년 2월 13일 주일낮설교)

버림받은 자의 기도

 

2. 13, 2022

:요나2:1-10

:崔仁根牧師

 

구약 소선지서 중의 하나인 요나서는 참으로 특이한 책입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요나서와 같이 신비로운 역사를 만나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없던 거센 풍랑이 요나 한 사람을 바다에 던짐으로 순식간에 잠잠해진 사건이나 거대한 물고기가 바다에 떨어진 요나를 삼키고 그 배속에서 요나는 죽지도 않고 삼일 동안이나 살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마치 동화책에서나 볼법한 사건들이 성경 요나서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믿음이 없이는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믿음이 없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러므로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세에 성도들에게 일어날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나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물고기 배속에서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이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요나서의 말씀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생명양식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 우리들에게 임할지라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의 열매가 맺혀질 수 있도록 옥토와 같은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가는 길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들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의 뜻과 의지를 굽히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누구나 오늘 본문에서 요나를 보고 공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제 마음 대로 도망갈 수가 있었을까?”하면서 비판합니다. 본인이 그 때 그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전에 말입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을 거역하고서는 결코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없다는 대 전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으리라고 오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도 거역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멀리멀리 도망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기적 같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1:1-2)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절의 말씀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요나는 거역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요나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태풍을 일으켜 바다를 요동케 하심으로 요나가 타고 있는 배가 파산직전까지 가도록 요나의 길을 가로 막으셨던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나가 계획했던 길은 막히게 되었고 다시스가 아닌 물고기 배속으로 목적지가 바뀌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는 말씀과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결코 우리 마음대로 우리 계획대로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강하고 권세가 넘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항복하였습니다.

(139:7-8)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경솔하게 요나와 같이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도 거기에는 거센 풍랑만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겸손하게 엎드려 기도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여정의 모든 길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순종하게 됩니다

(1:7-10)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가면서도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 길이 너무나도 순조롭고 모든 길이 잘 풀렸기 때문입니다.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배를 타려면 제 때에 바로 승선하기가 어렵고 오래토록 기다려야 하는데, 수천 년 전에는 과연 어떠하였겠습니까? 아마도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잘 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탈 수 있는 욥바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도망가가를 잘했다고 스스로의 판단에 얼마나 만족하였으면 그렇게도 풍랑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배 밑창에서 깊이 잠이 들 수가 있었겠습니까?

(1: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평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단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장으로 하여금 제비를 뽑게 하셨고 그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가던 요나인 것을 만 천하에 공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과정에서 오늘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한 가지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요나가 스스로 이와 같은 거대한 풍랑이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깨달음이 축복입니다. 깨달아야 순종하게 되고 깨달아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단순한 진리인 깨달음을 갖지 못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한 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까?

(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26:22-25)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언질을 주시고 지적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처럼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는 비록 아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스스로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항복하였더니 아버지께서 새롭게 받아주시고 회복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도 이처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왜 이와 같은 무서운 풍랑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풍랑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까지도 그는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그 길을 선택하고 희생양이 될 것을 결단하였습니다.

(1:11-12)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로 요나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다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 요나는 과감하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선포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여 또 다른 재앙을 막아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처럼 깨달은 요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완전해서 종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단 한 사람도 완전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보시는 면전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한 채 떠나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제일 먼저 찾아가시고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 다음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오늘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완전해서 그가 없으면 안 되어서 그를 다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깨닫게 하시려고 풍랑을 주시고 깨달으니 다시 불러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른 길로 당당하게 승리하며 나아가는 그 방도가 바로 기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지주 한 사람이 죽으면서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금괴를 밭에 묻어 놓았다. 잘 살고 싶으면 그것을 발굴하거라." 아버지가 죽은 후 두 아들은 금괴만 발견하면 만사가 해결 될 것이라 믿고 매일같이 온 밭을 파헤쳤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꽤 많은 날들이 흘렀지만, 실망스럽게도 아버지의 금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발굴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파놓은 땅이 아까워 그곳에 발굴을 대신하여 곡식을 심기로 하였습니다. 어느새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곡식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일하기 싫어하고 놀고만 먹던 두 형제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이 황금들판이 바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금괴로구나. 아버지의 현명하신 유언이 우리를 훌륭한 일꾼들로 만들어 주고 매년 얻을 수 있는 보화를 주셨구나!"라고 말입니다. 역시 깨달음만이 변화를 만들고 변화는 곧 축복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버림받은 자의 기도

(2:1-4)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2:8-9)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의 이 대목은 실로 믿음이 없이는 깊이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생존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냥 생존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그 속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됩니다. 요나는 실로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선지자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인데 요나는 단번에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소중한 자신의 생명도 미련 없이 던졌던 인물이었기에 오늘 우리들을 크게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 처절한 물고기의 뱃속에서도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서원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에 오늘 우리들은 엄청난 도전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최고의 기도는 사실 감사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가장 먼저 나오는 탄식이 무엇입디까?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 받았을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으면 받았을수록, 그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까지 가면서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으나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 그는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경 속에 기도의 위인들이 넘치고 있지만 요나만큼 극한 상황 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이토록 절절히 드린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그가 왜 이 바다 한 가운데 머물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곳까지 내버리셨는지, 뼛속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며 기다리시는 성전을 바라보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요나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중심의 믿음을 이쁘게 여기셔서 결국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2: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중한 진리 하나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들의 가는 길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거센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죽음의 거친 풍랑 속에 떨어졌을지라도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품으시는 분도 하늘의 하나님이시고, 또 다시 육지로 올라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주권 신앙입니다. 요나서는 비록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말씀이지만 이처럼 소중한 진리를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요나와 같이 전천후적인 기도를 회복하고 새로운 사명을 받아서 사는 날 동안 보람 있고 윤택하게 되는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진정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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