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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있는 소망 (2022년 4월 17일 주일낮설교)

목적이 있는 소망

 

부활주일

4. 17, 2022

:고린도전15:12-22

:崔仁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근교 작은 마을에 가면 시골답지 않게 아주 큰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이 교회가 세워진 데에는 깊은 사연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본래 이 마을에 교회가 없어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도시까지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사는 스잔이라는 어린 소녀로 인해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녀 스잔은 항상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주셔요. 많은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이 기도는 바로 스잔의 꿈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잔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스잔은 세상을 떠났고, 그 소녀가 누었던 자리 밑에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담겨진 편지 한 장과 그 속에 마지막 건축헌금 5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후 스잔의 이야기는 마을 주민들과 미국 전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고 모두 앞을 다투어 헌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소녀를 기념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마을에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의 작은 기도와 5달러짜리 지폐 하나가 가져온 아주 감동적인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오늘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2022년도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진정한 성도들이 가장 소망하는 꿈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데 꿈과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요? 진짜로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세상에 무슨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근심과 걱정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활신앙이 생활이 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람이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품되 목적이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은 부활절 기념으로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부활절이 단순한 교회의 절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망과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고 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을 소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뉴욕의 대형 로펌에서 초봉 30만 불을 내걸고 엘리트 변호사를 모집하며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수제라고 불리우는 일류대학의 로스쿨을 졸업한 눈망울이 반짝거리는 젊은 변호사들이 꿈을 안고 많이 지원하였습니다. 회장이 마침내 최종합격자를 선발하기 위해 직접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자네는 왜 우리 로펌에 지원하였는가?” 빼어난 젊은 변호사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일단 이 회사는 초봉이 30만 불이나 되고 유명한 로펌이기 때문에 제가 장차 변호사로서 출세하기에 가장 좋은 유명회사기이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회장이 만족해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벌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젊은 변호사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일단은 좋은 집을 구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를 만들 것입니다.” “아주 좋구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그 다음에는 결혼을 하고 이쁜 아들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 그렇구먼. 그리고 그 다음에는?” “, 저도 회장님처럼 나이가 들어가겠지요?” “그래서 나와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갑자기 그렇게도 패기 넘치게 대답하던 젊은 변호사는 잠시 숙연한 모습을 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눈에 보이는 소망인 결국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누구도 말하기 싫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라면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에 쫓아가는 것이라면 그 마지막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유명한 사건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간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나와서 목적지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전진해 나갈 때 거대한 성 여리고를 정복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천국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로 그 여리고성을 점령하게 하시되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은 그 누구도 취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천국에 들어갈 구별된 백성들이 그 사람들의 죄악을 본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그 물건으로 신령한 목적지인 천국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아간이라는 사람의 눈에 놀라운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금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평생을 두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무도 보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용기를 내어 그것을 아무도 몰래 자신의 처소에 몰래 숨겨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셨고 그렇게 한 아간을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를 통해 온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를 심판하게 하셨습니다.

(7:19-26)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취하여야 할 진정한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복된 부활절을 맞아서 눈에 보이는 것을 꿈꾸는 육신적인 삶을 청산하고 보이지 않는 진정한 소망을 품는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시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야 소망이 됩니다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소망은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 어떤 꿈을 이루고 누린다고 해도 결국은 잠시 잠깐 후에 다 놓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와 같은 어리석은 소망을 품지 못하도록 아간을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처단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복된 부활절을 맞아서 과연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해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그것은 바로 믿음이요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보는 것처럼 바라는 것이요, 천국과 하늘나라는 원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33-38)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살아간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소망을 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승리한 믿음의 선각자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이처럼 담대하며 용맹 있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다음의 세상, 즉 천국을 소망하며 그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11:14-16)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 모두 이 세상을 이겨보려고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천국과 본향을 잊어버리고 허덕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소중한 부활절을 주시고 잊었던 천국을 생각하게 하시고 육신에 젖었던 삶을 돌아보게 하시어 신령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육신적인 소망을 접고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영원히 누릴 진정한 소망을 품고 길이 참고 기다리며 승리하는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목적이 있는 소망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입니다

(고전15:16-19)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오늘 이 말씀을 기록으로 남긴 주인공은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당대에 최고의 조건을 가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특권들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결혼조차도 하지 않은 채 일생을 살아갔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를 특별히 부르셨기 때문이요 그 자신도 또한 그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이 그의 생애를 돌아볼 때 육신적인 그 많은 조건으로 그 누구보다 풍족하게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간 그 삶이 훨씬 더 복되고 유익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지금만 생각하지 말고 먼 훗날, 즉 수백 년이 지나고 수천 년이 지났을 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지혜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을 다 정복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백년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러시아의 대통령인 푸틴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략 2000조가 넘는다고 하니 대단한 부자지요. 하지만 그는 지금 전 세계인의 조롱과 무시와 욕을 들으며 지구촌의 외톨이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요?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수십 년에 불과한데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진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되 목적이 있는 소망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목적이 있는 소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비록 죽을지라도 다시 사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꿈을 안고 일생을 바쳐 헌신하며 전도하고 살아온 우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앞서 말씀 초입에 소개해 드렸던 어린 소녀 스잔은 비록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동네에 커다란 예배당을 세워 놓은 위인이 되었습니다. 누가 스잔의 삶을 일찍 세상 떠났기에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도 살고 죽어서도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죽음이 없는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누릴 영생이고 이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성도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과 교회와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모든 삶에 대한 보상은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반드시 되돌려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강력하고도 변치 않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부활이 있다고 믿는 성도는, 죽어도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이렇듯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장차 거둘 축복을 사모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잠시 땀을 흘리며 봄에 씨를 뿌린 농부가 머잖은 시간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동딸인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다툼 한 번 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가정은 평화롭고 화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다니시던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퇴직금을 두둑하게 받으셨고 어머니는 평소에 요리 솜씨가 좋아 요리 자격증만도 3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받으신 퇴직금으로 아담한 식당이나 운영하면서 여생을 보낼 계획으로 식당을 오픈할 준비를 마치고 세 식구는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딸인 자신의 직장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발표하여야 하는 시간이 겹쳐 아쉽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만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났던 부모님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지낼 수도 없을 만큼 큰 충격으로 그녀는 두문불출하고 집에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극심한 우울증까지 겹쳐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꿈에 아버님이 나타나셔서 네가 그러고 있으니 우리가 편안하게 떠날 수가 없구나. 용기를 내고 일어나 우리 몫까지 보람 있게 살아가려무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가신 부모님께 까지 근심을 끼쳐서는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출근하기 위해 나갔는데 그곳에는 얇은 카디건만 걸친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순간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 그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집으로 모시고 들어와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몸을 녹여드렸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집도 자식들의 거처도 모르는 치매환자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요양원으로 보내드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그녀는 자신이 지금 너무 외롭고 힘든 처지라 그 할아버지라도 섬기면서 생활하면 힘이 될 것 같아 그냥 모시기로 하고 섬겼습니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 이제 집으로 가야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할아버지는 치매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중견기업의 회장님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자신의 유산을 미리 채가려고 아버지를 어느 날 갑자기 차에 태우고 아무 아파트 앞에다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피 한 방 섞이지 않은 그 사람이 자신의 자식들보다 더 정성을 다해 섬기는데 감동을 받아 그 진심이 어디까지 가나 하고 1년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기업과 전 재산을 다 유산해 주고 자신의 절친의 아들과 결혼도 시켜 함께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목적이 있는 소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이처럼 선행을 베풀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심는 삶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말로만 부활을 노래하지 말고 삶으로 부활을 보여줌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지상에서도 천국을 누리게 되는 행복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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