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능력의 비밀 (2022년 6월 12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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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2 June 2022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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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능력의 비밀
6. 12, 2022
本文:사도행전3: 1 - 1 0
說敎:崔仁根牧師
우리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꼬라는 여인은 11년 동안 척추 카리에스(척추가 결핵균에 감염되어 생기는 질병. 척추염, 척추결핵이라고도 합니다. 척추로 들어간 결핵균이 뼈를 망가뜨려 뼛속이 텅 비게 되면서 척추가 둥글게 굽게 됩니다. 심한 통증과 농양(膿瘍)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치료 후에는 곱사등이가 됩니다.)에 걸려서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절망 속에서 일어나 그녀는 지금 일본 최대의 문인이 되었고 최고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 가운데 그 이상 그리스도를 위해서 많은 전도를 하고 있는 전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앤디 여사는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유칼리나무를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에 있는 사막에 꽃이 피고 샘이 넘쳐흐르리라는 구절을 생각하며 1만년 동안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뜨거운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성공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고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역리 포로 2만 명을 잡아다가 4-5년 동안 수용소에서 고문도 하고 일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8,000명이나 죽었습니다. 그 죽은 사람들에 관해 전쟁 후에 연구를 해보니 영양실조라든가 고문을 당했다든가 병들었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전부 절망해서 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신적으로 절망해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심령이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때는 강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 신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령이 절망으로 뒤덮였을 때 그들은 그렇게도 속절없이 죽어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싱싱하게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념이라는 것이 300퍼센트의 일을 할 수가 있다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3,000퍼센트의 일까지도 가능케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에게 제대로 된 믿음이 있다면 무한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힘을 주시는 분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 하나를 남겨두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일 “인간의 한계”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강에다 버려야 하는 부모의 한계와 궁중에서 잘 자라나 스스로 민족의 해방을 꿈꾸었던 모세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을 가야만 했던 한계와 천하의 무적이었던 바로 왕이 자신의 맏아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속수무책이었던 한계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와 반대로 비록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고 전무후무한 역사를 만들어 놓았던 놀라운 인물들의 능력을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물가는 오르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창궐하고 인간의 내면에서는 사랑이 소리 소문도 없이 메말라 가는 이 마지막 때에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살리며 이웃들에게도 삶의 소망을 심어주는 신령한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귀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서 예수님도 부인하였던 베드로의 능력
(행3:6-8)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2:38-41)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만들어 놓은 엄청난 능력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순식간에 건강한 사람으로 고쳐놓았고 한 번 말씀을 전하여 순간에 3천 명이라는 엄청난 제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라서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 더군다나 베드로는 우리 모두가 익히 잘 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을 잡아간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그 예수님께서 친히 보시는 먼전에서 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스스로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말을 번복해 가면서 말입니다.
(마26:33-35)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주님께서 보시는 면전에서 그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돌아섰던 인물이었습니다.
(마26:69-74)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너무나도 초라한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랬었던 그가 엄청나게 변화 되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그 유대인들 앞에서 그들을 향해 “너희들이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들이야!”하고 외쳤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행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어디에서 갑자기 이런 놀라운 능력이 나왔을까요? 이에 대하여 베드로 자신이 고백한 그 능력의 주체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행3:11-13)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여기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능력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렇게 하여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사도들과 120문도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아 방언으로 서로 통용하니 아무 것도 몰랐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다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할 때 베드로가 그들 앞에 나서서 외쳐 전하였습니다.
(행2:14-21)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변화를 덧입고 엄청난 능력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셨던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이 두려움과 연약함으로 인해 숱하게도 많이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세에 부어 주리라고 약속하신 거룩한 성령으로 충만케 되면 베드로와 같이 담대하게 변화를 덧입고 승리하는 권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하겠고 그 기도의 소원이 이처럼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살인하며 악을 자행하였던 사도 바울의 능력
(행20:9-12)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행28:2-6)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행28: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 땅에 남겨두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절반은 바울의 이적과 역사로 가득할 정도이고 신약성경의 절반을 그가 기록하였을 정도로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로 잔인한 사람이었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살인하였던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최초의 집사였던 스데반은 바로 그 사울의 손에 죽은 순교자였을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행7:54-5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당시 사울은 스데반 집사님을 돌로 쳐 죽인 최고의 증인 대표였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그 이후 더 더욱 살기가 등등하여 스스로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행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도 잔인하고 반 기독교도였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도 핍박하던 예수님을 위하여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를 이렇게 만든 위대하신 분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 속에 들어가시어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행9:17-22)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 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 밝히 기록된 바와 같이 그는 한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졌고 성령님을 받으므로 새롭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롭게만 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며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놀라운 한 가지 고백을 하였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쳐 헌신하며 각종 능력과 기사를 행하였던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이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에 대한 하나의 놀라운 비밀을 밝히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사도 사울과 다를 바 없이 이웃을 살인하고 핍박하고 미워하며 살아왔던 초라한 인간에 불과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잔인하고 연약하고 아무 쓸모가 없는 그런 존재들일지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런 우리들을 사울이 바울 되듯 바꿀 수가 있으시고 변화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누구라도 성령 충만케 되면 위대한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날을 기대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진정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농부에 불과하였던 엘리사의 능력
(왕하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왕하4:32-35)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구약에서 놀라우리만큼 많은 기적을 베푼 선지자였습니다. 무려 13번 이상이나 기적을 베풀었으니 남다른 선지자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원래 들에서 소를 몰고 밭을 갈며 농사를 짓던 농부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특별한 것이 없는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어떻게 죽은 자도 살릴 만큼 엄청난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째는 비록 그가 들판에서 농사나 짓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종은 특별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소명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들을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 쓰시는 종을 경홀히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엘리사에게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왕하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그를 그 옛날 농사나 짓던 평범한 사람으로 알고 조롱하다가 이처럼 비참한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비록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불러서 쓰실 때는 비범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엘리사가 그의 스승이셨던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하2:9-10)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엘리사는 엘리야가 받았던 영감의 갑절을 구하여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일들을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높으셔서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연약한 우리들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이 조급하거나 사람의 잔머리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거나 소란하게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평범하지도 못하였던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지닌 세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고 역사하셨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용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지 말고 엄청난 능력의 성령님을 통하여서 더 큰 역사도 이룰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며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는 영적인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사와 함께 역사하시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도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