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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낸 사람! (2022년 6월 26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이 보낸 사람!

 

6. 26, 2022

:마태복음3: 1 - 12

:崔仁根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곡식가운데 가라지라는 게 있습니다. 가라지는 곡식의 영양분을 빼앗아 곡식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므로 농부는 가라지를 뽑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농부가 밭에 귀한 곡식만 심었는데 심지도 않은 가라지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3:25-30)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우리는 여기에서 원수가 나타나 주인도 모르게 곡식 곁에다 가라지를 뿌려두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수란 도대체 누구일까요? 무엇 때문에 원수가 와서 이처럼 쓸데없는 가라지를 뿌려두었을까요? 이에 예수님은 가라지를 뿌린 원수를 사탄 마귀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13:36-40)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이 세상에도 곡식과 같이 하늘곳간에 채워질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고 가라지와 같이 불에 태워질 마귀에게 속한 자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가슴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마지막 때이고 추수 때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야!”라고 헛된 장담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여 보고 불을 보듯 깨어나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은 처음부터 세상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다른지 함께 성경으로 돌아가 진리의 말씀부터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1:5-13)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 늙어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할 수 없을 때까지 불행하게도 자식 하나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던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그를 가리켜 의인이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가라는 어느 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다가 천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되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를 하였으니 아들을 낳거든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이와 같은 놀라운 소식을 들은 사가랴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라 본능적으로 자신의 私見(사견)을 쏟아놓고 말았습니다.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반응하지 않겠습니까? 평생을 상식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으로 때늦게 받은 이런 놀라운 소식 앞에 한 번 정도 반문해 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매우 자연스러운 의심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그 순간부터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태어나자 모든 친족들은 그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지으려 했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더 이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무조건 요한이라고 짓도록 하였습니다.

(1:59-63)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하더니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 요한이라는 말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선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렇게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 누가 봐도 100%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누가 보내어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여러분은 과연 자기 자신의 존재의 原因(원인)을 무엇이라고 믿으십니까? 우연하게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 아니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셔서 태어났습니까?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소중한 말씀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존재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한 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 요한만이 특별하게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세례 요한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음을 이사야의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3: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라기를 통해서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도 친히 인용하시면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세례 요한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이렇게도 선지자들과 예수님에 의해 여러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인용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1: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냥 우연히 적당하게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그가 해야 할 분명한 사명을 지워 보내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듯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었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기본 성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은 겸손이었습니다.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1: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는 말씀들은 한결같이 그가 얼마나 겸손하였고 예수님을 얼마나 높여드렸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무엇인가 목적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하게 돈 벌고 가족들이나 먹여 살리고 편안하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무엇인가 이 땅에 태어날 때에 받은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기본적인 성품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더 높이는 것이며 자신은 천하지만 상대는 귀하다는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한 실례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남겨두셨습니다.

(18:10-14)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의도하심을 분명하게 깨달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진정 무엇이 겸손이고 또한 무엇이 교만인지 말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아무리 완벽하게 말씀을 순종하고 허물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이웃의 형제를 판단하고 비교하며 스스로 높은 곳에 서려는 자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교만한 자들이고, 비록 세리처럼 죄와 허물이 많아 얼굴조차 들 수가 없을지라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면 그는 곧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 겸손한 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은 이 말씀을 사는 날 동안 가슴에 새겨 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에서 장로들이란 오늘날 우리 교회의 장로라는 의미보다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완전하면 교회의 지도자들을 판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교회 내에는 이렇듯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두신 지도자들조차도 판단하는 오만하고 교만한 자들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무슨 말로 포장을 하고 변명을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교만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과는 그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말고 겸손으로 옷을 입고 세례 요한과 같이 끝까지 쓰임 받는 사명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친히 사명을 감당하시는 모범을 몸소 보여주신 스승이요 구주이신 우리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전하고 보여주어야 할 심부름꾼들이 오히려 교만하고 악하다면 오히려 예수님께 욕을 돌려드리는 꼴이 되니 예수님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세례 요한을 모델로 삼고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의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의 삶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라도 이렇게 겸손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보내신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14:3-12)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세례 요한은 상대가 누가 되었던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과 같이 토해내며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가장 많이 괴롭혔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이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었던 무리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너희들이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3:7-10)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권력자 헤롯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의 잘못됨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외쳤던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외치다가 그 악한 헤롯에 의해 비참하게 목 베임을 당하고 거룩한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셋도 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와 같은 놀라운 삶을 두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선포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그 보다 더 큰 이가 없다!”고 말입니다.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순교자보다 더 큰 상을 받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영광을 세례 요한이 받았으니 그는 과연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최고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꿈과 같이 잠시 살다가 가는 우리들의 인생에서 구질구질하게 그렇게 육신에 젖어 살아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사명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와 같은 놀라운 사명을 저버리고 세상에서 제멋대로 사는 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헤롯을 이렇게도 무섭게 심판하시고 오늘 우리들에게 저주의 롤 모델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사는 날 동안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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