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복을 지키라! (2022년 7월 10일 주일낮설교)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0 July 2022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160
받은 복을 지키라!
7. 10, 2022
本文:사가기13 : 1 - 7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인본주의에 빠져 살다가 결국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 동안이나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했던 그들이 그곳 바벨론에서 찬송 드리며 예배드렸던 시온을 그리워하며 바벨론 강가에 앉아 통곡하며 그 때를 그리워하였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시137:1-7)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편 137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Rivers of Babylon"입니다.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슬픈 노래이며 유투브에서 1천만 뷰를 자랑하고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널리 잘 알려졌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받은 축복을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인생들은 소중한 축복을 누리며 잘 살 때는 귀한 줄도 모르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고 탄식하며 후회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들을 가장 극명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가슴으로 말씀을 받고 받은 복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깊은 깨달음과 결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으로 태어났습니다
(삿13:2-4)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삿13: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삼손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은 성경의 증거대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총이었습니다. 원래 그 부모인 마노아는 평생을 통해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였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태어나는 것만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적의 사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삼손]으로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그의 삶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삼손이라는 히브리말의 뜻은 “태양의 아들, 태양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그가 가진 천하장사의 힘은 가히 태양의 아들 외에는 감히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삼손”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중심으로 숱한 영화나 소설로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대충 성경에 나타난 사건만 열거해 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삿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삿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삿16:3)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이상의 말씀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삼손의 그와 같은 놀라운 힘의 원천은 삼손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에게 있었던 그토록 놀라운 힘의 원천이 저절로 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삼손은 아무런 자신의 공로도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처럼 절대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은 삼손에게 이렇게도 놀라운 축복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주셨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손이 누렸던 엄청난 축복은 결코 조건 없는 축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축복을 주심은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축복을 주심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삿13: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삼손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엄청난 힘의 장사가 되게 하셨는지,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삼손으로 하여금 나실인이 되게 하시고 그와 같은 삼손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들을 그 대적 블레셋으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남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축복으로 주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받은 그 축복 때문에 망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를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선택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을 때는 그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은 망각해버리고 그 예수님을 팔아 자신의 소욕이나 채우려고 하였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스스로가 목을 메달아 죽는 저주와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삼손이 나실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그에게 블레셋을 제거하라는 분명한 사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나실인이란 히브리말은 “분리되다, 구별되다, 바쳐지다.”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삼손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엄청난 힘을 주셔서 블레셋을 몰아내라는 사명을 주심은 오직 그에게만 주어진 구별된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됨이 있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계셔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만물을 친히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위대한 신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 가운데 단 하나도 우연히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라고 만들어 놓으신 사람이 아무런 목적 없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겠습니까?
지난 7일 한국 청주에서는 29살이나 된 아들이 60세가 된 어머니와 다투고 나서 그 어머니가 잠이 드셨을 때 쇠몽둥이로 어머니를 무지막지하게 가격하여 살해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에게 하신 말씀처럼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도록 법이 그를 감옥에 넣어서 격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으로 태어난 목적의식이 없으면 오히려 부모형제와 이웃들에게 이처럼 끔찍한 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손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이라는 축복을 주시어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그렇게도 특별하게 구별되었던 삶의 목적을 망각한 채 세상에 빠져 살다가 너무나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신 그 소중한 축복을 지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축복을 지키지 못하면 빼앗기게 됩니다
(삿16:18-21)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우리는 지난 주일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세상에서 살아가다 무디어진 우리들의 영혼은 그 모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다가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놀라운 힘과 나실인의 사명을 그가 모를 리 없었지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 모든 초자연적인 능력을 그는 당연하게 여기고 구별된 삶을 떠나 세상에 발을 담그는 엄청난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삿14:1-3)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삿16:1-3)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삿16:4-5)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 일백을 네게 주리라
이상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삼손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엄청난 능력과 힘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그 거룩한 나실인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그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삿16:15-17)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삼손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들릴라가 블레셋 용사들을 숨기고 삼손에게 접근하고 있음을 그는 이미 두 번씩이나 경험하여놓고도 마침내 자신의 힘의 비밀을 누설하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요 인생의 한계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지켜주지 않으시면 삼손과 같이 순간에 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명백백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삼손은 그만이야 실패자로 전락하고 너무나도 비참하게 고통의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삿16:19-21)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렇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결코 우리들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는 유대인들과 하나가 되어 은을 달아주고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서로 공작이 잘 맞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고민에 빠진 가룟 유다가 그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냉담하였던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27:1-5)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 무릎에 삼손을 눕히고 사랑타령을 하던 들릴라가 블레셋 군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삼손을 팔아넘기는 모습과 거의 유사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믿지 마십시오. 이 세상과 짝하지 마십시오. 눈에는 아름답고 입에는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삼손과 같이 독을 마시고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엄격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이 고귀한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만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만이 신령한 복을 주시며 하나님만이 우리들을 인도하여 천국으로 가게 하실 줄 믿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축복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혜롭고 믿음에 굳게 선 삶을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먼 훗날에는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선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