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2022년 7월 24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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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4 July 2022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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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7. 24, 2022
本文:마태복음8: 5 - 13
說敎:崔仁根牧師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복잡하고 애매하게 만드는데 굉장히 유능했습니다. 십계명을 풀어 613개조의 법을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므로 율법을 더 간단하고 분명하게 요약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규칙에 얽매어 공연히 까다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가 아주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많고 까다로운 사람들은 너무 조심스럽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기 힘들고, 믿음의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쓸데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때 율법은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요렇게 조렇게 따지는 절차를 거치는 동안에 약해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깜짝 놀라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아주 단순하고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같이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때에 단순한 사람은 참 희귀한 존재요. 더구나 일회용품을 쓰는 생활 속에서 진지한 사람은 천연기념물처럼 드뭅니다. 백부장은 율법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까다롭게 법이나 규칙을 내세우지도 않고, 자기의 권위나 체면을 앞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해 합니다. 단순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습니다. 겸손, 사랑, 순종........ 그래서 단순하지만 가벼워 보이지 않고 우아합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백부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백부장의 믿음을 들여다보고 배워서 우리들의 삶에도 예수님의 권능의 음성, “소자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길 소원합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함이었습니다
(마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눅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 하시기를 청한지라
(눅7: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님으로부터 최고의 믿음을 가진 자라는 놀라운 칭송을 받은 백부장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믿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한 믿음을 소유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그와 같은 믿음은 단순하게 생각 속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찮은 하인일지라도 친히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쳐주시기를 소원하는 행동을 몸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과실”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믿음을 가지되 이렇게 말이 아닌 행함으로 열매를 맺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원래 믿음이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할 때는 진정한 믿음이 되지 못하고 헛된 믿음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백부장의 믿음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랑의 열매를 맺히는 믿음이었기에 그토록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서럽고 무시당하며 수고와 고생만 하는 그늘 속의 주인공인 하인까지도 사랑하는 놀라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 집안에 있는 하인만 아니라 바깥의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도 사랑의 손을 뻗쳐 그들의 입으로 칭찬하고 인정하는 사랑의 믿음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눅7: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제대로 된 믿음은 바로 이와 같은 백부장의 믿음이라고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이처럼 사랑으로서 입증하는 그런 멋진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마8:8-9)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눅7:6-8)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실로 믿음은 말씀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그 자체가 말씀을 들을 때 만들어지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믿음이 바로 이와 같은 말씀과 깊이 연관되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신다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하여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모시고 갈 터인데 백부장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마8:7-9)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고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가서 고처주리라.”고 하시는데도 백부장은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고 인정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러하여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기대하는 자세, 바로 이것이 생활 속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유대 땅에 있는 최고의 믿음이라는 놀라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생활 속에서 몸에 익힌 순종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우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린 지도자를 백부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밑에는 10부장 50부장 같은 부하들이 있었고 자기의 위로도 더 높은 500부장 천부장 같은 상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지휘관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상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을 중심으로 예수님께 말씀 드렸던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고 칭찬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제재로 된 믿음은 이처럼 “순종”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눅7:4-5)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믿음의 역사는 골방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이처럼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하여야 하지만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는 것인 만큼 그 파급 효과가 자신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널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의 역사는 앞서 인용해 드린 누가복음 7장 4-5절의 말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께 백부장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말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천 마디 만 마디 스스로 자랑하는 것보다 이웃들이 증거하는 이런 말씀들은 참으로 객관성이 있고 신뢰가 가는 바로 그런 믿음의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의 믿음이 이러하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고 자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에 대하여 친히 증거해 주는 그런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하여 백부장의 믿음에 예수님께서 놀랍도록 친히 선포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인은 예수님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그 무서운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백부장으로 말미암은 기적의 효과가 하찮은 하인의 몸에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나의 작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변이 변화되고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 백부장을 그렇게도 칭찬하시고 성경에 친히 기록하셔서 오늘 우리들에게 본이 되고 도전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던 누가는 같은 맥락에서 믿음으로 이웃들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도르가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행9:36-39)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그가 비록 병이 들어 죽었었지만 그의 믿음의 행적을 따라 그의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사도들을 부르며 그의 선행을 들추어내며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들으시고 도르가의 믿음의 역사를 기억하시사 부활의 축복을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적을 만드는 믿음은 내면적으로 조용히 자신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되어 이웃들에게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