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움직인 사람! (2022년 8월 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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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7 August 2022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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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움직인 사람!
8. 7, 2022
本文:사도행전10: 1 - 8
說敎:崔仁根牧師
늘 말이 없고 과묵하신 장인어른으로 인해 처갓집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들던 사위가 어느 날 7살 개구쟁이 아들과 함께 처가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말없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아빠, 방귀뀔 때 불을 붙이면 불이난다고 하던데 아빠 한 번 실험해보자!”며 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엄하시기로 소문난 장인어른 앞에서 그것도 식사시간에 이러니 사위인 자신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조용히 아들을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니나 다를까 장안어른이 벌떡 일어나더니 “성호, 너 나 따라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주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셨습니다.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구나!”하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앗 뜨거워!”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궁금해 하고 원하니 스스로 일어나 손주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엄하시고 과묵하시던 장인어른도 손주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 컬투 쇼에 나오는 실화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수 천 수 만의 직원들이 벌벌 떠는 회장님도 손주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바로 손주사랑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 앞에서는 이와 같이 소박하게 움직이시며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자상하게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직접 증거해주는 역사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75살이 되도록 자식 하나를 낳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친히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거짓말처럼 나이 100살에 아들을 낳게 하시던 하나님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자상하시고 다정하신 하나님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에게 임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감동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만큼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하나님을 움직이시도록 한 고넬료의 모습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하였기에 이토록 하늘의 하나님도 움직이시게 하였는지, 함께 공부하면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넬료를 위해 완벽하게 움직이시며 역사하신 하나님
(행10:4-6)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행10:11-15)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우리들은 지구가 워낙 크고 육중하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1년 4계절이 지나고 하루 24시간이 지나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을 통하여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지구 스스로도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종교지도자들은 이렇다고 주장하는 놀라운 과학자들을 오히려 협박하고 잡아가두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7세기 갈릴레이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우리들이 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스스로도 돌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을 받고 죽는 날까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권세도 아닌 종교계에서 이처럼 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오죽하였으면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겠습니까? 이처럼 오늘 우리 하나님도 너무나도 크시고 위대하심으로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런 하나님께서 친히 나와 같이 작은 자를 위해 움직이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고 역사하시는지 자세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 받은 유대인들과는 함께하거나 상종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행10:26-29)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고넬료로 하여금 말씀의 사자 베드로와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친히 움직이시고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강력하게 인간의 아집이나 경험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이 앞에 인용해 드렸던 말씀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고넬료에게는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라고 명령하셨고 친히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까지도 상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이것 자체가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감히 이방인이 유대인인 베드로를 상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고집불통인 베드로에게도 친히 임재하시고 놀라운 환상으로 그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와 같은 하나님께 자신의 상식과 경험으로 항변하며 나섰습니다.
(행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 다시 그와 같은 그의 모든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도록 책망하시듯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0: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로 이것은 획기적인 역사였습니다. 요즘이야 이와 같은 이야기 자체가 상식 밖의 이야기이지만 2천 년 전에는 법으로 정해 놓고 서로 상종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베드로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까지 역사해 주셨는데도 선뜻 이해조차 못하는데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감히 이와 같은 사도들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움직이시며 고넬료 쪽과 베드로 쪽을 동시에 설득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방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개종을 하여 성령충만과 세례를 받는 기적의 주인공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행10:1-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고넬료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 움직이시고 역사하시어 그 완고한 베드로의 마음까지 움직이시고 고넬료의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고넬로라는 사람을 성명해 주셨습니다. 고넬료는 오늘날 믿음 좋다는 사람들도 감히 하고 있지 못하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교회에 나가 정식으로 예배조차 드리지도 못했던 고넬료가 이토록 기도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하나님도 움직일 수 있었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고넬료를 매우 귀하게 여기시고 그의 소원하는바 기도를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무엇을 그렇게 항상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같은 고넬료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다고 하셨고 고넬료는 베드로 앞에 엎드려 그의 소원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이 두 말씀을 종합해보면 그의 기도의 소원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행10:30-33)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넬료가 항상 기도하고 소원하였던 기도 제목은 바로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않고 발견하여야 할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는 여기에서 두 부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제는 “많이”하고 기도는 “항상”하였다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제를 많이 하였고 기도를 항상 하였다가 하나님의 감동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깊이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응답 될 때에 이 구제도 함께 따라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행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고넬료의 기도가 응답되는데 그의 구제가 한 몫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처럼 구제를 많이 하는 고벨료의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그 배경을 또한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58:6-11)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기도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응답의 기적 보기를 원한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반복적으로 거듭 나타나는 것이 바로 “구제”입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씀과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기도 응답 받기를 원한다면 이렇듯 이웃을 사랑하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일3:21-24)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고넬료와 같이 움직이시게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제 많은 구제를 중심으로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상종조차 하지 않는 이방인이었지만 고넬료는 잘 믿는 그 어느 신자보다도 더 깊은 사랑으로 구제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묵묵히 계시는 것 같아도 우리 하나님은 잠시도 그냥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떻게 구제하나 지켜보시고 또한 우리들이 항상 기도하는지를 살피시는 매우 완벽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않는 지혜롭고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고넬료의 기도가 응답된 것은 그의 행동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10:1-2)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응답되고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도 움직이시게 하였던 고넬료의 믿음은 실로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기에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구별하여 두셨던 유대인들도 고넬료와 같이 신앙생활을 잘 한 사람을 만나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넬료의 놀라운 믿음의 흔적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행10:1-2)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과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바와 같이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평범한 것 같지만 매우 놀라운 모습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을 찾아보기는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이는 중국 대학이라는 책의 맨 처음에 나타나는 유명한 말입니다. 자신과 가정을 잘 다스려야 천하를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김영삼씨나 김대중씨가 다 대통령을 하면서도 아들들은 감옥에 보내는 불명예를 얻었고 지금 이재명씨도 아들이 마약과 도박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곽상도씨도 아들 때문에 국회의원을 그만 두었으며 추미애씨도 아들 탈영문제로 얼마나 나라를 시끄럽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자식은 축복인 동시에 문젯거리이기도 한 존재들입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나 장로나 리더들의 자녀들로 인해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얼마나 믿음이 좋고 덕이 많았으면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겠습니까? 그런데 고넬료가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하나의 숨은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경건”이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이처럼 경건의 모양은 보여주어도 실상은 경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로 변해버린다고 하나님께서 예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을 NIV에서는 devou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신앙심이 좋은 독실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줄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을 NIV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해 두고 있습니다.
He and all his family were devout and God-fearing;
이라고 말입니다. He and all his family라는 말은 우리 말 성경보다 훨씬 더 그의 온 가족들임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온 식구들이 이처럼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도 움직이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의 영혼에도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교회와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는 신앙인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녀들을 하나님과 교회중심으로 키우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축복인 것입니다. 전 세계의 재정을 주무르고 있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수천 년 동안 그들의 아성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밀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녀교육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가운데 토막을 장식하고 있는 고넬료라는 인물은 그래서 초대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이와 같은 자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고넬료와 그의 가정을 교훈삼아 오늘 우리들도 기도하되 이웃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세로 항상 기도하고 온 가족으로 더불어 경건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제대로 된 믿음으로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신령한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