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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세우시는 집 (2022년 8월 14일 주일낮설교)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집

 

8. 14, 2022

:시편127:1 -  5

:崔仁根牧師

 

지난 주간 대한민국에서는 110년 여 만에 가장 극심한 호우가 내려 말할 수 없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에서 40대 동생과 50대 누나가 사무실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거리로 나왔다가 맨홀로 빨려들어 가는 급류에 휘말려 사망하였고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던 자폐 모자와 이모가 또한 물에 잠겨 사망하였으며 강원도에서는 노부부가 양봉을 하고 있는 곳에 벌들이 안전한가 둘러보러 나갔나가 급류에 휩쓸려가 사망하는 변을 당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하는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농작물의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8월이라 정성껏 수확하였던 수박 밭에 물이 넘쳐 다 버려야 했고 포도밭에도 흙탕물이 차올라 몽땅 버려야 하는 끔찍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1년 동안 피탐 흘려 지은 농산물이 추수를 코앞에 두고 한 두 시간 동안 내린 비에 이처럼 모조리 잃어버려야 했던 농부들은 그저 망연자실 할 뿐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어젯밤 9시 현재 미국에서는 1,962,333명이 사망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는 6,455,659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렇게 짧은 2-3년 내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간 사건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 인생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우리들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렇게도 소중했던 생명도 재산도 한 순간에 다 잃어야 하는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초라한 우리들의 인생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지구 위에서 가장 잘난 것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이렇듯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심금을 울리는 교훈을 남겨놓았습니다.

(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과연 이런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성경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뚜렷하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자신의 삶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이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

(26:14-16)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지구촌을 가득 매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오직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의 대부분과 교회에는 다니지만 믿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못한 교인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잘 살면 교만하고 못살면 반대로 매우 절망하며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매우 인색하고 돈에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렇게도 험악한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목표가 바로 그와 같은 돈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12:3-6)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삶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돈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부자가 되려고 하지도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딤전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고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런 삶에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돈을 사랑하고 그것이 심화되면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는 누구를 막론하고 이처럼 돈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소중한 약속을 담보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거듭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르침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던 가룟 유다는 바로 그와 같은 스승님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였으니 진정 돈에 미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26:14-16)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돈으로 스스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려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삶이란 미래와 내세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현세에 만족하며 누려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소중한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거듭 거듭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네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지 말고 능력과 권세가 넘쳐나는 나를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가룟 유다는 이와 같은 돈에 스승인 예수님을 팔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의 삶이 결코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27:1-5)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착각하고 스승을 팔아서까지도 돈을 손에 넣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길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친히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겼던 돈을 스스로 갖다버리고 자기 목숨을 자기가 죽이는 비참한 가룟 유다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한 삶을 스스로 살아가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9:11-15)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브라함이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거의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고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삶을 살아갔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으니 오늘 우리들이 그랬었구나!”하고 말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75년 동안이나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던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떠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할 모든 좋은 조건들을 다 누리며 누구보다 원 없이 살아가던 삶을 한 순간에 배설물과 같이 다 내버리고 고통과 죽음의 길을 쫓아간다는 것이 또한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어떤 능력에 강력하게 이끌리듯 그렇게 자신들의 모든 개인적인 삶을 접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께 모든 삶의 향방을 맡겨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나갔습니다. 그러니 오고 오는 세대들의 영원한 귀감이 되고 믿음의 절대적인 표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와 같은 아브라함이나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들의 삶을 실패했다거나 어리석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갔던 가룟 유다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위대한 삶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분들의 삶을 선호하며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소중한 단 한 번뿐인 삶을 이처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두려움과 근심 걱정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구라서 근심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랑은 식어져가고 온통 세상은 온갖 사건과 사고로 가득한 이 말세지 말에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과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후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37:4-6)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는 복된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미련하고 어리석어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가룟 유다와,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갔던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해 주시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린 아이가 전폭적으로 부모를 의지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주는 대로 먹고 입히는 대로 입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고 하늘 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네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127:1-3)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말씀은 아무리 곱씹어도 토 하나 달 수 없는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1년 내내 고생하며 농사를 지어도 한 두 시간 내리는 폭우에 다 날아가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40, 50대 남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길거리로 나왔다가 서울 최고의 강남에서 급류에 휩쓸려 맨홀로 빨려들어 갈 줄 그 누구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내 생명도 내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지혜자 솔로몬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워주지 않으시면 우리들이 제아무리 수고하고 집을 지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주고 이 세상 최고의 총잡이를 고용하여 대문 앞에 세워두어도 우리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얼마나 돈을 벌기 위해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까? 사업이라고 하면서 마음고생 몸고생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낳아주신 부모님이 아십니까? 품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자식들이 알아줍니까? 그렇게 우리는 몸과 마음이 부서지도록 고생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그 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잠을 잘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 개인의 경험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삶이라고 스스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기는 그런 성들에게 단잠을 주시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라면 이 세상 그 무엇이 우리들의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생은 우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식도, 돈도, 심지어 우리들의 생명까지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게 우리는 모세 오경을 기록하였던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모세를 생각해 보면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는 간악한 바로가 남자 아이는 모조리 다 죽이라는 어명이 내려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산파를 통해 역사하심으로 죽지 아니하였고 강가에 버렸으나 바로의 공주가 건져내 살려주었고 유모를 구하는데 친 어머니가 간택 되었으며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왕궁에서 왕자가 되어 모든 것을 손색없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려다가 공연히 살인만 하고 이로 인해 광야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을 이렇게도 분명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다시 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120세가 될 때까지 눈도 어둡지 않도록 간섭하시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집을 지으시는 삶의 모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험한 세상을 내 스스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그 품안에서 자유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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