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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순간에! (2022년 8월 21일 주일낮설교)

생의 마지막 순간에!

 

8. 21, 2022

:디모데전서6:1-8

:崔仁根牧師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이렇게 피조물의 한계를 정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났으면 반드시 그 마지막 순간, 즉 죽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그렇게도 유명하였던 인물들도 한결 같이 다 죽었던 것입니다.

(34:7-8)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왕상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라는 말씀들은 한결 같이 사람이 다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사도 바울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때가 되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이 종이 우리교회를 개척할 때가 32살이었는데 그 이후 40여 년 동안에 이 종이 장례 예배를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성도들만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죽기 전에 바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과연 어떻게 사는 삶이 심판자를 만나도 두렵지 않는 바른 삶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와 축복을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짧지만 긴 인생을 다 살아간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어본다면 어르신들은 과연 후손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 줄까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형석교수는 지금 102세인데 아직도 왕성하게 행복한 인생을 위한 많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복된 인생이란 많은 소유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인간관계를 통하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 되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평범하고 매우 설득력 있는 명언처럼 들리지만 이렇게 살아가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전쟁이고 싸움이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나온 인생의 모습을 먼저 성경에서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인생이 무엇이며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생이란 가시밭에서 채소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으로 인해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하고 사랑함으로 결혼을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평생을 통해 고통과 고뇌를 당해야 하며 먹고 살기 위해 저주 받은 땅에서 나오는 가시덤불과 싸우지만 끝내는 그것마저도 중단하고 결국에는 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생을 사도 바울은 선하게 싸워 이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취하여야 할 키 워드(Key Word)가 있습니다. “선하게 싸워야 한다.”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싸워가야 하는 인생을 악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우리들에게는 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7:19-21)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타락하여 죄로 범벅이 된 우리들에게는 선은 생각뿐이고 행하는 모든 것은 악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 속에 성령으로 인한 믿음이 있을 때만 우리는 작은 것이라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는 결코 선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하고 성령 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을 통해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225번 나타나는데 그 중에 70% 이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전쟁터와 같은 인생을 선으로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악으로 가득한 인생을 선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야 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명령하였겠습니까?

(살전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는 이와 같은 악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 마귀와 짝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남은 삶은 사도 바울과 같이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 마지막 날에 사도 바울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승리한 삶을 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합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34)가 남자마라톤 최초로 2시간 1분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킵초게는 2018916(한국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8 베를린 국제마라톤에서 42.1952시간 139초에 달렸습니다. 이는 2014년 같은 대회에서 데니스 키메토(케냐)가 세운 2시간 257초의 기존 세계기록을 118초 앞당긴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보통 우리는 100리가 넘는 그 긴 코스를 다 주파하기도 불가능한데 이 사람들은 2시간이 넘도록 초속 10초의 속력으로 계속 달렸다고 하니 그 자체로 존경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인생도 이처럼 긴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그 긴 인생을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오기를 마쳤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존경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처럼 담대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드리고 후손들인 우리들에게는 도전 의식을 심어주며 삶의 목적을 이루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선배 목사의 은퇴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큰 교회는 만들어 놓지 못하였고, 은퇴를 하고 난 다음의 삶이 더 걱정은 되지만 50년이란 긴 목회생활을 무사히 마쳤다는 자체에 위로를 받습니다.”고 말입니다. 참으로 장하고 훌륭하시다는 느낌을 받고 왔습니다. 이렇듯 우리들도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않는 멋진 달음박질을 계속해 나가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지난 주일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며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고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었음을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20:17-24)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이렇듯 그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방법은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복된 사명에도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의 간계로 인하여 당하는 시험을 참아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인 복음을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구별이 없이 증거하였고, 그것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나아가서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개의치 아니하고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삶의 달음박질을 당당하게 완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뒤돌아보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삶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도 그렇게 살아오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의 남은 삶을 이처럼 당당하게 달려가며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달려온 우리들에게 거기에 걸 맞는 놀라운 상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열여덟 살 난 여고생이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밤 1030분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에게 납치 되어 성폭행당하고 살해 되어 강가에 버려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이웃이었습니다. 꽃 같은 딸을 잃은 아버지는 그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하였고 한꺼번에 남편과 딸을 잃은 엄마는 삶을 포기한 채 거의 실성하다시피 거리를 해매며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다니고 있어 주변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라남도에서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아들처럼 사랑하던 그의 수제자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구원을 갖다 주는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빼앗아 가는 요인들이 이 마지막 때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말세에는 우리들의 귀가 가려워져 진리의 말씀보다는 허탄한 세상의 풍조와 사탄 마귀의 이끌림을 받게 되고 특별히 돈을 사랑하여 그 돈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도 순식간에 버리는 세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까지 해 주셨던 것입니다.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말세에는 이와 같은 사탄 마귀가 득세하고 우리들의 믿음을 빼앗아 가며 우리 스스로도 돈의 노예가 되어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으니 극히 조심하며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딤전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끝까지 이 믿음을 지켰음을 고백하고 있으니 참으로 우리들의 좋은 믿음의 선각자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믿음을 지키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믿음은 우리 성도들의 목숨과도 같은 영원한 구원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성도들만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고 충성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무리 수고하여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다 아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들에게 보상하시듯 놀라운 상으로 충만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인본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상 주실 것을 기대하는 신본주의적 신앙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사도 바울과 같이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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