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Sun0505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심히 창대하리라! (2022년 9월 18일 주일낮설교)

심히 창대하리라! (2022년 9월 18일 주일낮설교)

심히 창대하리라!

 

9. 18, 2022

:욥기8:5 - 7

:崔仁根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에게 노벨 의학상을 안겨준 페니실린은 의학계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플레밍의 약점 때문에 얻은 거룩한 수확이었습니다. 플레밍은 좀 덜렁거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영국 런던 의과대학 교수시절, 그는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유행하던 부스럼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접시마다 세균을 배양하여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다가 깜빡 뚜껑을 닫지 못하고 퇴근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고 보니까 실험접시마다 새파란 곰팡이들이 끼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의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접시들마다 잔뜩 배양되어 있던 세균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바로 그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발명하게 되었고, 폐렴, 늑막염 등 모든 우리 몸의 염증을 제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고귀한 약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훗날 플레밍은 그렇게 술회했습니다. “나의 발명은 위대한 실수가 가져다 준 축복이었습니다. 나의 성격상 약점이었던 덜렁거림이 오히려 내게 복을 안겨 주었습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능력 있는 사람, 재능이 탁월한 사람, 남다른 장점이 많은 사람만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만 좋아하시고 그런 사람만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이 가진 장점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그들이 가졌던 장점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에만 집착하고 썩을 세상일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버린 사람도 많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욥이 당하는 고통을 친구들이 차마 볼 수가 없어 이런 저런 말로 위로도 하고 권면도 하는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너무나도 미약하고 부족하고 그래서 이겨낼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더 크고 위대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가 다 약점이 있고 그로 인해 또한 고통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플레밍과 같이 실수로 인해 더 큰 역사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으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는 그런 멋진 우리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족하고 미련한 우리들이 이처럼 창대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지, 함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창대하게 됩니다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성도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죄인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 기도에 관해서만큼은 매우 많이 강조하셨고 친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기도의 샘플로 주기도문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직전 유언과도 같이 남겨 주신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하겠다는 약속을 두 번씩이나 거듭 강조하시고 성경에 기록하셔서 우리들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례까지 들어가시면서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행여 알아듣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할까봐 마치 어린 아이에게 설명해 주시듯 아주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들어 설명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우리 예수님의 이와 같은 가르치심을 가슴에 품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응답을 확신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그대로 심히 창대하리라!”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도를 하되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지런히 구하는 것입니다.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확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구하는 모든 것들을 넉넉하게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믿음으로 부지런히,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 반드시 심히 창대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가장 많이 기도하였던 사도바울의 믿음에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믿음으로 기도하는지, 무엇을 구하는지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심히 창대하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한다면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기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마음이 청결하면 창대하게 됩니다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우리들이 믿는 우리들의 하나님은 100%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우리들이 청결하고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속되고 추하고 더러운 죄를 가지고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축복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영육이 청결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첫 설교를 하실 때 이처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시고 그런 복된 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청결입니다. 이와 같은 청결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는데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축복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심히 창대하게 되는 축복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청결한 마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고 더럽게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가장 우리들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바로 귀신들입니다. 감기처럼 자신이 귀신과 함께 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와 같은 귀신들로 인하여 지저분하고 더럽게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처음으로 주시는 사명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미션이 바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그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귀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셨습니다.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성령 충만 받지 못하고 이와 같은 더러운 귀신과 함께 하게 되면 저절로 더러운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은 고사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처럼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제자들에게 첫 번째 미션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더럽게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 가장 넘쳐나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욕심은 죄를 만들어 내게 되고 죄는 가장 더러운 것으로 우리들을 사망으로 이끌고 가서 결국에는 지옥 불에 떨어지게 합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탐욕스러워지고 탐욕은 더러운 우상숭배보다 더 큰 죄가 되어 결국에는 망하는 비참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욕심으로 자신의 이를 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매우 경계하셨고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 기름 부을 때 이와 같은 자들은 제외시키라고 하실 만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딤전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이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속으로는 이처럼 세상의 더러운 이를 탐하면서 겉으로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종인 냥 외식하는 더 더러운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23: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타락한 우리 죄인들의 속에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 더럽고 부끄러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속사람이 청결하게 되어야만 하나님의 기적 같은 창대함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선험적인 조건을 충족시켜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거짓이 없으면 창대하게 됩니다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정직의 반대인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사탄 마귀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사탄 마귀와 짝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더러운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창대하게 되는 축복을 사모한다면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사탄의 찌꺼기인 거짓을 제거하고 정직한 영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크신 축복으로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십일조도 이처럼 정직하게 드려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시고 한 가지 조건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온전한이라고 쓰여진 단어를 영어성경 NIV에서는 "Whole"이라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Whole이라는 말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십일조를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적게 내지 말고 전부를 다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땅을 팔아 스스로 바치면서도 전부가 아닌 일부분을 드렸다가 즉사하는 심판을 받은 이유가 이처럼 정직하지 않고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었습니다.

(5:3-5)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대케 하시는 축복을 사모한다면 그 하나님 앞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는 죽임을 당할 만큼 무서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성군 다윗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범죄 하였다가 회개할 때 가장 먼저 이와 같은 정직을 구하였습니다.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정식한 영으로 회복 받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그대로 더 큰 축복으로 창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욥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한 자세를 취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믿음으로 놀라운 축복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40:3-4)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는 바로 욥과 같이 자신을 미천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욥에게 아낌없이 심히 창대하게 되는 기적 같은 축복을 회복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42:12-15)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은 그렇게도 소중한 성도의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이 가증스러운 표리부동을 버리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긍휼을 사모하는 정직한 영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심히 창대하게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