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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불변성 (2022년 10월 2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불변성

 

10. 2, 2022

:야고보서1:17-18

:崔仁根牧

 

우리는 예외 없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들이 너무나도 많이 변질되어간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변절하는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보다 훨씬 더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하여 우리들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이처럼 변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질문방식으로 요약해 놓은 대요리문답에서 이에 대한 보다 명확한 해답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천사를 어떻게 지으셨는가?

.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영으로 지으셨다. 이는 불멸의 영이며, 거룩하며, 지식에 탁월하며, 능력이 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성호를 찬송케 하셨으나 변할 수 있게 지으셨다.(1:16; 103:20; 21. 106:4; 22:31, 24:36; 삼하14:17; 살후1:17; 벧후2:4)

17.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는가?

.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피조물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는데 남자의 몸을 흙으로 지으시고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지으셨다. 그들에게 살아 있는 이성적이며 불멸하는 영혼을 주셨다.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시고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시고 피조물의 통제권과 함께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나 타락할 수도 있게 지으셨다.(1:27, 28, 2:7, 22, 3:6; 35:11; 7:29, 12:7; 10:28; 23:43; 3:10; 4:24; 2:14, 15)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때를 따라 변덕을 부리며 어리석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간과 달리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는 진리가 바로 우리들이 모든 것을 걸고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이 종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다가 소중한 인생에 엄청난 비극을 맛보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만물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혀 주인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는 10월 첫 주일을 맞아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의 불변성에 관해 공부하면서 변화무상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믿음의 본질에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귀한 말씀을 가슴으로 받고 좋으신 하나님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맡기는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26:34-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미리 앞을 내다보시고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리라.”고 친히 말씀 하시는데도 그 예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선언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고 말입니다. 이는 비단 베드로만의 장담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모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이 호언장담하였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친히 예언하신 그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 다시 말해 단 하룻밤도 지나기 전에 한결 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또한 도망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허망한 장담과 변화무상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26:72-74)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다른 제자들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제자들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거의 대부분이 제자들을 욕하거나 비난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이 그때 그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어쩌면 똑 같이 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한계입니다. 우리들의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은 남을 욕하면서 자신도 똑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7:4-5)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고 말입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은 제 허물은 열인데도 형제의 허물 하나를 탓하며 자신의 모습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예 이와 같은 어리석은 형제 비판을 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에 아무리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하여도 베드로와 같이 변절되고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갈 수가 있느냐?”고 비난 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최소한 우리는 이처럼 연약한 존재로 자기 자신조차도 지킬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미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이처럼 연약하고 변절하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신 것은 연약함을 서로 나누며 함께 공존하라고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6:1-3)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변덕부리지 않도록 만들어 졌으면 더욱 좋겠지만 이와 같은 깊은 뜻으로 변덕스럽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하나님의 그와 같은 거룩한 뜻을 받들어 연약함을 서로 돕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빛을 발하며 승리하는 멋진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비록 변하무상하게 만들어 졌을지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와 같은 연약함을 지고 살아가는 이웃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승리하는 연합의 도구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을 이처럼 연약하게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관해 친히 선포하신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한다.”는 말라기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 마디 말씀만으로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조직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특별한 성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역시 대요리문답에서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불변성의 성품을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7.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 하나님은 영이시니 스스로 존재하심과 영광과 복되심과 완전하심과 자족하심과 영원하심과 불변하심과 신비로우심과 편재하심과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가장 어지심과 거룩하심과 정의로우심과 은혜로우심과 오래 참으심과, 선하고 진실 됨의 풍성하심이 무한한 분이시다.(4:24; 3:14, 34:6; 11:7-9; 7:2; 딤전6:15; 5:48; 17:1; 6:2, 139:1-13, 147:5, 150:2; 3:6; 1:17; 왕상8:27; 4:8, 15:4; 4:13; 16:27; 32:4)

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한 번이라도 말씀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말과 같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25년이 지나고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살이 되고 그 아내 사라의 나이가 90살이 되어 인간적으로는 전혀 자녀를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고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지가 이사야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다음 무려 60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거짓말 같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그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통하여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에 관하여 분명한 진리를 터득하였던 사도들은 한결 같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불변성에 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례로 우리 예수님은 가장 믿었던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배신을 당하고 그렇게 사랑하시며 3년 동안이나 데리고 다니시며 가르치고 교육하였던 제자들이 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 가버려도 단 한 마디도 원망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 이전보다 더 사랑하시고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해답이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숨어 있습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는 말씀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심을 증거해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으로 죄인 된 우리들을 한결 같이 사랑해 주십니다. 이 세상 그 누구라서 자신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도망가서 물고기나 잡고 있는 베드로를 사랑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여 바로 그 베드로를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그것도 부활하시자 말자 최우선으로 먼저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21:1-3)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순하게 그들을 찾아가신 것만 아니라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느라 허기진 베드로에게 친히 물고기와 떡을 구워 조반을 만들어 먹이시고,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그들이 버리고 갔던 사명을 다시 맡겨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그 대답이 바로 히브리서 138절에 있습니다.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배신을 받으셨을 때나, 그렇지 않았을 때나 한결 같이 베드로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 사랑에 감동을 받았던 베드로는 다시금 주님의 손과 발이 되었고 종래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고귀한 예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 감동을 받아 생의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던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그분은 뉴욕 중심가에 있는 큰 교회의 담임이셨던 A. B. Simpson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 히브리서 13:8에서 예수님의 불변하신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 교회를 사임하였습니다. 그처럼 놀라운 예수님의 불변의 사랑을 모른 채 불쌍하게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그 사랑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형무소, 빈민굴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기됵교 선교협회 CMA를 설립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갔습니다. 그가 그 때 감동 받고 쓴 시가 우리들이 애창하는 찬송가에 여러 편 실려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133장입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아무 때든지 영원토록 변함 없는 거룩한 말씀

믿고 순종하는 이의 생명되시며 한량없이 아름다운 기쁜 말일세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 같은 주 예수께 찬송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이는 한결 같고 변함이 없는 예수님을 노래한 심슨 목사님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우리들을 향한 그 놀라우신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오늘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불변하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변할 수밖에 없는 변화무상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태양처럼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들은 든든한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21세기 이 시대에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 함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잡아가는 악당들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결국은 뒷걸음질하며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늘같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먹고 살기 위해 사명도 던져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토록 해왔던 물고기 잡이에서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1:4-6)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기 전에 유언과 같이 남겨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그들은 마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말씀하실 때,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기적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변화무상한 우리 삶의 무능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이 비밀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변치 않으시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말씀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쫓아가야만 하겠습니다. 바로 거기에만 기적이 있고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1:8-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과 함께 하여야 하겠습니다. 수시로 변하는 인간은 결코 우리 삶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그대로 우리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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