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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베드로의 빈 배 (2022년 11월 27일 주일낮설교)

베드로의 빈 배 (2022년 11월 27일 주일낮설교)

베드로의 빈 배

11. 27, 2022

:요한복음21:1-6

說敎:崔仁根 牧師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건강 또한 스스로 잘 챙기면 유지할 수 있는 줄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돈도 많고 몸도 건강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죽었다는 부고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돈도 스스로 벌고 건강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것인 줄로 잘 못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슴에 하나님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돈을 잘 벌고 사회적인 지위와 권세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결국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마음에 살아계시지 못하면 그런 사람들의 삶에는 가증한 소행이 넘쳐나고 선을 행하지 못하니 악한 자로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돈을 잘 벌고 잘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백성들이 될까봐 마음을 쓰셨던 것입니다.

(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신자라면 삶의 근본인 재물의 출처부터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결코 인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것이기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평생을 물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삼고, 다른 것은 몰라도 물고기 잡는 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던 시몬 베드로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고기는 물속에 있는 것들이라 잘 잡힐 때도 있고 이렇게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을 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예수님께서 지시하시니 한 순간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만선이 되었다는 것이 엄청 대조적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재물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누리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21:5-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이 갈릴리 호수에는 지금도 물 반 고기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고기가 바글바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성지순례를 갔을 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그물을 내리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물이 찢어지도록 가득 잡히게 하셨는데 말입니다. 감사의 달 11월을 마지막 보내면서 오늘은 베드로의 빈 배를 중심으로 그 원인과 결과를 찾아보면서 고귀한 은혜와 축복을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씻고 착하고 선한 마음 밭을 준비하여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26:69-74)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이렇게 주님을 부인하기 조금 전에 그 예수님 앞에서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26:33-35)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도 큰소리 쳐놓고 하룻밤도 지나지 못해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을까요? 베드로는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아가는 악랄한 큰 무리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처럼 바라보았던 예수님도 가차 없이 잡아서 끌고 가는 그들의 잔인한 모습 앞에 베드로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누구라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베드로 같은 사람 하나는 문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 죽일 수 있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자신을 하늘 권세를 가지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셔야 할 예수님께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붙잡혀 끌려가는 것을 바라본 베드로는 그만 낙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기 위해서 그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연약한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44:2)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54:4)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 구약 성경에서 이와 같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무려 54번이나 반복하여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인생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하고도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우뚝 설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믿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이겨냈던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용사들과 심지어 사울 왕까지도 두려워 떨었던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 거대한 골리앗을 이기도록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자신을 극복하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인자하심을 노래하였던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118:5-14)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라고 말입니다. 왜 베드로에게는 이와 같은 담대한 믿음이 없었을까요? 만약 그가 이와 같은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이리라고 나섰더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구원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초라한 빈 배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어떤 환경 앞에서도 두려워 떠는 초라한 사람이 되지 말고 다윗같이 골리앗 앞에라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호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그 모든 도모가 끝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불행하게도 베드로는 벌겋게 달았던 냄비가 물에 들어가자 말자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내 놓겠다고 호언장담하였었지만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악당들 앞에서 꼼짝도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난 다음 미련 없이 그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말았으니 더 이상의 미련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닭 쫓던 개 하늘을 쳐다보듯 베드로는 멍하니 서 있다가 생각조차 소름이 돋는 예루살렘을 떠나 터덜터덜 갈릴리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먹고는 살아야 하였으니 그는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는 빈 배의 초라한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과 같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매우 위험한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24:13-17)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떠나게 되면 그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도 예수님이신지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고 그 마음은 근심과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일같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아무런 힘든 일도 없이 공기를 마시고 사니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의 원천인지 모르는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이 고귀한 생명의 원천임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보면서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과 보살핌이 없이는 결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짧지만 강한 말씀을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연중에라도 예수님을 떠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떠나 있는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행여라도 예수님을 떠나 있지 않는지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삶에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베드로의 빈 배만 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시몬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친히 바꾸어 주셨던 복된 이름이었습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님은 너무나도 기뻐하시며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셨던 것입니다.

(16:16-1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만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물고기나 잡으며 살아가던 시몬의 삶을 청산하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새로운 복음의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1:16-17)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베드로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화답이라도 하듯이 담대하게 결단하고 나섰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말입니다.

(5:10-11)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던 배와 그물과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영적인 놀라운 변화를 받고 당시 그 누구도 당당하게 고백하지 못했던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하여 시몬이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 베드로라는 영적인 이름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고 나서니 다른 동료들이 한결 같이 우리도 가겠노라!”고 줄줄이 따라나서지 않았습니까? 무려 여섯 명이 그렇게 베드로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실 때는 더 이상 물고기 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복음을 전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그 이름 위에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던 그 놀라운 이름을 버리고 물고기나 잡아먹고 사는 어부로 되돌아가버렸던 것입니다. 다시 시몬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불행을 스스로 목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저마다 받은 은사와 사명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구별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베드로와 같이 수고를 하는데 얻는 것이 없는 비참한 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되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재물의 축복은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128:1-3)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한없는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재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베드로처럼 고귀한 사명도 던져버리고 육신으로 되돌아가는 어리석은 변덕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어리석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우리 스스로 준비하고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한결 같은 불신의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베드로가 잡으러 갔던 물고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요 그것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변덕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들의 빈 배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선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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