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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2023년 1월 29일 주일낮설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1. 29, 2023

:마가복음4:35-41

說敎:

 

오늘 본문 말씀은 상식과 경험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세게 풍랑이 일어나 배에 물이 가득 고이게 되고 곧 침몰하기 직전인데 그것을 보고 무서워한다고 책망을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날은 저물어 어두워지고 풍랑은 배를 뒤덮을 정도로 거센데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사람이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와 같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으니 이것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겠는지, 의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긍정의 사람이 되라!”는 표어를 내걸고 시작한 2023년도도 벌써 한 달이 저물고 오늘은 그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어느 정도로 긍정의 믿음을 가져야만 이와 같은 절박한 순간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는지 오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마음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받아서 실제적인 믿음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예수님을 믿어도 풍랑은 일어납니다

 

(4:36-37)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예수님을 잘 믿으면 어려움도 없고 고난도 없고 만사형통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신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비아냥거립니다. “너희들은 예수님을 믿잖아? 그 예수님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신다매?”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 내에서도 목사님이나 장로님 그리고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하기는커녕, 뭔가 잘못 된 것처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여기에 대한 보다 더 정확한 진리를 오늘 본문 말씀이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안에 모시고 가는데도 풍랑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비록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그 예수님을 또한 믿고 있지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지붕에 넘어질 수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으며 육신이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육신의 몸에 병이 생기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까닭에 더 많은 육신적인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이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에게는 가시와 같이 자신을 찌르는 고통스러운 몸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제거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고쳐주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극심한 안질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눈에는 눈곱이 끼고 앞을 잘 볼 수가 없는 고통을 짋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늘 글자를 써도 크게 썼다고 하였습니다.

(6: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예수님을 잘 믿어도 우리 성도들에게는 고난과 고통이라는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이 고통을 당하여도 예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거두어야 하고 자신이 고통의 늪에 빠졌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 잘못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뭘 조금 잘못 했다고 풍랑을 일으켜 엎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사탄 마귀의 장난임을 깨닫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더욱 당당하고 의심 없는 믿음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긍정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이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읽는다면 참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너무나도 신성시 하고 전능자로 포장한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하는 이야기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탄생부터 공생애의 숱한 이적과 기사 및 십자가의 죽으심을 인정할 수가 없고 또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거세게 일어나는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순식간에 잠잠하게 하였다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었던 제자들까지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도 예수님과 동행하며 숱하게도 많은 이적과 기사를 목도하고 체험하였던 제자들까지도 이와 같은 예수님의 역사를 순전하게 받아들이고 믿을 수가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예수님의 고향에서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예수님과 같이 자라났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의 그와 같은 남 다른 이적과 기사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도 없는 것입니다.

(13:54-58)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중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에 순간순간 닥쳐오는 고통의 풍랑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우리 예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적의 도우심을 받는 최상의 길은 그와 같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9:22-24)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바로 그 아이의 아비가 믿는다고 선포하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외칠 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늘처럼 의지하던 오라비가 죽었을 때 그들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허둥대지 않았습니다. 얼렁 그들 속으로 달려가서 나사로를 살려내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 이전에 그들의 믿음을 정비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먼저 하셨습니다.

(11:24-27)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을 뒤덮는 풍랑이라는 고통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예수님 앞에 먼저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이와 같은 우리들의 믿음을 먼저 확인하신 후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풍랑을 무서워하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드리어 우리는 오늘 말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상식을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경험에 입각하여 움직이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물론 우리들의 지식을 따라 역사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들의 경험과 상식과 지식을 엎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 넘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광풍이 일어나 배를 덮치면 누구라서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당장에라도 배가 뒤집히고 소중한 목숨이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 지경이 되면 그 누구라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렇게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고 말입니다.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는 책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책망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마침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바로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물리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신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풍랑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 거센 풍랑 앞에 선 제자들에게 바라셨던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혼비백산하여 떠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이 없다고 책망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무서운 위험에 노출 되어 있었던 다윗은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총애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는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주님을 찬양할 그 때 그는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는 비참한 때였습니다. 사울 왕을 비롯하여 무려 3천 명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오는 그런 절박한 때에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과 함께 평생을 동행하시며 갖가지 이적과 기사로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거센 고통의 풍랑을 잠잠하게 잠재우기를 원한다면 다윗과 같은 이런 강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능히 이 모든 풍랑을 잠재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맡겨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나사로처럼 죽어도 다시 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긍정의 사고와 확고한 믿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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