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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해야 합니까? (2023년 2월 5일 주일낮설교)

왜 사랑해야 합니까?

2. 5, 2023

:요한13:34-35

說敎:

 

아마도 우리 성도들은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장 많이 불순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며 명령하시는 단 하나의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십계명을 주셨고 신약에서는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두 계명의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을 가슴으로 받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서 미워 할 사람은 여전히 미워하고 자기에게 유익하고 좋은 사람들만 골라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실질적인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왜 사랑해야 합니까?”라는 것입니다.

개척 초기에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사업을 인수한 오 모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업체의 원래 주인은 페드럴웨이에서 살고 있었던 신 모 장로였습니다. 상대가 장로였기 때문에 매상책업도 하지 않은 채 믿고 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수하고 보니 매상이 절반도 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은 장로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때에 우리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다가 그만이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원수라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오집사가 이 종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그가 대뜸 묻는 말이, “목사님, 사업해 보셨습니까?” “장로한테 속아보았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저런 가증스러운 장로도 사랑하라면 저는 이런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고는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50년을 설교하고 있지만 그 때처럼 설교하고 나서 야단맞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충분히 그의 울분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30대의 젊은 나이였고 경험도 부족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제 자신도 큰 상처를 입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왜 그 못된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까?”하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수 십, 수 백 가지도 넘지만 오늘은 이와 같은 질문에 가장 실제적인 해답을 찾아보면서 진정한 말세지 말의 신앙을 회복해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씻고 말씀에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살인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5:21-24)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나 지금이나 믿음의 세계에서나 불신의 세계에서나 사람을 죽인 살인죄는 가장 강력하게 처벌 받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죄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이와 같은 살인죄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살인죄는 꼭 사람을 죽여서만 받는 심판이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여도, 다시 말해 이웃을 미워하여도 동일하게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상의 말씀에서 밑줄 친 부분을 조용히 묵상해 보신다면 살인죄나 형제에게 노하는 죄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율법에 명시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이웃에게 라가라 하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 지옥불에 들어가리라고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용어들은 사랑하라!”는 말씀의 역설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싫고 또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겠다고 하시는데 연약한 우리들이 어디로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을 달래고 자신의 아집을 접어둔 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하3:27-30)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죽자 사울 편에 서 있었던 사람들과 다윗 편에 서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 끊임 없이 전쟁이 있었습니다. 다윗 편에서는 요압장군이 있었고 사울의 편에서는 넬의 아들 아브넬장군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치열하게 전쟁을 하다가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아브넬을 철천지원수로 여겼습니다. 동생을 죽인 적장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브넬이 먼 미래의 이스라엘을 내다볼 때 이렇게 사울 편과 다윗 편이 서로 싸워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다윗에게 찾아와 화해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윗의 수하에 들어와 다윗을 섬기며 충성하겠다고 서약하였습니다. 다윗 또한 이를 좋게 여기고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여 아브넬을 자신의 충복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요압은 다윗을 찾아와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동생을 죽인 원수를 어떻게 함께 다윗을 섬기는 충복으로 받아줄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요압은 다윗도 모르게 아브넬을 불러 화해하는 척 하면서 아브넬을 찔러 죽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금식하면서 가슴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非命橫死(비명횡사)한 아브넬의 시신을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잔인한 요압을 제거하지 못하고 신하로 두고 있어야 하는 약한 자신을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까지 올리며 요압을 저주하였습니다.

(삼하3: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삼하3:28-30)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압은 동생을 죽인 원수인 아브넬을 비록 왕이 총애한다 할지라도 기어이 죽여 자신의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고야 말았습니다. 죽어도 아브넬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요압이 비록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곁에서 충성하는 척 하였지만 다윗은 그를 진심으로 가슴에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생 끝자락에 힘이 있고 젊음이 있는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까지 남겨 그 잔인한 요압을 심판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앞서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죄로 심판을 받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압이 인생 말년에 당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정도 정확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 있는 용사였었지만 요압의 말로는 너무나도 비참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수를 품지 못하고 영원히 할 수 없다고 제거하게 되면 나 또한 누군가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제거하게 된다는 사실을 요압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왕상2:29-34)

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에게 해코지 하고 악을 행하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요압의 케이스를 통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죽고 나서 후손이라도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요압처럼 이웃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나 시간이나 정성이나 재물을 주는 것입니다.

트럭을 운전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난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이웃을 돕고 섬기는 삶을 생활철학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소박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어느 날도 다름 없이 트럭을 끌고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는데 멋진 리무진 한 대가 타이어가 펑크 나서 슐더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지랖 넓게도 그 뒤에다 트럭을 세우고 다가갔습니다. 다가가 보니 창문이 내려가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 대재벌인 트럼프였습니다. 깜짝 놀라며 인사를 하고 도와드리겠다고 하며 타이어를 금방 바꾸어주었습니다. 트럼프가 무엇이든지 사례하겠다고 자꾸만 강권하였지만 트럭 운전수는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사례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지 않느냐며 말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운전사는 정 그러시다면 저희 아내에게 장미 한 다즌을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아내가 트럼프씨가 보내주신 장미에 크게 행복해 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트럼프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면서 주소를 물었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진짜 집으로 장미 두 다즌 24송이와 함께 편지 한통이 배달 되어왔습니다. 그 편지 속에는 조건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그 진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당신이 지고 있는 모든 빚은 제가 다 갚아드렸습니다. 당신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고픈 친구 트럼프로부터.”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압과 다윗, 그리고 트럼프와 트럭 운전사의 묘한 대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을 함께 하여도 같이 갈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사랑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함께 가는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사랑은 단순한 윤리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신앙의 근본 핵심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설정 되는 소중한 기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는 귀한 성도가 될 수 있으나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로 전락하고 만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리로 아무리 정교하게 깎아 목걸이로 만들어도 그것은 다이아몬드와 차별이 나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유리를 다이아로 착각하고 속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이몬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속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산다고 떠들어대고 잘난 척하여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단정하셨습니다. 아무리 겉만 번지르르 하고 사람이 보기에 잘 믿는 척 하여도 사랑이 없는 그 모든 것은 거짓부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고 허망합니다. 사랑이 없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無用之物(무용지물)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랑이 절실한 말세입니다. 다소 부족하고 어리석어도 내면에 사랑을 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후손들이 복을 받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 유일한 길은 사랑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그 해답을 받았으니 이제는 열심을 품고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은총으로 내일을 복되게 살아가는, 살아 있는 영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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