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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예수님을 찾았을까요? (2023년 3월 12일 주일낮설교)

그들은 왜 예수님을 찾았을까요?

3. 12, 2023

:마가복음  : 25 - 34

說敎:崔仁 牧師

 

어린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를 찾습니다. 배가 고파도 찾고 놀다가 다쳐도 찾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찾습니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본능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듯 엄마를 본능적으로 찾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와 같은 아이 때문에 짜증내거나 거절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 엄마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우리 모두 그런 엄마가 계셨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이 땅에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선한 일 좋은 일만 하시는데도 싫어하고 배척하고 증오하는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26:3-5)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은 참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힘을 다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잡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반대로 예수님을 찾아 나오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식으로 복된 말씀을 엮어보았습니다. 봄을 여는 아름다운 3월 중순에 이와 같은 귀한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고 어린 아이와 같이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찾는 그런 순박한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5:25-26)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무슨 질병이 되었던지 간에 12년이나 같은 증세로 아프다면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혈루병이라면 더 더욱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질병을 고쳐보려고 의원이라는 의원을 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시도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정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는 못 고치실 질병이 없고 능력이 한이 없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마지막으로 그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5:27-28)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이름 없는 이 여인의 간절한 바램과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피를 흘리는 혈루병은 부정한 병이라 감히 대중가운데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15: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15장에서 이와 같은 유출병의 부정함에 대해 매우 자세하고도 길게 말씀해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아무도 몰래 예수님의 뒤로 가서 살며시 예수님의 못이라도 만지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의 그녀는 그 얼마나 떨리고 두려웠겠습니까? 하지만 그 무서운 병마에서 해방되고픈 간절함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였고 이처럼 예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에 자신의 몸에서 치유의 증거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으로 고생하고 모든 재산도 다 날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그 무서운 병마에서 순식간에 나음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 기적은 오직 하나 예수님을 찾아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2년 동안 병을 앓았다면 낫고 싶은 간절함이 어떠하였겠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간절함은 주님께로 가면 반드시 나을 수 있을거야!”라는 확신이 되었고 그와 같은 확신과 긍정적인 믿음은 결국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와 같이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또 만나주겠다고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혈루병 걸린 여인과 같이 담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을 향한 거룩한 기적이 그 예수님의 품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1-3)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고 비난하고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자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12: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바리새인 중에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아무도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의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그는 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권세와 부귀영화로 결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3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답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높은 권력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며 죽어라고 공부하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서 권세를 누리고 엄청난 돈을 누리게 되면 그것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권세나 재물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나는 허무주의자들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엊그저께 한국의 메이저 신물에 나온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건희씨의 딸이 호텔 신라의 오너인데 작년 한 해의 연봉이 36억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1년에 36억을 받는다고 하면 놀랄 만 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백성들의 대부분이 평생을 벌어도 손에 쥐어보지 못 할 돈을 단 1년에 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린다거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도 거기에 못지않은 출세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시 공회 의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 예나 지금이나 국회의원 쯤 되면 최고로 출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을까요? 그랬습니다. 육신의 한계를 맛본 그는 영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그는 깨어 있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사람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누린다고 해도 영혼의 만족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이 인생 막판에 헛되다!”고 탄식하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1:1-3)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도 가져야 합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보면 너무나도 소중한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쁜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미워하며 이를 갈며 살아야 하는지, 하루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은 얼마이면 되는지......, 오늘 밤이라도 심장이 멎어버리면 아무 것도 소용없는데 왜 그렇게도 아옹다옹 하며 살아가는지, 자신의 삶을 한 번쯤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찾아 나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은 그는 자신의 모든 동족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으나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동족의 미움과 버림을 받을 것도 개의치 아니하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고 나중에 그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소중한 재산을 털어 예수님의 마지막 장례를 준비하는 헌신적인 인생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성경에 남기는 가장 현명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놀라운 결단을 하지 못했다면 당대에는 권세를 누리며 잘 살았을는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성경의 주인공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결코 육신적인 삶에 만족하지 말고 신령한 영혼을 위한 변화와 결단으로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와 같이 행동하는 신앙으로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7:50-52)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19:39-40)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고통당하는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앞서 말씀 드린 혈루병 여인이나 니고데모가 자기 자신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이었다면 마가복음 2장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웃을 위해 예수님을 찾은 보기 드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름 없는 네 사람의 정성과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예수님께 아름답게 비추어졌으면 예수님께서 바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병을 단숨에 고쳐주셨을까요? 실제로 그들 네 사람의 헌신을 묵상해 보면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진정으로 가슴에 새기고 본 받아야 할 삶의 모습이 바로 이 네 사람의 선행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믿음과 선행은 죽어가던 소망 없는 한 사람의 생명과 미래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중풍병에 걸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이란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그 환자를 들것에 싣고 힘을 다해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어서 네 명의 들것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마지막 묘수로 들것을 지붕위로 들고 가서 그곳에서 지붕을 뜯어내고 들것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리는 거대한 작업을 하였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과연 말만큼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엄청난 수고와 작업 끝에 그들은 마침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큰 감동을 받으시고 즉석에서 그 병자를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환자의 믿음이 아니라 환자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말입니다.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이웃을 향한 그 네 사람의 희생과 사랑은 지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그들의 사심 없는 아름다운 헌신에 감동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즉석에서 그 환자를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헌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날은 너무나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는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경기에 우리들의 삶도 힘들고 어렵지만 선교사님들을 위해 선교헌금을 드리고 튀르키예와 같은 지진의 희생자들을 위해 구제금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이렇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지역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요 사랑이요 도우심이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올 때 이와 같은 믿음이 깔려 있어야 비로소 칭찬 듣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대한민국에서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20대의 한 청년이 경찰서에서 감사장을 받고 이웃들에게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1톤 트럭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가드레인을 들이받으며 정상적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뒤따라가던 20대 승용차 운전자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크락션도 울려보고 하이빔도 켜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트럭은 계속 가드레인을 들이받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그 트럭 오른쪽으로 승용차를 붙이며 달리는 트럭을 세워보려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112에 신고하고 트럭 앞으로 달려 나가서 자신의 승용차에 트럭이 들이받도록 하여 간신히 세웠습니다. 그런데 트럭 안에는 운전자가 실신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기발한 희생이 없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고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을 것이 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청년이 모른 척 하고 지나가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 상황이 오늘 우리들 앞에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처신하였을까요? 이웃을 향한 조건 없는 희생이 이처럼 큰 사고를 방지하고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을 찾아야 하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웃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서도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 주변은 이웃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예수님을 찾지 않으니 과연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이 잠자는 우리들의 영혼을 깨우고 예수님의 칭찬과 기적을 만들어 내는 축복의 지름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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