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Mon0506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소심한 사람의 한계 (2023년 3월 19일 주일낮설교)

소심한 사람의 한계 (2023년 3월 19일 주일낮설교)

소심한 사람의 한계

3. 19, 2023

:열왕기하 13 : 14 - 21

說敎:崔仁 牧師

 

['총기 천국'미국에서 3살짜리 여자 동생이 쏜 총에 4살짜리 언니가 숨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12일 오후 8시께 텍사스주 휴스턴 한 아파트에서 3세 여아가 부모의 총을 만지다 총탄이 발사돼 옆에 있던 4세 언니가 맞아 숨졌다.

수사 당국은 3세 여아가 침실 안에 놓여있던 장전된 상태의 반자동 권총을 만지다 사고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집 안에는 아이의 부모와 그 친구들까지 성인 5명이 있었으나, 아이들은 방 안에 단둘이만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총소리를 듣고 부모들이 방 안으로 달려갔지만, 아이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미 가구의 약 40%가 총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중 총기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 가구는 절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은 44,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 내 총격 사건을 추적하는 비영리 단체 '총기 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지난해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총기로 사망한 사건은 약 1700건으로, 아동·청소년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11세 미만 사망도 314건이나 됐다.](2023313일자 SeattleN에서 발췌)

우리는 이 어처구니 없고 안타까운 사건을 통해서 안일하고 소극적인 총기관리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놓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적극적이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죽을병에 걸려 임종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친히 문안하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 때 엘리사는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아스 왕에게 큰 선물을 주려고 그를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아스 왕은 엘리사가 기대했던 그런 긍정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소심한 행동으로 엘리사의 분통을 터뜨렸고 엘리사의 마지막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요아스 왕을 중심으로 소심하고 소극적인 삶을 청산하고 대범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를 덧입을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심한 요아스는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왕하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오늘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입니다.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12대 왕으로 16년을 치리하였으나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왕하13:10-11)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 칠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요아스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며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답습하는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대 최고의 선지자로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놓았던 엘리사의 임종을 지키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악을 자행하였던 그가 마지막 엘리사의 임종 소식을 듣고 친히 달려 간 것과 그 엘리사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부르짖었던 것은 엘리사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말로만 그렇게 하였을 뿐 그 엘리사의 마지막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 직전에 있는 엘리사의 마음만 아프게 하고 노를 돋구는 역할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소심하고 하나님의 종의 속 깊은 뜻을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입으로 시인하는 말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행함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말만 그럴 듯하게 하고 행함이 없는 자를 미련한 자라고 정의해 놓고 있습니다.

(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말로만 하는 자들을 경계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7:21-2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아스는 친히 엘리사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문안하고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라고 애정을 표현하였지만 정작 그 엘리사로 하여금 분노하도록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황하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임종 직전에 있던 엘리사를 이렇게 분노케 한 요아스 왕의 잘못은 과연 무엇입니까?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하는 말과 행동하는 모습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요아스 왕의 이와 같은 핸디캡을 교훈으로 삼아 사는 날 동안 대범하고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신실한 신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소심한 요아스는 지혜가 부족하였습니다

(왕하13:15-17)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요아스 왕도 비록 악하기는 하였지만 엘리사의 임종을 지키러 온 것을 보면 엘리사로 말미암아 많은 감동과 존경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찾아온 자신에게 활과 살을 취하게 하여 화살을 날리게 하고, 또한 살을 취하게 하여 땅을 치게 하심은 필히 놀라운 비밀과 축복이 숨어 있을 줄을 깨달아야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보통 선지자가 아니라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아스 왕 자신도 그와 같은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왕하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임종을 맞고 있는 엘리사가 유언과도 같이 주시는 이 모든 말씀 속에 엄청난 비밀이 있을 줄 믿고 거기에 걸맞는 반응과 화답을 하였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나도 소심한 나머지 엘리사가 살을 잡고 땅을 치라고 하였을 때 그는 단 세 번만 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은 결국 엘리사를 실망시키고 노를 발하게 하고 말았으니 한 마디로 요아스는 지혜가 부족한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왜 그와 같은 명령을 하였는지 진정으로 깨닫지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요아스는 지혜가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이와 같은 지혜를 당시 가장 값진 보석이었던 진주보다 더 사모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혜는 이렇게도 고귀한 것입니다. 만약 요아스 왕이 이런 지혜가 있어서 살로 땅을 세 번만 치고 말 것이 아니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쳤더라면 엘리사가 얼마나 기뻐하였으며 요아스 왕 자신은 또 얼마나 영광스럽게 대적을 물리치고 태평성대를 누렸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아스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소심하고 지혜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지혜로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알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게 되는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주변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많지만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고 바라시는 지혜를 얻기 위해 애쓰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잘 사는 것 같아도 요아스 왕처럼 하나님의 사람의 진노를 돋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지혜보다 더 복되고 귀한 것은 없는 줄 알고 지혜를 얻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심한 요아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왕하13:18-19)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불행하게도 요아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엘리사가 생의 마지막 힘을 다 끓어 모아 요아스에게 주는 마지막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왔겠습니까?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와 같은 미련한 요아스 왕에게 노를 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는 엘리사가 요청하는 살을 취하고 땅을 치는 일을 왜 단 세 번만 하였을까요? 앞서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요아스는 엘리사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지혜가 부족하여 깨닫지를 못하였고 또한 땅을 치는 만큼 기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척동자도 엘리사의 요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이미 엘리사는 요아스로 하여금 화살을 쏘게 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왕하13: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살을 취하여 땅을 치라고 하였는데 요아스는 그 엘리사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세 번만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엘리사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고 땅을 치는 만큼 놀라운 기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엘리사를 만난 그 절호의 기회를 송두리 채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그를 바라보는 엘리사의 가슴은 너무나도 안타까왔고 그것이 쌓여서 분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엘리사는 왜 직접적으로 요아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고 또한 땅을 여러 번 치라고 하지 않고 요아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 치도록 하였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알아서 복을 주시지 않고 기도하고 구하도록 하심과 믿음의 분량만큼 복을 주시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고 개나 돼지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요아스에게 아람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지 아니하고 구하는 만큼 다시 말해 요아스의 믿음 만큼만 정복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여도 재물을 누리고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재물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들을 사랑하셔도 하나님의 축복을 간직할 만한 믿음이 없다면 복을 쏟아 부어 주지 않으신다는 진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요아스는 그 어떤 왕도 엘리사의 임종을 지키는 행운을 얻지 못했으나 그 소중한 순간을 맞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는 그 소중한 축복의 기회를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사람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부족하였기 때문이요, 땅을 무수히 치고 대적을 무수히 정복하는 그 절대절호의 기회를 믿음이 없는 까닭에 세 번만 이기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눈물로 엘리사의 임종을 지켰으나 오히려 엘리사의 분노만 격발하는 소심한 왕으로 역사에 남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요아스는 말세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과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중한 기회를 인생의 턴닝포인트로 삼기 위해서는 언행이 일치하는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담대한 배짱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소심하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세월을 낭비하게 되면 요아스와 같이 그 소중한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 성품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그와 같은 성품에 믿음을 담아야 하늘의 기적을 땅에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소중한 긍정의 믿음으로 소중한 기회를 축복으로 변화시켜 놓을 수 있는 지혜와 언행일치로 무장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귀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