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복이 되게 하라! (2023년 4월 2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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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2 April 2023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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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복이 되게 하라!
고난주일
4. 2, 2023
本文:빌립보서 2: 5 - 11
說敎:崔仁根 牧師
오늘은 2023년도 고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당하신 고난을 되새기며 그 고난에 참여하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고난이 닥칠 때 그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발견하고 예수님처럼 순종하여 그 고난으로 인하여 더 큰 축복을 만들어 내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난을 맞았을 때 어떻게 그 고난을 극복하셨으며 그 고난을 이기심으로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놓으셨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수고와 고통이 없는 풍요로운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도 엄마의 말할 수 없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부모님들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을 통해서 오늘 이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에 대한 바른 가치를 가지고 성숙하게 그 고난을 이겨냄으로 더 크고 위대한 삶을 기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과 같은 고난주일을 주시고 매년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과 고난을 기리며 영육이 함께 성숙해 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서 예수님의 고난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삶에 황금 같은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겸손으로 무장하셨습니다
(빌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무장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은 이제 더 이상 하늘의 하나님이 아니라 숱하게 존재하는 땅의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卑下(비하)하시고 죄인 중의 하나와 같이 되셔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 소중한 내면적인 준비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다가 한 순간에 탄핵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견뎌내기란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나도 극과 극의 충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가 되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두는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치욕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 또한 감옥에 갇힌 몸으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을 때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내셨고 그렇게 고난을 이겨내신 다음에는 어떠한 변화와 대우를 받게 되셨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기록하여 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최상의 방법은 바로 자신을 더 낮추고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누구인데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흥분하며 고통을 당하는 일에 분노하고 길길이 날뛰는 것보다는 “나는 죄인이야, 죄인이 죄인 취급 받으며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이 고통을 인하여 죄의 길을 청산하고 의의 길로 가는 기회로 삼아야지......,”라고 할 때 훨씬 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여 하나님인 자신을 죄인인 사람과 같이 스스로를 낮추시고 겸손으로 옷을 갈아 입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2023년도 고난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이와 같은 모습을 가슴에 새기고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여 스스로 인정받으려 하고 오히려 남을 비난하며 욕하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한 자가 되고 그 결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내치시고 심판하시게 되고 사람들 또한 그와 같은 자와 함께 하기를 싫어함으로 외톨이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자가 고난주일에 최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온유와 겸손을 본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명령을 받으셨습니다. 평소에도 예수님은 이와 같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시고 또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37-38)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친히 예수님을 우리들을 위해 이 땅에 보내셨다고 성경에 기록하시고 증거하고 계십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는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은 날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이 배워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어린 양과 같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시면 우리들의 죄가 씻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 피흘림이지 이것이 무엇입니까?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는 십자가의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라서 상상도 못할 이와 같은 십자가의 고통을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무서운 고통을 다 아시면서도 순종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바로 이와 같은 초인적인 순종으로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이기시고 왕 중의 왕이 되셨습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9절은 “이러므로”라는 연결 접속사로 시작이 됩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어떻게 순종하셨는가에 대한 부언 설명이 되고 또한 그와 같은 순종에 대한 결과적인 축복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죽어야 하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살을 찢고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그 무서운 하나님의 요구에도 두 말 하지 않으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예수님에게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놀라운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붙잡혀 짐승처럼 끌려가며 채찍에 맞으셨고 끝내는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이요 모욕이요 치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와 같은 모든 고통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으시고 감당하셨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에 합당한 보상으로 예수님을 높이 세워주셨으니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그 이름 앞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그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듯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독생자 이삭도 아낌 없이 바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堪耐)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즉시 그와 같은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보상하여 주셨습니다.
(창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고 모진 고통을 다 이겨낸 욥에게도 예외 없이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오늘 우리들에게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면 이처럼 아낌 없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겸손하게 낮아져서 순종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 고난주일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같이 엄청난 축복으로 고통을 이겨낸 보상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