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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2023년 4월 16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4. 16, 2023

:역대하15:1-7

說敎: 牧師

 

남녀가 사랑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일방통행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는 만큼 받게 되고 받은 만큼 주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사의 평범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받으면 행복이고, 사랑하는데 반신반의 하는 상대를 발견하면 불행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데 전혀 반응이 없으면 불행을 넘어 이별이 되고 맙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랑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는 비단 인간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의 기본을 하나님은 아주 짧지만 다음과 같이 강하게 표현해 두셨습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을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사랑해 주시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보답할양으로 일생을 바쳐 그 하나님께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에 화답하기 위해 자신도 목숨을 내어 놓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일생을 다 바쳤던 것입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은 사도 바울에게 일생을 동행하시며 최고의 사도가 되도록 사용하여 주셨고 신약성경 절반을 기록하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동일한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거룩한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을 통하여서 우리는 왜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토록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화답할 차례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한갓 한 계절의 행사가 아니었다면 행동으로 사도 바울과 같이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당연한 성도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님께서 미리 가르쳐 주신 말씀 속에서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대하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우리가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려면 상대와 함께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면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보배를 가득 담고 있는 아가서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눈물겹도록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기도하러 가셨는데 12명 중에 특별히 뽑아 택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사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깨어 있어 함께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였고 기도는커녕 오히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그와 같은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시거나 미워하시지 아니하고 오히려 함께 가자고 따뜻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가 어떤 상황과 조건에 놓여 있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함께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들도 사랑한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대하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면 우리들의 삶에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마르다와 마리아의 푸념처럼 예수님만 함께 하신다면 죽을 일도 없고 눈물 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바로 이렇게 풍성한 것입니다.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만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입니다.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고 말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설명 드린 모든 말씀들을 하나로 묶어 고백하는 최고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이 그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려면 우리들이 먼저 주님과 함께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시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깊은 사랑으로 이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대하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사랑은 항상 목마르고 항상 보고 싶고 잠시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워보신 엄마라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의심의 여지없이 잘 알 것입니다. 아기는 한 순간이라도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며불며 엄마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이보다 엄마는 한 순간도 그 사랑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심리와 현상을 우리는 역시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6:1)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이켰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잠시도 혼자 있지를 못하고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목이 마른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42:1-5)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 시는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고라 자손들의 시입니다. 고라 자손들이 누구입니까? 오만하고 교만하여 모세를 대항하다가 땅이 갈라져 그 속으로 빠져 죽은 무서운 심판을 받은 후손들이 아닙니까? 그 후손들이 참회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애타는 마음이 녹아져 있는 시가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린 시편 42편입니다. 구구절절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눈물겹도록 묻어나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그 사랑은 목이 타도록 찾는데서 입증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간절히 찾는 자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각양 귀한 것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신령한 사랑에 목이 마른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아쉬울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는데 간절함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하나님을 찾고 더 많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고 이웃들과 나누는 진정한 성도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눈동자 같이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가차 없이 심판하신다는 사실 또한 두려움으로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실제로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많은 복을 받았던 아사 왕이 말년에 발에 병이 생기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원을 찾고 의지하였다가 죽는 끔찍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대하16:12-13)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에 죽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좋을 때나 힘들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최고의 길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버리면 버림을 받습니다

(대하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불행하게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사울 왕이 대표적이고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도 비참하게 버림을 받았는지 그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이나 다윗이나 한결 같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이는 자신들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버리시는 것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버림을 받게 된 것은 그가 먼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사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을 받았던 가룟 유다도 동일하게 버림받은 비참한 인물이었습니다.

(1:24-26)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버림받은 유다와 선택 받은 맛디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만사가 사람이 하는 것 같아도 실질적으로는 눈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 2절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축복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소중한 하나님의 은총을 사사로운 자신의 생각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빼앗기는 것은 인생 최악의 불행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한 순간에 사울처럼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빠질 수 있고 가룟 유다와 같이 세상 재물에 눈이 어두워 거룩하신 하나님도 저버리는 미련한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기록하시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나를 버리면 나도 너희를 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을 보내고 우리는 그 첫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 복된 계절에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도 하나님의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하나님을 시시때때로 간절히 찾으며 호리라고 그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깨어서 기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한 순간도 이 놀라운 진리를 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들을 찾으시고 함께하시고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 또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되고 귀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날 동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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