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와 인생 (2023년 5월 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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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7 May 2023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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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와 인생
어린이주일
5. 7, 2023
本文:출애굽기2: 1 - 10
說敎:崔仁根 牧師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경이 한 때 감옥에 갇혀 모든 인생이 끝이 나는 것 같은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리토리아(Pretoria)에 있는 서(西)아프리카 육군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천신만고 끝에 그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칠은 그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며칠 동안 프리토리아 근방을 헤매고 다녀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칠 대로 지친 그는 계곡 아래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마침내 결단하였습니다. 이 산에서 굶어 죽느니 저 집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해보리라고 말입니다. 자기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하나로 용기를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불쌍한 자신을 받아 줄 친절한 영혼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인도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계곡을 내려가 그 수많은 집들 중 한 곳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 집은 이 근처 수마일 내에서 당신을 살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집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오늘까지 우리들이 이 힘든 세상에서 넘어지지 아니하고 그나마 믿음으로 굳게 서서 이렇게 거룩한 주일을 지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신이 잘 된 모든 공로가 자신에게 있는 줄 알고 교만하거나 오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결단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겸손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과 출애굽기에는 한 사람 모세의 모든 인생 여정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전 여정이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눈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세를 꼭 잡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2023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 인생 여정에 하나님의 손이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승리하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당당하게 주어진 삶을 모세처럼 승리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버려진 모세와 구조된 모세
(출2:2-3)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출2:5-9)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요셉으로 인해 야곱과 70여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이주를 한 이후 하나님은 기적 같은 축복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요셉도 죽고 그 요셉에게 호의적이었던 왕도 죽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새롭게 왕위에 오른 바로 왕은 히브리민족의 번성을 막기 위해 아들을 낳으면 모조리 죽이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모든 산파들은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아들이면 그 즉석에서 죽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이와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산파들이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모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1:15-17)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부모의 품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바로의 칙령에 따라 사내아이는 발견되는 즉시 죽임을 당하여야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모세의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석 달밖에 되지 않은 모세를 버려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을 바른 광주리에 모세를 넣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며 강가에다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에서 목욕을 하던 바로의 딸인 공주가 그 광주리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모세를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모조리 죽이라고 어명을 내린 바로 그 대상인 히브리인의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주는 그 아이를 건져내고 키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틈을 타고 모세의 누이가 공주에게로 가서, “그 아이를 위해 유모를 구해 줄 것이냐?”고 하였고 바로 모세의 어머니를 추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모세를 돈을 받고 젖을 먹이며 죽임을 당하지 않고 키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것이 정녕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것이 사람의 생사홥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인 것입니다. 아이는 결코 우연히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 하나를 갖지 못해 불행한 여인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것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평생을 통해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攝理(섭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섭리라는 단어는 비단 신학적으로 사용되고 교회에서만 사용되는 용어는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수록되어 있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들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뉴엣센스 국어사전에는 섭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두었습니다. “신 또는 성령께서 그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친히 도우시고 다스리시며 인도하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태어나자 말자 죽어야만 했던 모세가 죽이라고 명령한 그 왕의 딸의 손에 의해 살아나게 되었고 친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일어난 모세와 실패한 모세
(출2:11-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패기 왕성하였던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장성할 때까지 문무를 익히며 잘 자라났습니다. 그는 젊은 패기의 자신감과 바로의 왕자라는 배경으로 어쩌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오죽하였으면 자신의 민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단숨에 쳐 죽였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순간에 살인자가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바로의 궁에서 멀리멀리 도망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40년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며 친히 섭리하시지만 사사롭게 대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잘못을 하게 되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모세를 통하여 분명하게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든, 동족을 보호하든 그 모든 일은 그 민족을 애굽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소관임을 모세는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왕자인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엄청난 불행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덜 익은 과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보내시고 4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단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히12:9-10)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참고 견디는 덕을 쌓아야 합니다. 교회든 직장이든 심지어는 가정에서라도 경솔하게 판단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모세의 핸디캡으로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의 불행을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욥과 같은 과묵한 인내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조급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들의 삶을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과 자비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고난도 행복도 다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주시는 것임을 믿고 모세처럼 조급하여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능한 모세와 유능한 모세
(출3:10-11)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4:10-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광야에 머물고 있을 동안 자신을 얼마나 성찰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초야에 묻혀 양들은 칠 수 있을지언정 그 놀라운 바로, 자기 자신을 잡아 죽이려던 그 바로 앞에는 결단코 설 수 없다는 것과 “누가 너로 우리들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애굽 사람을 떼려 죽인 것과 같이 우리들도 죽이려느냐?”고 항변하던 동족의 그 차가운 소리를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화를 내실 정도로 무기력하고 소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의 지나친 적극성도, 지나친 소극성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주의해야 할 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스스로 민족을 해방시키려다 실패하였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입이 되고 힘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셔도 스스로의 연약함을 주장하고 있으니 또 다시 하나님을 화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모세가 스스로는 하나님의 대사를 이룰 수가 없다고 외치는 부정적인 생각을 그의 손에 쥐어주신 지팡이로 돌이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출4: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 이후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쥐어 주신 지팡이를 들고 그 힘들고 어려운 지도자의 길을 성공적으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출1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모세는 스스로는 연약하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부족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놀라운 사명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당하게 잘 감당하여 명실공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히11:24-29)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짧은 시간에 모세의 일생을 일일이 다 논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모세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어야만 하였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고 오히려 바로의 왕궁에서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신 다음 광야로 내어 보내시고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하시고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시어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도록 하시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확실한 진리를 듣고 배웠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부족하고 강함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깨닫고 잘나도 자만하지 말고 못나도 좌절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들의 삶에는 축복과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시121:7-8)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된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어린 생명을 하나님의 뜻대로 키워내고 또한 우리들을 이 땅에 존재케 하신 부모님의 마지막 때를 평안하시고 천국을 소망하실 수 있도록 모시는 효성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