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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필요합니다! (2023년 8월 13일 주일낮설교)

기적이 필요합니다!

8. 13, 2023

:누가복음18: 3 5 - 43

說敎:崔仁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는 장애는 삶을 참으로 힘들게 하는 고통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디매오 는 바로 그런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르짖음은 곧 제지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던 무리들이 그와 같은 소경 거지를 거세게 제지하고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경은 거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예수님께서 가시던 걸음을 멈춰 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경을 내게로 데려오라!”고 말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온 소경에게 예수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소경이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석에서 선포하셨습니다.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소경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기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소경은 더 이상 소경이 아니었습니다. 두 눈을 밝히 뜨고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기적을 주신 하나님께 이렇게 보답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쩜 우리들은 두 눈을 뜬 소경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사지가 멀쩡한 장애자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행여 우리들이 그런 사람은 아닌지,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남의 장애만 보고 무시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소경처럼 기적을 맛보는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복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덧입는 진정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18:35-38)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오늘 본문에는 한 소경 거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였습니다.

(10:46-47)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쨌든 바디매오는 소경이었고 그러므로 일정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없었기에 결국 그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며 살아야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비참한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靈眼(영안)이고 둘째는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心眼(심안)이며 셋째는 세상 만물을 보는 肉眼(육안)입니다. 이 세 가지 눈 가운데 단 하나만 정상적으로 보지 못해도 우리는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눈으로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소경과 같이 하나님의 기적 같은 도움이 필요한 소경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은 3년 동안이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다녔으면서도 그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14:8-11)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빌립에게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와서 하나님은 이미 왕을 버렸습니다.”고 선언하었을 때에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도 확고한 신념으로 그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였을 때 비로소 깨닫고 회개하는 것 같은 흉내를 내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자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리는 추태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삼상15:23-27)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사울은 사무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심안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소경 바디매오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 소경이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 눈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그 누구도 완전한 눈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과 세상만물을 완전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와 같이 하나님의 고치심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침은 오직 하나님의 기적으로만 가능한 것이기에 오늘 우리 모두는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적을 방해하는 요인들

(18:38-39)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려고 하여도 그 복된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안타까운 요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목도하게 됩니다. 눈이 어두워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없기에 소경은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10:46-48)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불쌍한 소경 거지가 예수님을 찾아 부르짖는다면 함께 소리치며 도와주어야 하겠는데 현실은 이처럼 정 반대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기적을 보려는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오만과 불평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용사였으나 문둥병자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기적을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문밖으로 나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사자만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화를 내며 돌아섰습니다.

(왕하5:10-12)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 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나아만은 이와 같이 자신의 문둥병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엘리사만 원망하고 노를 발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오만과 교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적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불신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기적을 가로 막게 됩니다. 아들이 흉악한 귀신에게 붙잡혀 고생하게 되자 아버지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9:21-22)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와 같은 아버지를 가차 없이 책망하셨습니다. 기적 보기를 원하는 그에게 확신과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결단하고 외쳤습니다.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기적을 베풀어 그 아이를 귀신에게서 해방시키시고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9:25-26)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기적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들입니다.

(18: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불쌍한 소경 거지에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를 하고 기적 보기를 원하는데 그 길을 가로 막는 방해물에 불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주변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해를 주는 사람들입니까? 오히려 여러분들의 기적을 방해하며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아닌지요?

우리 주변에는 불행하게도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멀쩡하게 학교나 직장에 갔다가 총기난동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술이나 마약에 취하여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로 인해 졸지에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소경 거지와 같이 도움을 받아야 할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오히려 고통을 당하고 기적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결단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늘 날 동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지언정 고통을 주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따뜻한 예수님의 사랑과 기적

(18:40-43)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우리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보면서 실로 많은 것에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고 파워풀하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어보셔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소란스러우냐? 너희들은 왜 나를 찾는 그 불쌍한 소경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길을 가로 막고 무시하느냐?”는 등의 질문을 하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경이 주님 앞에 나타났을 때 실로 물어 볼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너는 어쩌다가 이렇게 소경이 되었느냐? 네가 소경이 된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너는 어떻게 내가 다윗의 자손인 줄 알았느냐?”등의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소경 바디매오의 대답 또한 이에 걸맞게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소원하던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많은 반대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예수님 앞에 섰는데, 얼마나 드릴 말씀이 많겠습니까? 하지만 소경 마디매오는 단 한 마디로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기적이 선포되었습니다.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이렇게도 단순합니다. 사랑도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또한 이렇게도 단순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단순성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구질구질하고 추하고 덕지덕지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선한 일에 힘쓰고 복을 받고 이 세상 떠나면 천국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면 늘 실망하고 절망하고 고통스럽지만 주님을 보고 천국을 보면 언제나 기쁨이 가득하고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뛰어 넘고 초월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단순하고 또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죽어도 천국 가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 어떤 조건이나 요구사항이 없이 불쌍한 소경을 고쳐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경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그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 예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체험적인 신앙생활의 단면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떤 면에서는 바디매오와 같이 불쌍한 소경인지도 모릅니다. 육신을 바라보는 육안만 밝아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살지만 영안이 막혀 주님을 보지 못하던지 심안이 어두워져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도 읽을 수 없는 장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능력과 권세가 넘치는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그 어떤 방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목 놓아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하고 말입니다. 바로 그 때 모든 방해물을 해치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만이 주시는 따뜻한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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