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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나가는 목적 (2023년 9월 3일 주일낮설교)

교회에 나가는 목적

9. 3, 2023

:사도행전2: 3 7 - 47

說敎:崔仁根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교회관에 무지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교통법규를 모르는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교회관에 관한 신앙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와 같은 지식을 기초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교회관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들의 교회에 관한 지식은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아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가는 것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받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드리고 또한 받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성도들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 네 가지 대답은 다 정답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해답은 3번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의 일부분입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그들은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도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은 사사로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오직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였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들고 나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함께 나누며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중심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과연 어떠하여야 하겠는지, 우리교회 설립39주년을 한 주 앞두고 바른 교회관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바른 교회관이 없는 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 존재할 수 없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4:19-24)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들이 교회에 나오는 가장 소중한 목적은 누가 뭐래도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그동안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감사를 안고 하나님을 찾아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자세는 사사로운 육신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령과 진정이라는 말씀은 성령과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와 삶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중한 재물을 하나도 자기의 것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아낌없이 다 내어 놓고 서로 섬기며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함께 손을 잡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사람의 가치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인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성령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놀라운 대열에 참여하려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산을 갖다 바치고도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육신의 가치로 성령님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행위에 인간적인 가치가 들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에 이와 같은 인간적인 것이 가미 되지 않도록 조건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소중한 예배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들의 주보를 관심 있게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드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몸을 드려야 합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몸을 드리는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영적인 예배로 받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 몸이 성전으로 올라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예배의 기본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성전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5:19-21)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예배에서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을 드리되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부르는 우리들이 은혜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처럼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조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의 모든 목적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육신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성도들은 늘 그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으나 성령의 역사가 끊어지면 원망과 불평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때마다 드리는 기도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로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처럼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하고 더 나은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기도에는 이 세 가지가 기본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고후9:5-7)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위의 말씀에서도 지적하였던 것처럼 미리 정성껏 준비하여야 하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할 수 있으면 많이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하시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시기 때문이요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힘을 다해 드리는 성도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시간에 우리들이 드려야 하는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다 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되 온갖 정성을 다하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받기 위해서입니다

(2:38-42)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지금 사도 베드로 앞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잔인한 유대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말씀을 받고 마음에 가책을 받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기적 같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전하여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앞서 인용해 드린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섯 가지를 받으라는 베드로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고, 가르침을 받은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는 성도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사랑이 많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6:1-7)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 기록된 안식일은 신약에 와서는 주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면 비록 소망 없는 이방인일지라도 넘치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보장하신 신령한 축복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변화된 삶을 살기위해서입니다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배는 그러므로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믿는 성도들이 드리는 신앙생활의 가장 소중한 본질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의 본질을 지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은총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우리들의 육신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영적으로 변화를 받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웃은 하나님을 품은 소중한 지체인 줄 알고 예수님처럼 섬기며 살아왔을까요?

우리는 날마다 발효식품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치도 그렇고 된장도 그렇고 식초도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잊어버리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발효를 하고 변화를 일으켜 오늘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도 변해야 합니다. 생각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고 믿음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날마다 성전으로 부르시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추에 소금을 뿌리듯 우리들에게 말씀을 뿌려서 변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변화를 만들어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을까요? 말세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로지 세상의 소유에만 정신이 팔려 주님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데도 듣지를 못한 채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 본문의 성도들은 우리들과 전혀 다른,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악한 자들이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일 만큼 잔인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변했습니다. 탄식을 하였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모든 재산도 다 내어 놓고 구원 받은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사랑의 떡을 떼며 교제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받고 변화 받은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성령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천국을 받았다면 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렇게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에 화답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배를 회복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길이요,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영원히 살 천국을 소망하며 육신의 가치를 던져버리고 영적인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피 흘려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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