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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대로 거두리라! (2023년 10월 8일 주일낮설교)

심은 대로 거두리라!

10. 8, 2023

:갈라디아서6:1-10

說敎:崔仁根

 

오늘날 우리들이 매일 먹는 밥의 원료인 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시골 출신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을에 추수를 하게 되면 가장 질이 좋은 볍씨를 미리 구별하여 서늘한 곳에 6개월 동안 보관을 하였다가 이듬해 5월에 그 씨앗을 꺼내 작은 못자리를 만들고 그곳에 씨를 뿌려 싹이 올라오게 합니다. 그것이 20-30cm 정도 자라게 되면 그것을 뽑아서 벼가 자랄 수 있도록 준비 된 논에 5-6개씩 모아서 심습니다. 그리고 물이 항상 충분하도록 대어주고 비료를 주며 키워냅니다. 물론 영양분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수시로 물속에서 자라나는 풀을 제거하고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독한 농약도 뿌려줍니다. 그렇게 6개월여 동안 정성을 다해 키우면 가을에 누렇게 열매가 익게 됩니다. 그것을 베어서 탈곡을 하고 정미소에 가서 도정을 하면 비로소 우리들의 밥을 만드는 쌀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먹는 밥의 원료인 쌀은 이렇게도 온갖 정성을 다한 농부들의 6개월에 걸친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농부들이 이렇게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것은 경제적인 용어로는 투자입니다. 한 알을 심고 투자하여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이상의 열매를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과 다른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원리의 말씀을 남겨두셨습니다. 아주 평범하면서도 심고 거두는 원리의 말씀입니다. 딱히 농부들만 씨앗을 심고 추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인생 자체가 이렇게 심고 거두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다음의 두 말씀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는 이 말씀들은 전혀 해석이 필요하지 않는 매우 쉬운 말씀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나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이치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무엇에 투자를 하여야 하겠는지, 먼 인생여정과 천국에서의 상급을 위해 제대로 배워야 하겠습니다. 결실의 계절 10월 두 번째 주일인 오늘은 이와 같은 심고 거두는 말씀으로 우리들의 삶의 지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말씀을 받아서 사는 날 동안 삶의 유익을 만들어가는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돈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

(딤전6:10-12)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3:1-5)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임금으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포졸들이 말을 타고 달려와서, “임금님께로 속히 오라는 어명이요. 속히 준비하여 입궐하도록 하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이 사람은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임금님이 부를 때는 필시 무엇인가 잘못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던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 얽히고 싶지 않네, 자네 혼자 가보게나.”하고 말입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대충 친하게 지내던 다른 친구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친구는, “기꺼이 함께 가주겠네. 하지만 대궐 문 앞에까지만 함께 가도록 하세. 사실 나도 임금님 앞에까지는 갈 수가 없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평소에 대면 대면하게 지냈던 세 번째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친구는, “아무렴 같이 가주고말고, 내가 임금님 앞에서 평소에 자네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으로 자네를 대변해 주겠네그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같이 가세.”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 사람이 임금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는 죽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친구는 세상의 돈입니다. 돈은 우리들이 죽는 순간부터 우리 곁을 떠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문제를 남기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친구는 이 세상의 친구입니다. 세상의 친구는 우리들이 죽고 난 다음 장례식과 하관식 까지 참석해줍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친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을 때에도 함께 하시지만 죽고 나서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함께 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을 위해 모든 사랑으로 우리들을 대변해 주시고 하늘 아버지의 상을 받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과연 이 세 친구들 중에서 어디에다 투자를 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돈에 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추우나 더우나 일터로 나가는 것은 바로 이 돈 때문입니다. 불행한 것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돈 버는 것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돈에 대한 애착이 더 커서 그 돈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게 되고 돈도 써 본 사람이 잘 쓰기 마련입니다. 날마다 벌기만 하였지 제대로 써 본적이 없는 까닭에 어쩌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죽는 날까지 제대로 써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돈 때문에 자녀들이 싸우고 다투며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돈을 사랑하게 되면 그 돈이 일만 악의 근본이 된다고 하셨고 급기야는 그 돈이 큰 불행을 만들게 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답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고 말입니다. 한국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버십시오. 그리고 그 돈을 멋지게 쓰십시오. 돈은 오직 쓸 때만 그 가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

(왕하4:8-13)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돈으로 돈을 더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가 하면 이 돈으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류대학으로 손꼽히는 스텐포드 대학도 돈 많은 사람이 좋은 미래의 일꾼들을 키워내기 위해 세운 학교입니다. 스텐포드라는 사람은 재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대학에 다닐 때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날마다 술에 빠져 낙심하며 인생을 저버리고 있을 때 하루는 꿈에 죽은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저만 아들로 바라보지 마시고 저와 같은 또 다른 아들을 새롭게 만드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의 말을 되새기던 스텐포드는 깨달았습니다. 멋진 대학을 세워 새로운 아들들을 많이 배출해 내면 아들의 몫을 감당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명문 스텐포드 대학입니다. 그는 이렇게 재산을 사람들에게 투자하여 역사에 남는 학교와 인재들을 길러냈던 것입니다.

옛날 수넴 땅에 한 지혜로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영안이 얼마나 밝았던지 엘리사가 지나가자 단번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엘리사를 강권하여 집에 모시고 정성을 다해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새롭게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침상과 책상 등 엘리사에게 필요한 모든 가구를 갖추고 그곳에서 유숙하며 지나도록 편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렇게 대접을 받은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빚을 갚고 싶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니 아들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늙었고 자식을 가질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권세로 그 집에 아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라다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 죽은 아들 또한 다시 살려주었습니다. 결코 수넴 여인은 이와 같은 축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에게 투자하였던 그의 정성은 이렇게도 놀라운 기적으로 보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수넴 여인에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10:40-41)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디에다 어떻게 투자를 하여야 하겠습니까? 성령님께서 들을 귀를 주신 자는 듣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

(10:38-40)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왕상3:3-5)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신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아무도 쉽게 하지 않았던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여 섬긴 마드다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천 번제를 드린 사람은 솔로몬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 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땅바닥에 돈이 떨어져 바람에 흔들리는데도 그것을 줍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돈을 밟고 지나가는데도 오직 그것을 줍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집으로 영접하여 정성을 다해 섬겼던 마르다는 나중에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던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받았던 이들은 오늘 우리들과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결 같이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소중한 일들을 오직 주님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무엇인가 심는 것은 미래를 위해 소중한 투자가 됩니다. 돈을 위해서 투자도 할 수 있고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사람에게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도 이 세상을 떠나서도 꼭 필요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르다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열정과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같은 열정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도 축복이 되고 이 세상을 떠나서도 상급이 되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가장 소중한 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오직 주님만을 위해 일생을 투자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한 고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하고도 복된 그런 삶이 될 수 있도록 사는 날 동안 제대로 된 투자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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