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랑입니까? (2023년 12월 10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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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0 December 2023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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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다스리라!
12. 10, 2023
本文:히브리서12:1-3
說敎:崔仁根 牧師
사람의 몸은 7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을 적당하게 마셔서 체내의 수분유지를 잘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의 정신은 대부분의 생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에 빠지게 되고 대인기피증에 빠지게도 됩니다.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면 인생을 값지게 살아갈 수 없을뿐더러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난을 받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베뢰아 사람들을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고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는 덕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신사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생각이 얕고 경망스러운 사람을 우리는 신사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깊이 생각하고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고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신사적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느 덧 성탄의 달 1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적인 풍습을 따라 들뜨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축제가 아니라 구유에까지 낮아지시고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는 그런 계절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예수님을 닮아 낮아지고 희생하고 거저 주는 아름다운 신상생활로 변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서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삶을 좌우합니다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들의 생각이 정신세계를 이룰 만큼 다양합니다. 오죽하였으면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까지 하였겠습니까? 그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들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그 생각을 두 가지로 묶었습니다. 그 하나는 육신적인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생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데 이와 같은 생각은 단순하게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각의 결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사망을 만들어 내고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만들어 내개 되니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이 우리들의 인생을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단순하게 머릿속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다. 생각이 말을 만들어 내게 되고 말이 행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에 대해 어려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생각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되는지 복음서에서 자주 언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비유가 생각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잘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마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그릇된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 생각을 따라 그릇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소중한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생각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 생각조차도 신사적이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참인가 하여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오직 내 속에만 머무는 나의 생각을 지혜롭게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경솔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삿11:30-31)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 이야기는 사사 입다가 암몬 자손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승리하기를 소망하여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고 말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입다가 이렇게 쉽게 서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끼는 애완견이 있었는데 항상 그가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그 강아지가 가장 먼저 달려 나와 자신을 맞이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서원할 때 그는 이처럼 간단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생각을 경솔히 하였던 것입니다. 집에서 나와서 자신을 영접해 줄 사람은 어쨌든 그가 사랑하는 아내나 자녀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암몬 자손들과 전쟁을 치르고 돌아올 때도 그는 당연히 애완견이 달려 나와 맞이해 줄 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뿔사 이번에는 뜻밖에도 그의 사랑하는 무남동녀 딸이 달려 나와 영접하였습니다.
삿11:34-36)
입다가 미스 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왜 이렇게도 깜짝 놀라며 자신의 옷을 찢으며 슬프게 탄식하였을까요? 그가 서원할 때 그 딸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에라도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바쳐드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너무나도 경솔하고 가볍게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단순히 입다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도 이처럼 경솔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였다가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로 유다였습니다.
(마27:1-5)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가룟 유다는 자기가 예수님을 팔고 돈을 챙겨도 예수님은 엄청난 능력이 많으시니 어떤 방식으로든 유대인의 손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을 그들의 악랄한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사탄 마귀의 장난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로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탄 마귀가 이처럼 간악하게 우리들의 생각까지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로 유다의 생각대로 되지 아니하고 일반 사람들처럼 그들의 손에 붙잡혀가서는 그대로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바라 본 가룟 유다는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경솔하고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와 같은 자신의 처신이 얼마나 그릇되었는가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경솔하게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처신이 얼마나 삶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서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우리들의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는 이제 잡다한 우리들의 생각들을 접어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유일무이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을 거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신 그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성탄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계절입니다. 과연 이 세상 그 누가 우리들의 부끄러운 허물과 죄를 덮어나 주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없는 죄도 덮어 쉬우며 우리들을 괴롭혔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단 한 번의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의 죄를 덮어주시고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천박한 죄인들의 손에 스스로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어떻게 그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못을 박히고 죽임을 당하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와 같은 멸시와 천대와 희생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이 구원을 받고 죽을 몸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을 이와 같이 새롭게 만들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골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시시콜콜한 땅엣 것을 생각하고 슬프거나 기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천박한 이 세상의 그것으로 일희일비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위엣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친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땅엣 것을 사모하고 땅엣 것에 치심 하는 우리들의 그릇된 생각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성탄하시고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