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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 (2024년 2월 11일 주일낮설교)

네가 어디 있느냐?

2. 11, 2024

:창세기3:6-14

說敎:

 

[지난 26(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케냐 사이비 종교 지도자인 폴 은텡게 맥켄지와 다른 피고인 29명은 이날 살인·과실치사·테러·아동학대 등 혐의로 말린디 고등법원에 기소됐다.

맥켄지는 사이비 종교를 운영하며 191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신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8명은 금식 중 구출됐으나 병원 이송 과정에서 숨졌다.

2003'기쁜소식국제교회'를 설립한 맥켄지는 신도들에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굶어 죽으라고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목을 조르거나 구타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국이 몇 달간 케냐 동부 샤카홀라 숲에서 발견한 시신만 최소 42구로, 대부분 사인은 아사였지만 일부 시신에서는 목 졸림 흔적과 함께 외상이 발견됐다.

그는 지난해 4월 범행이 발각되며 체포된 후 여러 차례 법정에서 심문받았으나 살인 혐의에 대해 정식으로 기소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수사 당국이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숲을 수색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실종자 수색 및 피해자 DNA 분석이 길어지면서 검찰은 지난 11월 구속 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현재 맥켄지와 피고인 29명은 무죄를 주장 중이다. 앞서 말린디 고등법원은 맥켄지와 피고인들에게 정신 건강 평가를 받으라고 명령했으나 이 중 1명만이 재판받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받았다.](202427일 한국경제에서 발췌)

이와 같이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과대망상과 같은 어리석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를 메시야로 만들고 소중한 이웃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기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느니, 계시를 받았다느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느니 하며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신령한 구원자처럼 스스로를 과장하는 무리들은 한결 같이 정신병에 걸렸거나 과대망상에 빠진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서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 놓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는 아담의 고백입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던 그가,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사랑하는 하와와 함께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살았던 그가 왜 이렇게도 초라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오늘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며 진정한 종말을 대비하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복된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아담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까요?

(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12번 나타나고 두려워 말라는 말은 54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친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고 말입니다. 악인은 이와 같이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도망갑니다. 그러니 그 마음과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겠습니까? 이처럼 악인의 삶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가볍고 정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결국에는 망하고 맙니다. 이것이 사람의 경험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은 의인의 반대말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가리움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악인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담과 같이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처럼 두려움에 떨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이렇게 두려워하는 자는 그 마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성도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성도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51:7-8)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성군 다윗이었습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인 사울이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와도 그는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죽으면 천국이다!”는 당찬 믿음으로 그 어떤 환경과 여건 하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으로 이 어지러운 종말의 때를 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배신하고 떠나버린 아담을 하나님은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신앙생활이란 세상의 상식과 가치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는 상대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정도 사랑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삭막한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로 지내며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절친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둘은 삶의 고달픔도 내려놓고 신선한 미래도 계획할 겸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깊은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데 갑자기 엄청 큰 곰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는 눈 깜빡 할 사이에 도망가서 나무꼭대기에까지 올라가 숨었습니다. 하지만 동작이 느렸던 이 친구는 발이 얼어붙어 꼼짝도 못한 채 곰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순간 평소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숨도 멈춘 채 죽은 척 하였습니다. 그러자 곰이 이리저리 냄새를 맡고 목과 얼굴에 킁킁거리며 코를 들이대더니 죽은 줄로 알았던지 그대로 지나쳐 갔습니다. 나무에서 이 광경을 보고 내려온 친구가 미안한 듯, “괜찮아? 동작이 그렇게 느리면 어떡해, 큰 일 날 뻔했잖아. 그런데 아까 곰이 귀에 대고 뭐하고 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조용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친구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그런 사람과는 치구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은 우리들과 다르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아담에게 무상으로 주셨습니다. 또 그곳에서 외로울세라 하와를 만드시고 그에게 이끌어다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은 낙원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하고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 사기꾼보다 더 악랄한 사탄 마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을 찾아가시고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는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어디 어디에 있습니다.”고 하지 않고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거역하고 배신하는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악당들에게 잡혀 비참한 심문을 당하고 있는데도 그 예수님의 면전에서 그 주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고귀한 사명도 던져버리고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선포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니 다른 제자들도 여섯 명이나 그 베드로를 따라 갈릴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예수님은 부활하시자 말자 곧 바로 그들이 있는 갈릴리로 달려가셔서 허기진 그들에게 손수 조반을 지어먹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우리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못 한 그것을 꼬치꼬치 따지고 묻지 않으십니다. “왜 그랬느냐?”고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시는 척 그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그렇게 온 몸으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그 하나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고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자존심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미워하고 원수 맺으며 스스로 잘난 척 하게 되면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고 두려움만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사랑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아담을 심판하셨으나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오늘 본문 창세기 3장은 오늘 우리들에게 거듭거듭 놀라운 진리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에게 엄청난 심판을 하셨습니다. 해산의 고통과 사는 날 동안 고통을 당하며 노동을 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것과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형벌이 그랬습니다. 그런 다음에 나타나는 말씀이 바로 21절의 말씀입니다.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리고 있는 그들에게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것입니다. 심판까지 하신 그 어리석은 자들에게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주셨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보다 훨씬 더 귀한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육신은 심판하시고 죽음에 이르게 하셨지만 결국 영혼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가죽옷을 제공한 것은 양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부끄러움을 감추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양의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그 양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죄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피를 흘리시며 생명을 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피를 받은 오늘 우리는 죽을 육신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히 살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단도직입적인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 말씀은 육신의 행동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은 행동하기 이전의 것입니다. 비록 행동하지 않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욱 강력하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주십니다.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는 말씀을 귀하게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처럼 강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이와 같은 말씀조차도 뭉개버리고 제 생각과 제 판단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망할 수밖에 없고 두려움에 떨 수박에 없고 겨와 같이 바람에 날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4-6)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귀를 씻어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대신에 기쁨이 가득하고 초라하게 숨는 대신 당당하게 나서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멋진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한결 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손수 지으신 가죽옷으로 우리들에게 입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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