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에 받을 상! (2024년 8월 18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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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8 August 2024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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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에 받을 상!
8. 18, 2024
本文:마태복음25:14-23
說敎:崔仁根 牧師
지난 주일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된 올림픽에는 15,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세계적인 축제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에서 저마다 기량을 갈고 닦은 피 끓는 젊은이들이 메달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뜨거운 경기였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10위 독일 금메달 12개, 9위 이탈리아 금메달 12개, 8위 대한민국 금메달 13개, 7위 영국 금메달 14개, 6위 네덜란드 15개, 5위 프랑스 금메달 16개, 4위 호주 금메달 18개, 3위 일본 금메달 20개, 2위 중국 금메달 40개, 1위 미국 금메달 40개입니다. 이렇듯 경기는 다 끝났고 상도 저마다 차지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꼭 같습니다. 갓 태어났을 때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작고 꼬물거리던 아이가 자라고 늙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늘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인생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끝에는 상과 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받은 본문 마태복음 25장은 종말장이라 불리우는 마지막 때의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비유가 나타나는데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세 비유의 마지막에는 한결 같이 상과 벌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삶을 심판하시고 상 받을 자와 벌 받을 자를 구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마지막 순간에 비참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 같은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말씀으로 도전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귀한 말씀을 통해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열 처녀 비유는 예수님을 신랑에 비유하고 성도들은 신랑을 맞아 혼인을 치를 신부를 비유한 말씀입니다.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이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영원한 혼인잔치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계19:7-10)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어리석고 미련한 영혼들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과 어린 양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기적과 같은 축복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마지막 순간에 그 엄청난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죄 많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세마포를 입게 하시는데 그 세마포는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행한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내일모래 시집 갈 처녀가 몸과 마음을 단장하고 신랑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술이나 마시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면 결코 신실한 신랑의 아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럴 진데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신부된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더 신실하고 정결하여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와 같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축복은 이 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상급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축복과 내세의 생명을 받게 됩니다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때에 신실한 성도들이 받을 상급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의 축복과 내세의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상속 받을 양들을 따로 모으시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단 한 번도 나타나 책망하시거나 칭찬하시는 일이 없지만 우리들의 삶의 매 순간을 일일이 기록하시고 마지막 심판의 때에 참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듯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충격적인 경고를 남겨두셨습니다.
(눅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오늘 우리 예수님의 이와 말씀을 가슴으로 받고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재물만 모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도 분명하게 경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있는데 그 재물 때문에 가족이 흩어지고 다툼과 비극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재물의 축복은 그 재물로 인해 근심이 찾아오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해 주셨습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입니다. 이 두 말씀을 합쳐서 생각해 보면 양과 같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냉정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들의 모든 삶을 다 꿰뚫어보시는 전능자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장 종말장에 나타난 세 번째의 상은 하나님의 칭찬과 즐거움이었습니다. 위에 인용해 드린 말씀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은 말씀으로 이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두 종들에게 주어진 축복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사를 최선을 다해 활용하고 풍성한 열매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앞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일맥상통하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은사를 잘 활용하여 이렇듯 열매를 많이 맺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도 될 수 있고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씀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 반대말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땅을 파고 그 귀한 은사를 꽁꽁 묻어두었던 종에게 실로 무서운 심판을 하셨습니다.
(마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무서운 심판의 기준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하고 게으른 것”과 “무익한”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혹하리 만큼 냉정하게 열매 맺지 못한 종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고 무익한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유익한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는가, 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보는가에 더 치심하고 하나님께 얼마나 유익할까, 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더 유익할까를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앞에서 오늘 우리는 과연 “전 아닙니다.”하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까요? 이는 그만큼 믿음에서 떠나 있고 예수님께서 삶의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 있다면 이처럼 자기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그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믿음의 선각자들은 이처럼 눈앞에 있는 자신의 유익보다는 이처럼 훗날에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가치관이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종들에게 아낌 없이 칭찬하시고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을 대를 이어 유산할 수 있도록 종말신앙으로 무장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