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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를 대비하라! (2024년 8월 04일 주일낮설교)

마지막 때를 대비하라!

8. 4, 2024

:마태복음25:1-13

說敎:崔仁牧師

 

지난 주 초 이란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마스의 2인자인 하니예가 축하사절로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눈 깜빡할 사이에 제거해버렸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축구장에 로켓공격을 하여 그곳에서 놀고 있던 청소년 13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른 헤즈볼라의 사령관을 암살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동지역에서는 엄청난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의 생명은 파리 목숨보다도 더 비참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 할 사람도 무기도 거의 동이 나고 있다고 합니다. 매일 수천 명의 소중한 생명이 죽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말자 부정선거 논란으로 엄청난 데모가 일어나고 있고 군부와 경찰들까지도 대통령을 거역하고 있어 용병들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실례만 들어드려도 지금 지구촌에는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말세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금과 같은 말세를 대비하라고 오늘 본문 말씀을 남겨두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들은 한결 같이 마지막 때를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오늘은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고 깊은 깨달음과 결단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후회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많은 재물과 업적을 남겨 두었는가 보다는 후회하지 않고 기쁨으로 떠나는 것이 더 귀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아야 합니다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왕상2:1-2)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비단 성경의 이와 같은 진리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종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종말의 순간을 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자신에게는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은 도적과 같이 찾아온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도적같이 마지막 종말의 순간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깨어 있는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살전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나 다윗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종말신앙이 없으면 육신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여기에서 신랑이 오는 것은 영적인 성도들과 육신적인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다시 오십니다.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오십니다. 처음에 오셨을 때는 불쌍한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다시 재림으로 오실 때에는 그동안의 삶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1: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고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과 지옥에 들어가야 할 죄인들을 가려내는 심판을 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25:10-12)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은 한 번 닫힌 문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받은 성도들만 들어가게 되는 천국의 문입니다. 이렇게 문이 닫힌 후에는 아무리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애원하여도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잔인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 후에 짧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한 말씀을 경고로 주셨습니다.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종말의 날과 시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도 그 날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도 그 날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생의 종말의 때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의 손에 달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이와 같은 날을 대비하고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리미리 학기말 시험을 준비하지 않은 학생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고 인생 말년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말년을 풍족하게 보낼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불시에 찾아오는 그 날과 그 시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경고하시기를,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아는 사람이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고 그런 다음에는 엄청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야 깨어 있고 준비하고 그 때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진리를 알지 못하면 먹고 마시며 육신적인 삶으로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의 홍수였고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예외 없이 이처럼 육신적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경고하신 종말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깊이 깨어 있었던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은 종말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주어진 소중한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와 같은 마지막 순간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가졌던 자랑할 만한 모든 육신적인 보배들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버렸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도 담대하게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는 삶이 깨어서 마지막을 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최고의 대비는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25:3-10)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이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너무나도 비범한 진리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등은 무엇이고 기름은 과연 무엇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등은 말씀이고 기름은 성령님이십니다.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주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제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심지어 다 외우고 있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구원의 반열에 설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교인들은 이와 같은 단순한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모든 것들은, 특별히 구원 받고 천국 가는 문제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주 짧지만 강력한 말씀 하나를 경고로 주셨습니다.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말입니다. 이는 육적인 삶과 대비시킨 가장 강력한 경고요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대비하는 성도들의 최고의 지름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소중한 성령 충만을 받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임재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불행하게도 교회에는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성도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교회에는 다니지만 능력이 없고 예수님도 없고 신령함도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오직 하나 성령의 권능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 문화는 배터리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배터리를 빼놓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컴퓨터, 전화기, 자동차 등 모든 곳에 배터리가 들어갑니다. 이것이 모자라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올스탑이 되고 맙니다. 영적으로도 꼭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에게 성령님이 고갈 되면 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기름을 구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문은 굳게 닫혔고 계속 두드리는 그들에게 들려오는 하나의 소리는 냉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성령이 고갈 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경고와 같이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합니다. 너무 세상 일에 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세상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세상 사람들과 밀착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지옥 불에 들어가는 사람을 건져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삶의 마지막 순간과 살아있을 동안에 붙들어주시고 건져주실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될 수 있으나 이 단순한 진리도 모른다면 우리는 미련한 자로 남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워래도 지금은 말세입니다. 뭐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습니다. 주변과 주변 국가들을 돌아보시면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거의 모든 인간들이 미쳐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로 마지막 때를 대비하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들을 귀가 있어 소중한 말씀으로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멋들어진 영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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