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주일낮설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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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Wednesday, 11 December 20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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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12. 8, 2013
本文:사도행전9:26-31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11월 추수감사절 때에 사업을 하는 장로님, 집사님들을 심방하면서 하나의 공통된 현실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샤핑몰로 모이는 이런 계절엔 오히려 장사가 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은 제한되어 있는데 샤핑도 하고 외식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제 또 다시 샤핑의 계절인 성탄절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두 말 필요도 없이 돈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생들은 죽는 날까지 이 돈에서 자유하지 못한 채 그 돈을 쫓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생들을 소개하지 않으시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인생을 소개해 주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잠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우리는 돈을 찾아 인생을 다 허비하며 살아가는데 바나바라는 사람은 오히려 그 돈을 모아 사도들에게 갖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돈만 많이 가지면 그 인생을 성공적인 복된 인물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 돈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온통 돈을 찾고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이런 시절에 오늘 우리들은 그와 반대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이 왜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귀하고 아름다웠던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후회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깊어가는 성탄의 계절 12월의 두 번째 주일인 오늘 우리 모두 진정 이 시대에 우리들이 무엇을 필요로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마음 귀를 열고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구유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살인마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개종하여 첫 번째로 예루살렘의 사람들 속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조금 전에만 해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살인마로 유명세를 떨치고 다녔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행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본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김정은이가 회개하고 미국에 전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왔다가 우리 시애틀로 온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개종하고 사람들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타났을 때 그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행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라는 오늘 본문 말씀은 지극히 상식적인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교제를 하기 원했지만 그의 과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바나바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행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바나바는 자청하여 살인마 사울의 소개자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을 바울로 만들어 역사적인 인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이 땅에 사도 바울을 1인자로 세워 놓고 그는 스스로 2인자로 만족하는 멋들어진 삶의 흔적을 성경에 남겨 두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이런 멋들어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함께 배우고 도전 받기를 원합니다.
결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추수감자절 이후 Black Friday와 성탄절을 맞으면서 너도나도 샤핑에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샤핑을 해야 하니 결국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 계절은 돈이 신이 되는 그런 안타까운 때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돈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 더 축복이요 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값진 선물은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사랑과 우정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비싼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그 침대에서 쉴 수 있는 잠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먼저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모하고 따라가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다 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예수님도 팔아먹었던 가룟 유다입니다. 그가 예수님도 팔고 돈을 손에 넣었지만 그 돈을 결코 써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돈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참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27:3-5)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가룟 유다는 원래부터 돈을 엄청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에도 그는 공금을 횡령하고 도적질을 하는 못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요12:4-6)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처럼 그는 돈을 좋아하고 돈을 향한 그릇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 돈으로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고 그렇게도 비참하게 스스로 목을 매고 죽어야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가 금덩어리와 외투를 받아 숨겨 두었으나 써보지도 못하고 문둥이가 되었던 것이나 아간이 여리고성에서 금덩어리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두었으나 써보지도 못한 채 아골 골짜기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했던 사건들은 한결 같이 돈을 사모하다가 망한 안타까운 케이스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같은 돈 때문에 소중한 인생을 망치지 말고 괜찮은 사람이 돈보다 더 값지고 귀한 축복임을 깨달아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복권당첨으로 300억 원 가까운 큰돈을 얻은 남성이 12년 뒤 전 재산을 탕진해 동전 한 푼 없이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분에 넘치는 행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 데이비드 리 에드워즈가 지난달 30일 미국 켄터키 주의 한 호스피스 시설에서 사망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향년 58세.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2001년 대박로또로 불리는 파워볼 복권에 당첨됐다. 상금은 무려 2700만 달러(약 286억 원). 당시 46세였던 에드워즈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한 당첨금을 마구 써댔다. 강도질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그가 팔자를 고친 뒤 가장 먼저 고급 차 벤틀리를 샀다. 또 켄터키에 160만 달러짜리 집을 사고 190만 달러짜리 자가용 제트기도 구매했다. 또 다른 명차도 마구 사들였다. 그는 복권에 당첨된 해에만 상금의 절반 가까운 1200만 달러를 탕진했다. 마약에도 손을 댔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마약과 함께 파티를 즐겼다. 아무런 계획 없이 돈 쓰는 재미에만 빠져 살던 그는 결국 5년 뒤 상금 대부분을 써버렸다. 2006년 주택이 압류될 만큼 빈털터리가 되자 아내도 그를 떠났다. 그의 재무 설계를 도와 준 제임스 깁스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돈 1800만 달러를 맡아 투자하긴 했지만 나중에 전부 빚 갚는데 썼다"며 "내 조언만 들었어도 매달 8만 5000달러를 쓰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2013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에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더 귀한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님으로 가슴을 채운 신앙의 아름다운 바나바를 사도 바울이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들이 아는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을는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바나바는 초대교회 때 임하였던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고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사도들에게 갖다 바치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헌신하는 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바나바가 사울이 바울이 되어 가는 길목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해 주었던 것입니다.
(행9:26-29)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나바가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데 얼마나 놀라운 역할을 감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사울을 살인자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그 사울을 데리고 다니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중개인처럼 소개하고 사람들을 안돈시켜 사도 바울의 친구가 되게 하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데 바나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나바라는 사람을 조금 더 공부해 보기를 원합니다.
바나바는 권위자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성경은 바나바를 권위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여기에 기록된 권위자라는 말은 권위를 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권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격려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다 내 놓으면서까지 이웃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는 멋들어진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러한 삶이 그의 신앙과 접목되니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배척하는 사울이라도 보증인이 되어 사람들 앞에 일일이 보증을 서며 세워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우리들의 소중한 것을 희생해가면서라도 남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격려자가 되어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칭찬하고 격려하는 데는 열정을 쏟아도 비난하거나 욕하는 일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특별한 좌경세력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여 대통령직을 사퇴하라고 들고 일어나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교황청에서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사명을 가진 사제들이 시국과 정치에 참여하여 백성들이 투표하여 세워 놓은 대통령을 향하여 사퇴하라고 데모를 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고사하고 바나바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세우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에 앞장설지언정 형제를 비난하거나 죽이는 일에 가담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바나바는 보증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바나바는 사울을 배척하고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백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의 보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행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서슴지 않고 사도 바울을 변호하고 보증하여 바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백성들을 설득하여 사도 바울과 교제를 나누게 하고 더 나아가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정지작업을 해 나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제는 그 옛날 사울과 함께 했던 자들이 배신자라고 달려들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바나바는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여 사울을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내 주었습니다.
(행9:29-30)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참으로 바나바를 비롯한 믿음의 식구들이 얼마나 사도 바울에게 따뜻하고도 안전하게 도와주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악한 자들이 일어나 사도 바울을 죽이려 할 때 바나바 일행은 사도 바울을 친히 데리고 가이사랴로 갔다가 거기에서 다소로 보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소가 어디입니까? 사도 바울의 고향입니다.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고향으로 안전하게 보내드리고 거기에서 휴식하며 보호를 받도록 조치하는 바나바의 모습은 한 사람의 보증인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나바는 이렇듯 사도 바울의 보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므로 바울이 안전하고도 폭넓게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Vincent van Gogh(고흐)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화가 말입니다. 그는 원래 네덜란드 사람으로 영국에서 그림을 파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가슴으로 만나고 그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기로 작정하고 세상일을 접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말씀을 전했던 교회는 그의 설교를 트집 잡아 점점 배척하게 되었고 고흐는 결국 전도자의 일을 포기하고 그림 그리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세계적인 화가로 성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흐의 전기 작가가 남긴 한 마디가 역사 속에 메아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의 열정과 창의적인 솜씨로 보아서 그가 만약 초기에 좋은 교회를 만나 설교가로 계속 헌신하였더라면 아마 그는 세계적인 설교가가 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위대한 화가는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는 잃었다."
바나바는 2인자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오늘 눈여겨보아야 할 바나나의 멋진 모습은 1인자가 아니라 2인자로 만족할 줄 아는 진짜 멋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그렇게 궁지에 몰려 있던 사도 바울을 세워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고 그는 그 배후의 2인자로 만족하며 묵묵히 바울의 조력자로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초기에는 사도 바울보다 바나바가 훨씬 더 두각을 들어내며 헌신 하였습니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바나바로 인하여 교회가 인산인해를 이루며 크게 성장하고 부흥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한 시대의 위대한 목회자로 전도자로 두각을 들어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바나바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바나바는 이처럼 자신이 두각을 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오히려 사도 바울을 모시고 와서 함께 목회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갔습니다. 자신보다 사도 바울이 더 잘 성도들을 양육하고 인도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더욱 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힘차게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크리스챤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로 소꼬리보다는 닭머리가 더 좋다며 너도나도 최고만 되려는 우리들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가슴 뭉클한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가슴에 모신 진정한 신자라면 1등이 아니라 2등에 머물 줄도 아는 아름다운 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실 사도행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바나바가 바울보다 앞서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과 12장에는 언제나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바나바가 앞에 이름을 올립니다. 하지만 13장 43절부터는 바울과 바나바로 그 순서가 바뀌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자연스럽게 2인자로 밀려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이것을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사도 바울의 그늘에서 만족하며 오직 하나님만 바울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멋들어져 본받고 싶은 귀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인격과 신격을 지녔기에 그를 통하여서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잠시 머물고 갈 이 세상에서 너무 육신적인 욕망으로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을 가슴에 모신 신자답게 가슴을 넓히고 꿈을 키워서 보다 더 큰 자로 우뚝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말에 이와 같은 자세로 돈보다 괜찮은 사람 하나를 더 사모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가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각 기관에서 새로운 한 해의 일꾼을 선택하는 정기총회와 성탄절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들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바나바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잠시 살다 가는 짧은 세월을 삽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겠는지? 한해가 저무는 뜻 깊은 이 계절에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결국은 다 두고 갈 이 세상에 살면서 어리석은 그것을 위해 아까운 세월을 낭비하지 않도록 진정한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때 바나바와 같은 사람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더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더 복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소중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2인자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참으로 본받고 싶은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도 이와 같은 바나바가 되어 바울 하나쯤은 이 세상이 만들어 놓고 갈 수 있는 멋쟁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 위에 충만 충만하게 머무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2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