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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3년 12월 15일 주일낮설교 (무엇을 더 기다릴까요?)

2013년 12월 15일 주일낮설교 (무엇을 더 기다릴까요?)

무엇을 더 기다릴까요?

12. 15, 2013

本文:사도행전1:1-5

說敎:崔 仁 根 牧 師

무엇인가 아쉽고 여운이 남는 것 같은 그런 안타까운 때에 우리들이 서 있습니다. 며칠만 더 있으면 또 한 해가 기울고 새해를 맞는 그런 시간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뚜렷하게 무엇인가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어떤 풍성함이 없기에 우리들의 마음은 더 더욱 허전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더 기다리며 한 해를 매듭짓고 새해를 맞아야 할는지? 새해가 밝아 와도 우리들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지 못하는 한 결코 새로울 수가 없기에 이즘에 한 번 우리들 스스로 확인하고 정돈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덧없이 세월만 보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각의 끈을 잡아야 하겠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전쟁의 공포로 인해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영국 황실과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영국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전쟁이 발발하던 그날 온 교회에서 같은 시각에 일제히 종을 울리도록 하였습니다. 그 종은 전쟁 중에 희망을 심기 위한 희망의 종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때 템플 주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대영 제국 국민 여러분, 잠시 후 이 땅의 모든 교회에서는 종이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모두 교회로 나아가십시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그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상황을 제자들이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에 예수님은 끌려가 처형을 당하고 모든 제자들과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데리고 고통과 시련이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말입니다. 절망과 고통의 때에도 믿고 기다릴 것이 있음을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고통과 좌절로 낙심할 수밖에 없는 힘겨운 때에 우리들이 기다려야 할 것은 세상의 권세나 재물이나 명예나 지식이 아니라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은 참으로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새겨두어야 할 진리입니다. 자칫 쓸쓸하고 허망하고 답답하기까지 하는 이런 세밑에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소중한 진리의 말씀에 귀를 모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우리들의 삶에 해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더 기다릴까요?

무엇인가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다린다는 것은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우리주님께서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기다리라!"고 분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에 기대를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앞 뒤 좌우를 살펴보아도 주님의 이 말씀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생활과 삶 속에 아무런 유익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말씀인데도 되짚어 묵상해 보면 이것보다 더 큰 대안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성령님을 기다려보는 신실된 영적인 성도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 말씀을 붙잡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을 기다리면 과연 우리들의 내일에 무슨 희망이 있고 변화가 올 수 있을지? 열린 가슴으로 말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기다림의 방법-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몇 년 전 LA에 있는 나성열린문교회에 집회를 가기 위해 시택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 정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는데 그곳에 도착하면 12시 반 정도 되니까 거기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탑승하는 바로 그 입구에서 보딩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탑승하는 입구가 두 개가 있었는데 부지런히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100% 착각을 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힐 때까지 이 종은 그냥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있는 그 문이 열려야 내가 타는 비행기로 들어가는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도 한 쪽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운터에 가서 거기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아직 LA가는 비행기는 보딩을 하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이 커지더니 이미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비행기는 6시간 후에나 있다고 했습니다. 순간의 착각으로 고스란히 그 자리에서 6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때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더 실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막연하게 기다리라는 말씀만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기다리고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셨던 성령님을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행1:12-14)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면서 기다릴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야 기다림에 지치지 아니하고 기다림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다려 축복의 잔을 높이 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며 기다리지 못하다가 인생을 망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 대표적인 장본인입니다.

(삼상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사무엘은 이렇게 사울 왕에게 기다리라는 명령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고 난 다음에 할 일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울은 그렇게 진득하게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삼상13:8-12)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다린다는 것은 비록 칠일 이라는 짧고 제한된 것이라도 무척 어렵고 힘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무작정 기다리지 아니하고 기도에 전혀 힘쓰며 무장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어쩌면 기다리는 것으로 연결되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이 없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수십 년을 기다려야 열매가 맺히고 사업을 하는 것도 몇 년 몇 십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소득이 있는 법이며 무너지고 망가진 숱한 인간관계 또한 묵묵히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회복이라는 은총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영육 간에 기다리지 않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 많은 인생 여정의 숱하게도 많은 기다림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복된 열매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도로서 인내하고 기도로서 소망을 품어야 기다림의 복된 열매를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있어 기도는 축복을 여는 귀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다림의 대상-성령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기다려야 할 대상을 지목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은 여기에서 그냥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언하여 두 가지를 덧붙여 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게 들은 바"라는 말씀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강조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다 더 분명하게 부각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말씀들은 다음과 같은 곳에 이미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오순절의 기적 같은 성령님의 역사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의미를 제공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우리 하나님의 약속의 신빙성입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고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으니 너희의 기다림은 결단코 헛되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눅2:25-32)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렇듯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성도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끝내는 그 예수님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시므온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꿈에라도 소원은 "성령 충만 받는 것"으로 정하고 시므온과 같이 밤낮으로 성령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오순절에 성령 강림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심령 밭에도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떨어질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기다림이 신령하고도 소망 넘치는 성령님이 될 수 있도록 기다림의 대상부터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성도들의 모는 것이 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성령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왜 사도들에게 이처럼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참으로 많고 많은 해답이 있습니다. 짧은 설교 시간에 결코 다 말씀 드릴 수 없는 고로 몇 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비록 예수님을 눈으로 만나고 3년씩이나 동행하면서 숱한 기적과 이적도 체험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무능한 자들로 남고 말았습니다.

(요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사도들의 무능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친히 맡기신 신령한 사명을 다 던져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인 육신적인 원점으로 되돌아 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육신적인 일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한 채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셔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새로운 능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인생들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님뿐이십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성령님으로 근본이 달라지는 변화를 덧입게 됩니다

이 종은 우리 빌립보장로교회에서만도 30년을 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보아왔겠습니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그 근본조차 안 바뀌는 교인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근본부터 바꾸어 주셔야만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와 같은 생생한 증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행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외친 말씀입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잔인한 유대인들 앞에서 너무나도 담대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우리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너희들은 살인자들이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워서 예수님께서 친히 보시는 면전에서 3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도망갔던 사람이 이렇게도 변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역사입니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지난주일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사도들 앞에 바쳐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미움으로 돌아서는 사울의 보증인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게 하던 그 모든 능력이 바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소중한 성령님을 기다리고 충만하게 받아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진정한 구원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온갖 욕심으로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추구하고 그것으로 축복을 삼지만 진짜로 중요한 축복은 그런 것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영육간에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분명하게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입니다. 그 누가 되었던 지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자는 무조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성령님을 받아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도 안 보이는 성령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들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어 회개토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영원히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천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와 같은 성령님을 기다리고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2013년도 겨우 보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이렇게도 잔인하게 흘러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무능하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무엇을 가졌다 한들 북한의 장성택을 바라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40여년을 북한의 요직과 2인자라는 칭호를 들으며 권력을 풍미했지만 김정은, 그것도 자신의 28살밖에 안 되는 처조카의 손에 처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영원할까요? 오직 영적으로 능력을 덧입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길밖에는 다른 기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육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능력은 오직 성령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다릴 것 많지만 이번 세밑에는 오직 성령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며 그 분의 능력을 덧입고 신선한 희망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음 바쳐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이처럼 소중하신 성령님께서 친히 찾아오시고 신선하고 풍성한 은총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2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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