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주일낮설교 (나를 얻는 자와 나를 잃는 자)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Wednesday, 29 January 2014 20:17
- Hits: 1731
나를 얻는 자와 나를 잃는 자
1. 26, 2014
本文:잠언8:32-36
說敎:崔 仁 根 牧 師
어느 은행장이 평생을 은행에서 헌신하고 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은퇴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젊고 패기 넘치는 새로운 은행장이 취임을 하였습니다. 그 행사가 끝나자 새로운 은행장이 노은행장을 찾아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선배 은행장이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야 올바른 결정이 제일 중요하지."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임 은행장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러자 노은행장이 다시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야 많은 경험이 해결해 주는 일이지." 그러자 신임 은행장이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경험을 어떻게 쌓을 수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노은행장은 "그야 그릇된 결정을 해 보면 알게 되지." 하고 말입니다.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비로소 좋은 지혜를 얻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정확한 해답을 제공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잠8:32-33)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한 평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경험하고 또 하나님을 만난 한 사람 솔로몬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록하여 남겨 놓은 오늘 우리들이 반드시 듣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축복이고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제쳐놓고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지혜와 축복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인생 마지막 유언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고 말입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요 하늘의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오늘 우리들에게 남기고 싶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이 말씀을 가슴으로 받고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형통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성도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 달을 마지막 보내면서 "지혜를 얻는 자와 지혜를 잃는 자"라는 35, 36절 말씀을 중심으로 신선한 진리의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제라도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과 은총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얻는 자와 나를 잃는 자
오늘 본문 말씀처럼 지혜를 정확하게 표기하고 그것을 얻는 자와 잃는 자의 결과를 분명하게 밝혀 둔 성경 구절도 흔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묵상한다면 진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야 하겠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긋나거나 잘못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하시면 반드시 복이 되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그 길은 반드시 심판과 멸망의 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야 하겠는지? 이제는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진정한 지혜가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고 또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장된 축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에 화답하자!"는 표어를 내 걸고 시작한 새해도 벌써 한 달이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은 삼일 동안 전교인이 함께 모여 신년수련회도 마쳤습니다. 과연 이제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 받은 은혜대로 화답하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때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바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를 얻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 바와 같이 결국에는 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지혜를 얻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삶을 지키시고 하늘의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잠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축복은 바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과연 이 지혜를 얻은 자는 어떻게 살았고 반대로 지혜를 잃은 자는 어떻게 살았는지? 이제 본격적으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함께 배우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
하나님은 분명히 선언해 주셨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축복 중의 축복인 이 생명과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은총을 덧입기 원한다면 반드시 이것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통로인 지혜를 먼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입은 사람입니다. 태초부터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무자하던 그에게 언약의 자손 이삭을 주시되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가능하신 기적으로 주셨고 말로 다할 수 없는 풍성한 재물의 축복 또한 아낌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는 온통 이와 같은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기사는 창세기 22장에서 태양처럼 찬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어느 날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창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죽은 몸과 같은 태를 여시고 나이 백 살에 기적과 같이 내리신 그 아들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로 각을 뜨고 태워서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도, 더 더군다나 믿음의 세계에서도 맞지 않는 상식 이하의 명령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잡아 신에게 바쳐드리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친히 금하셨던 이방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끔찍한 죄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두 말 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데리고 친히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창22:3-5)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우리들과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요 아버지요 하나님을 섬기는 구별된 성도였는데 어떻게 이처럼 끔찍한 하나님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마디도 되물어보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함이 없이 오직 순종 일변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토록 놀라운 순종을 할 수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당시 성경이 이에 대해 그 어떤 말씀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훗날 다행히도 믿음장을 기록했던 히브리서 기자가 이때 아브라함의 상황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소상히 기록해 두었으므로 오늘 우리들이 그 해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귀한 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지혜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이에 대한 해답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고 말입니다. 지혜는 이렇듯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었고 섬기며 두려워하였기에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처럼 지혜를 얻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생명을 받았고 또한 더 큰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22:12-13)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갔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두신 수양을 잡아 대신 드리고 이삭의 생명을 도로 받았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엄청난 축복을 덤으로 받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창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의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는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잠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조금도 잊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아낌없이 바쳐드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혜를 잃는 자
하나님은 약속에 진실하신 분이시라 지혜를 얻는 자는 반드시 생명과 은총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앞에서 친히 확인할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생명 이삭이었고 아브라함부터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누릴 수 있었던 엄청난 부귀영화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경고 하십니다. 이처럼 소중한 지혜를 잃는 자는 거기에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지혜를 잃는 자는 결국 자기 영혼을 스스로 해치는 자라고 하셨고 결국에는 사망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실로 무섭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 종이 40년이 넘도록 부산, 서울,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친히 목도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망각해버리고 스스로 교만하여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실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지혜를 잃는 자"라고 정의해 두셨습니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오로지 자기 자신의 판단과 뜻대로만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헌신하거나 희생하는 하는 삶을 절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삶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만하며 교만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들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정의해 두셨습니다.
(잠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고 말입니다. 지혜를 배척하는 자를 하나님은 지혜를 잃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승하는 것 같으나 망하고 유익을 얻는 것 같으나 다 잃으며 인생이 짧고 허망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악인은 미련한 자임으로 그 결과가 이처럼 서로 반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섬기지도 않으니 그런 사람을 일컬어 미련한 자요 악한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어려서부터 데리고 다니며 친 자식처럼 섬겼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고 재산이 많이 늘어나 자꾸만 충돌이 일어남으로 조카 롯을 불러 분가를 하라고 명합니다. 평생에 빈손으로 삼촌을 따라 나왔다가 거부가 되어 분가를 하게 되었으면 받은 은혜에 보답할 량으로라도 늙으신 삼촌에게 먼저 우선권을 드려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두 말 않고 먼저 기름지고 물이 풍부한 소돔 땅을 선택하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창13:8-11)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실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조카가 처신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은 실로 허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넋을 잃고 서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새로운 축복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참으로 롯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었고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참 지혜를 잃어버린 사람은 바로 이렇게 처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소인배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심판을 주시는 것입니다.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대로 롯은 눈에 좋은 소돔땅을 차지하고 떠났으나 그곳은 결국 하나님께서 친히 유황불로 망하게 하신고로 롯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많던 재산도 잃어버렸고 사랑하는 아내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나마도 삼촌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고 부탁하여 준 덕분에 롯은 딸들과 같이 간신히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19:24-29)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우리는 성경의 이와 같은 생생한 역사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도 전혀 다를 바 없이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지혜만큼은 얻어야 하고 그와 같은 지혜를 잃게 되면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오직 우리들의 삶의 주인은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순간도 잊지 말고 그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살아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새해 첫 달도 다 저물고 이제 마지막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어느 때 우리 앞에 마지막 날을 갖다 놓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얻는 자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보장 받아야 하고 은총을 받아 두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이렇게도 복된 지혜를 잃고 세상의 헛된 것들을 얻었노라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롯을 보면 어리석은 우리들이 보아도 미련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단 한 마디 아브라함과 의논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유익만 선택하고 떠나가는 것만 보아도 그의 경박함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사는 날 동안 아브라함과 롯을 거울삼아 지혜를 얻는 자와 지혜를 잃는 자의 결말이 어떠한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어리석어 보이지만 지혜로 판단하고 지혜를 따라 살기만 하면 생명과 은총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실 것이므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새롭고 신선한 믿음으로 받은 은혜에 화답하며 살아가리라 작정하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은총이 사는 날 동안 충만하시기를 복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년 1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