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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9일 주일낮설교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람)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람

2. 9, 2014

本文:욥기1:13-22

說敎:崔 仁 根 牧 師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유일하게 자연계 만점을 받은 전봉열(21·목포홍일고 졸업)씨가 서울대 의과대학 정시에 불합격했다.올해 수능 만점자 32명 가운데 유일한 자연계 만점자인 전 씨는 구술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서울대는 지난해부터 정시시스템에 다면 인적성 면접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수험생이 다른 과제가 주어지는 6개의 방을 차례로 돌면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서울대는 이를 통해 수능과는 차별화된 인성과 적성 능력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특히 서울대 의대 입시는 지원자들 사이에 수능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 총점의 30%에 이르는 면접 전형 점수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지난 수능에서 전 과목을 모두 맞춰 표준섬수 542점으로 자연계 전체 수석을 차지한 전 씨의 경우, 평가의 40%를 차지하는 구술면접과 학생부 등 나머지 영역에서 뒤쳐져 불합격한 것으로 보인다.전씨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쉽네요. 면접 괜찮게 보고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떨어지니, 붙을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던 게 부끄럽네요"라고 불합격 사실을 알렸다.그는 "저도 성격 괜찮다는 말 듣고 살았는데 떨어졌다는 것이 저보다 훨씬 더 인품 좋은 사람들이 의료계에 많이 왔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으니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고 그러네요"라고 말했다.이어 "지난 삼수 생활도 좋았고 지금까지의 합격도 분에 넘칠 정도로 만족스러우니 괜찮습니다."라고 덧붙였다.한편 전 씨는 복수 지원한 연세대 의과대학에 수능성적 우선선발전형에 합격했다.] 이상은 조선일보 2014년 2월 7일자에 게재된 기사를 인용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 씨의 아름다운 인성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교만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만족할 줄 아는 멋진 청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고 복을 받을 사람은 역시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음가짐이 어떠한 가에 달려 있는 매우 귀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욥이라는 사람 또한 우리들의 완악한 마음을 움직여 주는 놀라운 신앙의 덕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도 원망은커녕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렸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친히 감동하시고 잃었던 것보다 갑절로 더 축복을 주실 정도였으니 한 번 엿보고 배워 둘 충분한 사람이기에 오늘 함께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열고 잘 배워서 우리들도 사는 날 동안 사람은 물론이고 하나님께로 부터도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람

욥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살아갔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지난주일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사람"이라고 그를 정의하여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인정을 받기도 어려운데 하늘의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과연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그냥 떠내려가는 강물 위의 죽은 물고기처럼 막연하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의 강에 떠내려가지만 말고 새롭게 생명력을 되살려 거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주인공인 욥은 우리들의 그와 같은 삶을 위한 귀한 롤 모델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하늘의 하나님께서 믿고 보증하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것이 악한 사탄 마귀 앞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신 욥이라는 사람의 됨됨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가 과연 어떠한 사람이었기에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친히 인정하시고 사탄 앞에서도 당당하게 내 세워주시는 그런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선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영적인 됨됨이를 다음 말씀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욥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욥이 한 순간에 그의 모든 재산과 10남매를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 취한 자세를 요약한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가능한 모습일까요?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는 이 종이나, 듣고 계시는 여러분 자신을 이와 같은 욥이라는 거울에 비춰보신다면 과연 우리들도 욥과 같이 갑절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판단이 나올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멋들어진 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뭔가 남들과 다른 사람, 뭔가 세상 사람과 다른 우리들의 모습을 재창조 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축복을 받았던 욥의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우리들의 삶에서도 욥과 같은 위대한 역사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함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해 두신 말씀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신 바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순전"이라는 말은 "흠이 없다."는 뜻이요, "정직"이라는 말은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는 올 곧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사람됨의 덕목입니다. 왜 사람들이 치우치고 거짓말 하며 흠을 만들어 내는지, 아십니까? 육신에 젖어서 욕심대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얻은 귀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이처럼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칭찬하신 이유가 바로 나중에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욥이 요지부동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원망하며 불평하지 않는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한 가치관으로 속사람을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근본이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가르치고 훈련하여도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하기 위해 떠나야 할 때에 교회에서 섬기던 강장로님을 찾아갔습니다. 떠나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그 장로님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한 번은 새벽기도를 갔는데 예배시간이 10분이나 지나도 담임목사님이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할 수 없이 새벽기도를 인도하셨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나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장로님은 매우 당황하고 놀란 상태에서 힘들게 그 시간을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로님이 교회 곁에 붙어 있는 사택으로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행여나 목사님께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나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강장로님 많이 놀라시고 당황하셨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늦잠을 잤습니다." 강장로님은 그 때보다 자신의 목사님이 크게 보이고 귀해 보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보통 목사님 같으면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아픈척하며 "몸이 좋지 않아 도저히 일어나지 못했다."는 등의 변명을 하기 마련인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늦잠을 잤다."고 고백하는데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강장로님은 한 마디로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전도사님, 이렇게 사람이 정직하면 그 순간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오히려 더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정직한 목회자로 잘 자라나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손해와 불유익을 당할 줄 알면서도 정직할 수 있다면 실제로 욥과 같이 귀한 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야단법석을 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정직한 욥에게 하나님은 그토록 놀라운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정직하게 살면 친히 하나님께서 삶의 구원자가 되어주시고 흑암과 같은 세상에서도 빛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심성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시112: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욥은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온갖 악독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무서운 홍수라는 심판으로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을 쓸어버리셨던 것도 이처럼 인간들에게 악독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고 종말이 가까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이 시대의 악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워싱턴 주에서도 낙태하는데도 보험이 적용되도록 법으로 보장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로 사람들의 악이 이 세상에 가득한지 짐작이 가고 있습니다. 오바마 플랜은 이처럼 의사들에게 낙태를 종용하고 보험사는 이를 위해서 돈을 지불하도록 하며 업주들은 그와 같이 살인을 저지르는 낙태 자들에게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하도록 강압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이 보다 더 큰 악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살인을 합법적으로 나라가 앞장서서 강요하고 있으니 이 보다 더 무서운 악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다보니 죄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조차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악을 지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다."고 말입니다.

(시37:7-9)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만큼 그가 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죄인 줄조차 모른 채 온갖 악을 다 저질렀던 사울은 비참하게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악을 미워하고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욥이라는 사람은 이처럼 악에서 떠난 자로 하나님 앞에서 큰 은총을 입었던 것입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이처럼 악에서 떠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인정하시고 책임져 주시며 삶에 필요한 축복을 보상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악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 막는 무서운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살전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 같은 악에 대해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자신의 속을 채우고 있는 악이 넘쳐나는데도 그 악을 버리기는커녕 스스로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가로 막고 불행하고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들을 향해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화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온 몸에 가시가 돋아 난 고슴도치가 거할 곳을 얻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헤매다가 조용한 굴속에서 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을 바라보고 간청하였습니다. "날은 춥고 거할 곳이 없어서 그러니 부디 같이 좀 살면 안 되겠소?" 뱀들은 한참 의논한 끝에 너무나도 고슴도치가 불쌍해 거처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같이 살아보니 전신에서 나온 가시로 인해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고슴도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거처를 알아 봐 달라고 하였습니다. "웬만하면 같이 살겠는데 그 몸에 난 가시 때문에 우리가 너무나도 불편해서 그러니 거처를 다른 곳으로 좀 옮겨 주시면 안 되겠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고슴도치가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싫으면 그대들이 거처를 옮겨가지 왜 나보고 나가라는 거요?" 하고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축복의 주인공인 욥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악에서 떠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미움을 거두어내고 시기와 질투의 안개를 떨쳐버리고 광명한 태양과 같이 밝고도 맑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마음부터 정결케 하는 신선한 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삶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우리 속에서 악만 제해지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만나주시고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욥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욥은 그 본성이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귀한 사람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들도 욥처럼 속사람을 아름답게 잘 훈련하고 정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도 살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살아야 하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욥과 같이 사람들 앞에서도 칭찬을 받고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도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오늘 우리들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의 열매를 맺히고 있어 더 더욱 우리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가장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말로조차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기 때문입니다.

(욥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실로 오늘 우리들이 따라 하기 힘든 일입니다. 일단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채면조차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A1 조류인플레인저로 인해 아까운 닭과 오리 등을 수백 만 마리씩 죽여 묻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육으로 사업을 하던 50대의 한 농부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택시 기사는 구청 앞 주차장에 함부로 택시가 주차하고 호객하면 안 된다고 단속을 하자 온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분신자살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로 그들은 소중한 한 목숨을 던져 자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평생을 통해 일구어 온 전 재산을 순간에 다 잃어버리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녀들이 그것도 10남매나 한 순간에 다 죽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처신할 것 같습니까? 이러한 인생 최악의 위기 가운데서도 욥은 방금 읽어드린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입으로 욕하며 범죄하지 아니하고 어리석게 누구를 원망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방금 읽은 말씀 가운데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1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이 단순한 논리를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믿는 올바른 고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 같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상29:12-14)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것이 바로 성군 다윗이 엄청난 예물(금 3천달란트<360만 온스와 은 7천달란트<840만 온스>)을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하여 외친 고백입니다.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한 귀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인 줄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생명이라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 하나님께 바쳐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따르는 복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믿음만이 정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교회 개척 초기 때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방연 27살에 육군 법무관이 되어 소령 계급장을 달고 국비유학생으로 워싱턴대학교 법대에 유학을 온 장 모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자 말자 운전연습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삼촌을 현장에서 죽게 하고 그 교통사고의 여파로 부인이 위망말기로 발전하여 6개월 만에 죽게 되고 숙모로부터 삼촌을 죽인 대가로 몇 만 불의 돈을 요구 받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아니하고 묵묵히 신앙으로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며 주어진 3년의 유학생활을 잘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도 모진 역경을 이기게 하였을까요?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신앙의 힘이 그를 그토록 강하게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승리자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로 이처럼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들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욥의 신앙은 성경의 대표적인 것으로 오늘 우리들이 두고도 본받아야 할 위대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조용히 묵상해 보면 그가 받은 축복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바 순전하고 정직한 내성이 있었으며 그 어떤 악에도 지지 않고 이기는 외성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그는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주권 신앙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사탄 마귀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를 보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받아 누렸던 갑절의 축복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욥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덕목을 갖추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우리들도 욥이 누렸던 그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건성으로 교회에만 다니는 교인이 되지 말고 속사람을 믿음으로 살찌우는 중심에 믿음을 가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욥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오늘 우리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받고 또한 도전을 받으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도 욥과 같은 믿음으로 욥과 같은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년 2월 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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