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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6일 주일낮설교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

2. 16, 2014

本文:빌립보서3:10-14

說敎:崔 仁 根 牧 師

서울 KBS방송국에서 아침에 내 보내는 인기프로 [아침마당]이 있습니다. 거기에 특별 강사가 나와 인생의 성공을 위한 Tip을 가르쳐 주는 한 강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고 또 목소리였는데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따라가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TV선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남자한테 너무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네... 떡이다, 딱이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습니다." 뭐 이런 식의 광고인데 천호식품 김영식회장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20만원의 돈으로 1년 10개월 만에 22억이라는 엄청난 빚을 다 청산하고 대한민국에서 정직한 식품회사로 대박을 터트린 장본인입니다. 그가 하는 강의의 내용은 매우 평범하였습니다. "성공이 안 되거든 성공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방법입니다. 바로 여기세 이 종도 하나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잘 배우고 본받으면 최소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이 종이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지금도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데 이원익, 유일곤, 그리고 나 이렇게 늘 1-3등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등치가 제일 큰 유일곤은 꼭 학기말 시험 때면 나를 불러내서 평소에 안 하던 밥도 사주고 같이 놀자고 합니다. 그 꾐에 끌려 저녁 내내 놀다가 온 이 어리석은 종은 꼭 학기말 시험을 망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똑 같이 놀았는데 어떻게 유일곤이는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살펴보았더니 나와 헤어져 돌아간 그 밤을 온전히 다 세우고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이 종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뒤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것은 본받으라는 김영식회장의 지론과 일치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한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한 번 따라 가보고 그의 장점을 본받아 보려고 합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그가 쓴 편지가 곧 성경이 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가 벌써 2천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모르는 신자는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용하고 그가 택하였던 방법이 있다면 오늘 우리들도 본받고 배워서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사람들 앞에서 존경 받는 그런 멋들어진 인생과 신앙생활을 오늘 우리들도 배워 가야 하겠습니다. 함께 마음 귀를 모으고 사도 바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

먼저 사도 바울이 가진 그 중심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당시 가지고 있었던 정확한 그의 사상이었습니다. 이 짧은 몇 마디에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요 마음의 소중한 결단이요 삶의 목표입니다. 그는 가감 없이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그리고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입니다. 세상 줄 놓고 주님을 따라가다가 감옥에까지 갇혔고 사도 중의 사도인 놀라운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품이 "겸손"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인생의 멋들어진 가치를 따라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겸손하고 낮아진 자세에서 그를 본받고 한번뿐인 우리들의 인생을 사도 바울과 같이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히 배워보도록 하십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처럼 좋은 방법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자리에 안주하며 변화를 만들어가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제한되어 있는데 고집과 아집에 갇혀 세월만 낭비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일어나 배우고 결단하는 변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속사람이 겸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배우고 닮아가려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남을 본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를 좋아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겸손한 자는 배우고 새롭게 변화를 만들어 내지만 교만한 자는 결코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망하게 하시는데 어떻게 그 하나님 앞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가슴에 품고 교만을 넘어 사도 바울과 같이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 가야 하겠습니다.

(잠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이상의 말씀들은 언제나 우리 성도들이 마음에 새겨 두고 경계로 삼고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어떤 길을 따라 우리들에게 임하시게 되는지 길라잡이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들의 눈으로 보아도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놓았고 위대하기 이를 데 없는데도 그는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3:12-13)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면 이처럼 위대한 사도가 되어 주님을 따르면서 감옥에까지 들어갔는데도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겸손은 순간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입술에 붙은 말로서 하는 것도 더 더욱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의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세는 이와 같은 겸손인 것입니다. 어거스틴에게 제자들이 몰려 와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인지 말씀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이니라"고 말입니다.

폴란드의 세계적 천문학자로 지동설을 주장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문에, "주 하나님, 저는 베드로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원치 않고, 바울에게 베푸셨던 자비를 원치도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상에 함께 못 박힌 오른쪽 강도에게 베푸셨던 긍휼을 원하나이다."라고 쓰도록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주님 중심적 겸손이며 신앙입니까? 죽는 순간에도 오직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는 자세, 바로 그것이 진정한 겸손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종은 우리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의 겸손을 이렇게 정의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구하고 이웃들의 유익을 더 생각해 주는 자세."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있어 세계의 매스컴이 칭찬과 박수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소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계 올림픽에서 실제로 있었던 아름다운 미담입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소치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 준결승에서 안톤 가파로프(러시아)의 스키가 부러지자 캐나다팀의 코치인 저스틴 워즈워스가 도와준 사건을 보도하며 "올림픽에서 단지 메달과 시상대, 기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12일(이하 한국시간) 소개해 주었습니다. 가파로프는 경기 중 크게 넘어져 눈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바로 일어났습니다. 장비를 추스른 그는 상위권에서는 이미 벗어났지만, 경기를 완주할 생각으로 망가진 스키를 신고 다시 눈 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승선 근처의 언덕에서 왼쪽 스키가 결국 반으로 쪼개졌고, 가파로프는 경기를 완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한 남자가 스키 한 짝을 들고 가파로프에게 달려와 부러진 스키를 자신이 가져온 것으로 갈아 끼워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바로 캐나다 대표팀 코치인 워즈워스였습니다. 그는 다른 코치들과 함께 서 있다가 가파로프가 곤란에 빠진 것을 보고 자신이 맡은 선수를 위해 남겨놨던 예비 스키를 가파로프에게 주기로 결심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워즈워스는 이후에 "가파로프가 마치 덫에 갇힌 것처럼 보여 그냥 둘 수가 없었다"며 "그가 결승선을 통과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상대가 저야 내가 이기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이기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바로 그런 곳에서 적에게 장비를 주어 함께 경기하도록 하는 처사는 가장 멋진 올림픽 정신이요 나의 유익보다 상대의 유익을 더 챙겨주는 진정한 겸손의 용기인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라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생의 성공과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요 삶의 복된 자세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바울 되게 한 진리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된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게도 이 말씀에 반대되는 삶을 살아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버린 소용없는 과거에 매여 살았는지 모릅니다. 손해 본 것 때문에, 미움을 받았던 것 때문에, 배신당한 것 때문에, 그릇 판단했던 것 때문에... 숱한 과거에 붙잡혀서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렇게 소중한 세월만 낭비해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부디 오늘 사도 바울을 본받아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낭자들이 LPGA(미국 여자 골프연맹)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진출해 있고 한국 선수들이 거의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어 세계적인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LPGA에서 우승하려면 하루 18홀 경기를 나흘 동안 계속해서 최고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총 72홀을 경기해야 하는 길고도 힘든 여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순간적인 판단 잘못이나 경기 실수로 소중한 점수를 잃어버릴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탄식하고 머물고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경기는 계속되고 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마음은 뒤에서 잘못한 실수에 사로잡혀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골프에서는 뒤에서 잘못한 것을 머리에 남겨 두는 것을 가장 금기시 합니다. 거기에 사로 잡혀 있다가 소중한 다음 홀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골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 또한 지난 과거에 매달려 쉼 없이 다가오는 앞날의 값진 삶을 망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는다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이 한 말씀만 가슴에 담고 따라 살아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과거는 잊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해무익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필라델피아지 편집인인 프레드 셰드씨는 옛 명언을 멋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재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무를 톱으로 켜 본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거의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톱밥을 켜 본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물었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톱밥을 켤 수 없지요." 셰드씨는 외쳤습니다.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이지요. 과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일과 같습니다." 야구계의 원로 인코니 매크에게 그가 진 게임 때문에 걱정을 한 일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예, 나도 전에는 종종 그랬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흘러간 개울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찧지 못하며 도리어 당신의 주름에 톱질 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양 격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road."(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도 있기 마련이고 목표가 있으면 달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두고 마음의 소원을 가진 자에게는 그 소원을 이루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종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는 말씀을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한 소원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소망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최소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깊은 뜻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 할 중요한 대목입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나님께서 주실 상",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지금 러시아의 소치(Sochi)에서는 세계 동계 올림픽이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빼어난 선수들이 금메달을 앞에 놓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너무나도 멋있습니다. 상을 향해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오늘 우리들과 다른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노력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겨루어 보겠다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멋진 것입니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할지라도 상을 향해 도전해 보는 그 정신은 인생을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을 갖춘 것이기에 당당하고 소망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한 가지 귀한 사실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서나 하늘나라에서 상을 만들어 내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을 포기한 삶은 결코 제대로 된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화요일까지 단 하나의 메달도 없이 세계 순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우리나라 이상화선수가 500미터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므로 단숨에 10위권으로 올라섰습니다. 개인의 영광도 말할 수 없지만 국제무대에서 이처럼 나라를 올려 세우는 것이 바로 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순간에 어쩌다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몸으로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을 오르고 무거운 역기를 어깨에 메고 강한 훈련을 하면서 허벅지 둘레를 36인치가 되도록 힘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딸의 다리를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고 울먹이는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금메달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로서의 미와 아름다움 대신 이상화씨는 금메달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을 목표로 하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도 감옥에 투옥되어 빌립보서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쫓아가는 삶이 그렇게도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표를 수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는 그렇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고백합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온 삶을 미련도 후회도 없이 최선을 다해 잘 살았었노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들어진 인생입니까? 이 종은 오늘날까지 40년이 넘도록 교회를 섬기며 숱한 인생들의 임종을 비켜 보았지만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생을 사도 바울과 같이 이처럼 멋들어지게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상을 생의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키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이폰의 주인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그 많은 돈을 남기고 56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자 많은 매스컴들이 그를 아름답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오로지 돈만 위해서 살다가 죽었다. 그 많은 돈으로 이웃을 위해 헌신하거나 도네이션을 한 흔적도 없다. 그는 성공한 부자였으나 실패한 인생을 살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바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바 목적 있는 상을 바라보고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 모두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하나님 앞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신 한 평생을 어떻게 살다 왔는지 마지막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표 있는 삶, 바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실패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공한 삶을 다 살아가는 것도 또한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연하게 적당하게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성공할 수 없다면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 그 삶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또 본받아야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삶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인 삶에도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성공자로, 또 승리자로 우뚝 서 있는 사도 바울을 찾아 그의 삶을 배우고 본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남다른 겸손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철학과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을 본받고 배워서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상 받으러 간다."고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이 날을 주님의 날로 기억하고 예배자로 헌신하는 진정 구별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이처럼 하늘 상을 목표로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년 2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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