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3일 주일낮설교 (은혜와 축복이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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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3 February 20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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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축복을 받으려면...
2. 23, 2014
本文:창세기19:12-17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한 주간은 참으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불행이 가득한 안타까운 주간이었습니다. 16일은 충복 진천중앙장로교회 교인 31명을 포함한 35명의 성지순례단에게 폭탄테러를 일으켜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친 사건이 있었고, 지난 18일엔 경주 마우나리조트에서 눈으로 인한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여기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 10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였음이 뒤늦게 밝혀져 더욱 더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데 대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단을 이끌었던 여행사가 정부로부터 이집트는 아직도 정쟁이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니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이를 무시한 채 여행을 강행했다가 이처럼 큰 테러를 당하였기 때문이고, 부산외국어대학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과 총장의 경주 신입생환영회를 자제하고 학교에서 환영회를 진행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끝까지 경주로 신입생환영회를 강행하다가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주의 마우나리조트는 경주시가 사고가 나기 4일 전에 이미 눈이 많이 내려 평행으로 구성된 체육관의 지붕이 위험하니 지붕의 눈을 치워달라는 부탁을 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눈을 치우지 않은 채 행사를 강행하다 이처럼 끔찍한 인명을 잃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을 주선한 인솔자들이나 건물 책임자들이 정부나, 학교, 시 당국의 요구사항을 귀담아 듣고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였더라면 그토록 소중한 인명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나 인생을 살아가는 윗사람 앞에서 이보다 더 큰 은총을 덧입을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축복을 보장해 주실 정도로 우리들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입니다. 인류의 흥망성쇠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나님은 우리들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다음의 두 말씀을 비교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28:15-16)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이렇듯 우리들에게 임할 축복과 저주가 바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하는가, 아니면 불순종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바로 우리들의 축복과 저주의 바로메터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면...
이렇게도 분명하게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을 받던지 아니면 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저주를 받던지 오직 우리들의 선택에 달렸음을 스스로 깨달으라고 말입니다.
(신11:26-28)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처럼 명백한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진정 하나님의 복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 6천 년을 통하여 한결 같이 우리들이 가슴으로 듣고 따를 고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약속에 진실하신 분이시므로 반드시 축복을 받아 누리도록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한 때 다윗은 생애 최고의 위험과 고통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명 걸고 섬겼던 사울 왕이 자신에 대한 질투와 시기로 죽여 없애버리기로 작심하고 용사 3천 명을 거닐고 자신을 추격해 오는 끔찍한 지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일개 조폭도 아니고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면 자신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여 없애든지, 아니면 그 왕이 스스로 죽을 때까지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았습니다. 남의 나라에까지 피해 들어가 숨었으나 다윗은 워낙에 전쟁에 뛰어난 장수였기 때문에 적군이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왕을 죽여 없애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어 군사 3천을 이끌고 자신을 추격하는데 그 왕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엔게디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 왕과 군사들이 같은 굴로 들어 와 모두가 지친 탓에 깊은 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일행들은 깊이 잠든 사울 왕 곁에까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왕을 죽일 수 있는 그 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내린 절호의 호기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하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못나고 어리석어도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자는 결코 해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삼상24:1-7)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귀히 여기시고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사울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 때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울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였다면 그는 사울과 같이 비참하게 하나님의 손에서 망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겠다고 친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고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가 순종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이고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 거기에 유하는 롯의 가족들을 이끌어 내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므로 공로 없는 롯의 가족을 건져주시는 기적 같은 기회였습니다. 위의 말씀 가운데 밑줄 친 부분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이 말씀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지침이자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라." 이 얼마나 단순한 한 문장입니까? 그러나 바로 여기에 살고 죽는 문제가 달려 있었습니다. 오직 순종만이 그 지름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롯의 처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무시하고 뒤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이렇듯 한 문장의 짧은 명령이지만 그것을 소홀히 여기고 불순종한 채 돌아본 순간 그 형벌도 이렇게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끝나는 저주를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과 불순종이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롯의 처를 거울로 삼고 불순종을 거둬내고 순종으로 하늘 복을 누리는 진정 지혜로운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들을 다음과 같은 명령으로 권면하고 계십니다.
(눅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고 망하게 된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왜 늘 우리는 불순종하며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은 여기에 대해 역설적으로 공부하면서 불순종하는 삶을 청산하고 축복의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불순종의 요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경계를 삼아 불순종을 탈피하여 저주와 심판을 피하는 참 복된 성도들이 되어 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불순종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롯의 처가 왜 비참하게 죽어 소금기둥이 되고 마는 형벌을 받았는지 극명하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불순종이 만들어 낸 저주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유황불로 멸망되는 순간에 생명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 주신 따끈따끈한 생명 구원의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극박한 상황에서 내려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뒤를 돌아보다가 롯의 처는 그렇게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롯의 처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롯의 사위들도 한결 같이 그와 같은 급박한 상황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생명줄을 던져 주는 롯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는 말씀과 같이 롯의 사위들은 그렇게도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 구원하는 놀라운 장인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고 따르지 않다가 결국은 쏟아지는 유황불에 모두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불순종에도 뭔가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도 많이 듣고 있으면서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지 못함은 그 나름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그 요인을 찾아 제거하고 순종으로 일관하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길을 제시해 드리려고 합니다.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새 생명을 얻는 암환자와 같이 우리들도 우리들의 저주의 근원인 불순종의 요인을 들어내고 축복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 귀를 기울이고 들어 순종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 상대를 무시하게 되면 그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앞서 이 종은 충북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레단의 테러사건과 부산외국어대학교의 끔찍한 사건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한결 같이 그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였다가 이처럼 무서운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도 소중한 때에 안전을 위해 던져 준 귀한 충고와 명령을 듣지 않았을까요? 가만히 그들의 상황을 뒤집어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잡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주는 자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외무부에서 "이집트는 정쟁이 계속되고 상황이 불안하니 그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삼가 주십시오."라고 지침을 하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지순례를 인도하고 준비하던 여행사는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왜일까요? "너희들만 아냐? 우리들도 아는데 아무 상관없어...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그쪽으로 성지순례단을 보내고 있으나 아무런 문제없어. 괜히 잘난 척 하고 그래..." 하면서 여행을 강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외무부의 충고를 무시한 것입니다. 경주시에서 사고가 나기 4일 전에 마우나리조트에게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최근에 경주지방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평행지붕인 리조트체육관이 위험하니 지붕위의 제설작업을 진행해 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리조트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웃기고 있네, 눈이 조금 내렸다고 지붕이 내려앉을 리가 있나? 걱정도 팔자구먼, 조금만 있으면 눈은 저절로 녹아 내릴 텐데, 그것을 일부러 치우려고 돈을 들여?" 하고 말입니다. 경주시의 행정 명령을 단숨에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부산외국어대학의 총학생회는 총장과 학교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경주까지 가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면 경비도 많이 들고 위험도 따르니 학교에서 하도록 하라." 고 말입니다. 그러나 총학생회에서는 그럴 수 없노라고 강행 방침을 세웠습니다. 할 수 없이 학교에서는 경주까지 가는데 필요한 버스전세비용 900만원만 대 주는 조건으로 총학생회에 맡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도 끔찍한 사고가 나서 학교도 총장도 총학생회도 큰 타격을 입는 상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난주일 우리교회에서도 청년대학부가 워나치로 겨울수련회를 떠났습니다. 최근에 이곳에는 큰비가 내리고 산에서는 큰 눈이 내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와서 위험한데 그 멀리까지 가도 되겠느냐?"고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괜찮다"며 강행하기에 어쩔 수 없이 기도하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종은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스티븐슨패스는 수백 미터 절벽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곳인데 눈이나 어름에 미끄러지는 날에는 엄청난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에 참으로 가슴 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 같지만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는 이처럼 엄청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명령 하셨습니다.
(창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고 말입니다. 하지만 롯의 처는 한 번 물어보지도 않은 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뒤돌아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순간 소금 기둥으로 돌변하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녀는 그렇게도 무모한 짓을 하였을까요? 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간순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시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경외 한다"는 말씀의 뜻은 "두려워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이처럼 두려워해야 그 말씀을 순종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게 되니까 그 말씀을 그렇게 순종하지 않고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욕심 때문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불순종에는 언제나 자아가 중심이 되고 자기 유익을 추구하게 되는 악한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利己(이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인간들의 자기 이기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잠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사회활동과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언제나 그룹에서 이탈하여 비협력으로 일관하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유익을 쫓지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함께 전도하러 가자고 하면, 함께 모여 봉사활동을 하자 하면, 함께 모여 구역예배를 드리자 하면, 함께 모여 교회 청소를 좀 하자 하면... 언제나 빠지는 사람들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는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이요 자기 소욕에 빠진 자들이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는 자들이라 온갖 지례를 다 배척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에 젖어가다 보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거역하게 되고 직장이나 교회를 막론하고 윗사람들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종이 앞서 실례를 들어 드린 여행사나 경주 마우나리조트 관계자들이나 부산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가 한결 같이 총체적으로 불순종하다가 엄청난 인명피해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도 남의 말이나 윗사람들의 말이나 공공기관의 앞선 예지를 무시하고 말았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 또한 동일한 대답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유익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행사는 계획을 강행해야 돈을 벌게 되고 리조트 사람들은 눈을 방치해 두어야 돈을 절약하게 되고 총학생회는 외부와 수주를 해야 리베이트를 챙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경찰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며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작은 유익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보게 됨은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을 낸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그렇게 엄청난 고통과 생명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렇게도 무서운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도 경각심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은 타락한 우리들의 본성이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끝도 없는 욕심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위실천의 사도 야고보는 선언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말입니다. 결국 인간의 아집과 욕심에 사로잡힌 불순종이 이렇게도 끔찍한 사고를 만들어 사망의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롯의 처도 그랬고 부산외대도 그랬고 교회 성지순례를 강행했던 여행사 또한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도 아깝고 소중한 생명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도 야보고는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약4:1-2)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욕심을 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진심으로 얻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다 쥐고 계시는 하나님께 겸손히 구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생이 그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욕심에 사로잡혀 이웃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그렇게 자기만을 챙기며 살겠습니까? 우리들에게 다 잘 되라고 하나님도 부모님도 스승들도 잔소리 하는 것이니 부디 듣고 순종하여 축복을 만들어 낼지언정 불순종하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오늘 말씀으로 경계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사는 것은 결국 절대자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진짜로 하나님께서 살아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시고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렇게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쫓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믿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던 인물들은 우리들과 달리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는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믿음과 순종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불순종의 시대가 되어버렸고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거부하며 성도들이 목사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죄악과 혼란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급선무로 회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믿음인 것은 믿음만이 순종하고 따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 깊이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월은 빨라 어느 덧 2월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의 강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사모하고 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은혜와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들의 축복과 저주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독소처럼 남아 있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죄악을 씻어내고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들의 욕심을 거두어 내어서 그 속사람을 믿음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크신 손을 다시 잡아 은혜와 축복을 회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그 주님을 늘 문밖에 세워두는 어리석은 우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제 깊은 깨달음으로 다시 주님을 가슴으로 만나고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으로 뿌리를 내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우리들이 사모하는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오늘도 마음을 다하여 예배 드리고 말씀을 사모하는 복된 우리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에게 넘치는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년 2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