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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일 주일낮예배 설교 (무엇에 눌려 있는가? )

무엇에 눌려 있는가?

     

3. 2, 2014

本文:이사야37:1-4

:

     

KBS에서 진행하는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가 있는데 어느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특강을 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한결같이 무엇엔가 눌려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무엇엔가 눌려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한 번 무엇엔가 눌리기 시작하면 쉽게 그 눌림에서 해방되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어머니가 어린 자녀에게 눌려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그렇게 늘 집안에 갇혀서 산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그 아이가 대학에만 가면 자유로울 것 같다고, 그 때는 여행도 하고 좀 더 인생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대학교에 가면 등록금 때문에 눌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 안 돼 눌리고 취직이 되면 결혼문제로 눌리고 결혼하면 손자 봐준다고 눌리고 손주 다 키워 놓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러면서 병든 육신의 이곳저곳의 아픈 것 때문에 눌리다가 결국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재난에 눌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것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 온 한 여인의 하소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눈에도 안 보이는 무엇엔가 깊이 눌려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진정 무엇이 우리들을 그토록 누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그 악랄한 일본에게 눌려 해방과 독립을 외치며 일어난 3.195주년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자그마치 36년 동안이나 우리 민족은 일본에게 눌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채 그렇게 고통과 눈물 속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을 앞지를 정도로 우리 대한민국이 그 짧은 시간 속에 다시 일어났고 멋들어진 나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지금은 비록 무엇엔가 눌려 아픔과 서러움 속에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처럼 해방의 기쁨을 누릴 때가 있음을 확신하고 그렇게 되는 배후에는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우리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안고 희망과 소망 속에서 신선한 3월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아픈 가슴을 활짝 열고 기쁨의 소식으로 심령을 새롭게 하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눌려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 왕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힘이 있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사를 일으켜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소중한 땅을 정벌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그 하나님이 너를 도와 우리들의 공격을 막아줄 것 같으냐? 고 하나님까지도 모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6:1-3)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세탁업자의 터의 대로 윗못 수도구 곁에 서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 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36:18-20)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꾀임을 받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그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적군이 코앞에 다가와서 왕을 모독하고 왕이 의지하는 하나님까지도 모독하고 있다면 사람인 이상 눌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쟁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인간사 최대의 위기이고 전쟁에서 지는 날이면 백성들의 목숨과 왕의 목숨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애에서 이 보다 더 큰 눌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36년 동안이나 일본놈들에게 눌려야 했던 것도 나라가 힘이 없고 그들을 이겨 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극한 상황에 눌린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으며 참담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7:1-2)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렇게 신하들과 함께 절망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최후의 길을 찾아 최선을 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오늘 우리들이 함께 찾아보고 또한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눌림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위기에서 그는 주의 종을 찾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뜻하지 않게 눌리게 되는 고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축복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고 영원히 실패하여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위기를 만나거나 고통의 때를 당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226일 저녁 서울에서 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나라가 온통 이 일로 시끌시끌하고 있습니다. 60세 된 어머니와 35세 된 딸, 32세 된 딸, 이렇게 세 가족이 생활이 어려워 동반 자살을 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35세 된 딸은 심하게 당뇨를 앓고 있어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옆에서 병간하느라 32세 된 딸은 직장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였고, 엄마가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겨우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눈에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팔이 부러짐으로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자 생활이 급격히 더 어려워져 끝내 죽음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10여 년 전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남의 집 단칸방에 세 들어 지금껏 생활해 오면서 어려움이 계속 되었는데 방세도 밀리고 생활비도 떨어지자 이렇게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의 이야기는 똑 같은 조건이지만 참으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Hoffman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성도들 중의 한 자매님이 엄청난 재난에 눌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그녀를 만나 상담을 하고 한 가지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매님, 자신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조용히 주님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선선히 목사님께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그렇게 주님께 다 고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고 말입니다. 그런 후에 오래지 않아 그 자매님은 목사님을 찾아 와 말씀 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주님께 다 말씀드리고 기도하였더니 훨씬 더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목사님께서 좋은 길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말입니다. 호프만 목사님은 그 자매님을 통하여서 한 가지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섰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 363장의 가사입니다.

 

네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에 눌린 자들이 찾아야 할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 히스기야 왕도 산헤립의 공격을 받고 四面楚歌(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기도를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37:2-4)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눌려 있습니까? 무엇이 오늘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조용히 예수님께로 나아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그렇게라도 주님을 찾아오도록 우리 앞에 무거운 고통의 짐을 놓아 두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따뜻한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이처럼 인자하게 부르시는 주님께로 나아가 조용히 엎드려 기도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는 약속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히스기야 왕과 같이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이처럼 기도를 부탁하고 또한 기도하는 믿음의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생은 죽고 사는 인생사 중 가장 급박한 문제입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것도 상대가 너무나도 막강한 군대일 때는 더 더욱 두렵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지배구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처한 상황은 위기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위기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 입니까? 그 누구보다도 히스기야 왕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처럼 태평스럽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믿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갔던 적의나라 바벨론에서도 인정을 받고 총리대신이 되는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그냥 두지 못한 적국 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엄청난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 굴이 준비 된 채 하나님 중심의 다니엘을 모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서 히스기야 왕에게 전한 말씀처럼 그는 그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다니엘은 그들의 악행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잔인한 폭도들 보다는 하늘의 하나님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 앞에 놓인 무거운 고통을 바라보지 말고 그 고통을 능히 다스리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위기와 고통과 무거운 짐에 눌렸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묵상해 보신다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하시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43:1-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어제는 우리 조국이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던 3.1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대로 191941일 천안의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때 유관순 열사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가 일제의 총탄에 순국하였습니다. 거의 많은 사람들이 유관순 열사는 잘 알지만 그의 부모님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 11월 한국의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3.1 운동 피살자 명단에는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총칼을 든 일본놈들이 무섭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일제에 눌린 조국을 되찾아야 되겠다는 애국일념은 이처럼 한 목숨을 내 놓고 대항하게 하였고 결국은 그들의 잔인한 총칼에 희생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오늘 우리들을 누르고 있습니까? 그것이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는 오늘 담대하게 맞서서 싸우며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등 뒤에는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놀라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도와주시고 굳세게 하시고 붙들어 주시겠노라고 친히 약속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입으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시고 또 무슨 일이든지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시는데 도무지 문제가 없으신 능력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을 그대로 믿고 기대하고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나사로가 죽은 비참한 현장에 이르렀을 때 통곡과 절망 속에 빠져 흐느끼는 마르다를 향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이와 같은 믿음을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자 그 절망 속에서도 마르다는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전혀 불가능한 것도 거침없이 이루어 놓으시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기적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단순하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37:7)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나님은 그렇게도 히스기야가 무서워 떠는 산헤립과 앗수르 군대를 어떻게 해결하실는지 이처럼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도 강하고 많던 군대들에게 風聲(풍성), 즉 바람 소리를 듣게 하여 고토로 퇴각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왕 산헤립은 아예 죽여서 없어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신비롭고도 놀라운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친히 하신 말씀 그대로 앗수르 군대와 산헤립 왕에게 진노하시고 친히 심판하셨습니다.

 

(37:36-38)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고로 그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그렇게도 히스기야 왕을 소름끼치게 하였던 산혜립을 하나님은 손 하나 대지 않으시고 이렇게도 간단하게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강력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도우심을 청하는 멋들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세상의 별 볼일 없는 그런 것들에게 눌려 낙심하고 좌절하여서는 결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아름다운 춘삼월을 맞아 그것도 그 첫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의 삶에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누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 능력 있는 하나님을 모시고 해결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은 강한 앗수르 군대와 산헤립과 같은 왕이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우리들을 누르는 아픔과 고통을 주시어서 하나님을 진실 되게 의지하고 기적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만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신령한 눈을 들어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과 같이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기도를 부탁하고 스스로도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담대하게 일어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 왕과 같이 하나님의 살아 계시고 항상 함께하시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복된 3월 첫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헌신하시는 우리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32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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