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0일 주일낮설교 (도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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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30 March 201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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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는 하나님
3. 30, 2014
本文:창세기14:13-20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에서, 죄악에서 불러내셨다는 사실을 공부하였습니다. 이 단순한 한 사실만 믿을 수 있어도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이처럼 자신들을 죄인들인 줄 인식하고 그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불러내시어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러내신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攝理(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더욱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친히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며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위험에서 도우시고, 가난에서 도우시며, 질병에서도 도우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4:1-2)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는 말씀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신다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영, 육간 건강하게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의 전반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진짜 신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시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확신을 얻고 그 확신으로 험한 인생을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도우시는지? 또한 그렇게 도우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이웃들과의 유대를 만들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 복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브라함과 같이 험한 세상에서도 승리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인류 최초의 전쟁사를 기록한 특별한 말씀입니다. 당시 요단강 주변에 9개의 성에서 아홉 명의 왕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홉 개의 성과 왕을 당시 엘람 왕이었던 그돌라오멜이 십 이년 동안이나 통치하고 다스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 다섯 개의 성 왕들이 그를 배신하고 일어나 동맹을 맺고 전쟁을 일으켰으니 그것이 오늘 창세기 14장의 내용입니다. 이 전쟁이 단순히 그들 아홉 명의 왕들만의 전쟁이었으면 성경에 기록 될 아무런 가치고 없겠지만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이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조용히 말씀을 묵상해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모든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우리들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평범한 말 같지만 우리 인생 여정에 다시 없이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시편 기자를 통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시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 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고 말입니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오늘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갑니까? 사업을 하다가 돈이 꼭 필요할 때나, 생각도 못했던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나, 인간관계가 파탄 나서 외롭고 원통할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거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를 오히려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을 시험하십니다. 과연 우리들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이 백 살에 주신 아들 이삭을 바쳐보라고 하셨고,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보고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물어보시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시험에서 만족해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엄청난 축복을 주셨고, 사람의 머리로만 계산하는 빌립에게는 작은 가슴을 열고 주님을 의지하면 언제나 풍성한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본문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소중한 진리를 배워보고자 합니다. 마음 귀를 열고 들어서 순종함으로 말씀을 통한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모두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간 어떤 책을 잃는데 참으로 흥미 있기도 하고 한편 서글프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의 결혼풍속도를 너무나도 잘 묘사해 놓은 책이었습니다. 장성한 청년이 된 젊은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을 연상해 보십시오. 남자는 턱시도를 입고 여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양가 부모님들은 만면의 미소로 손님들을 영접하고 신랑, 신부 친구들은 자신들이 신랑, 각시라도 된 듯 함께 멋을 부리고 신랑, 신부의 주변을 맴돌며 덕담을 나누고 들러리들 또한 곱게 차려 입고 신랑, 신부를 한껏 돋보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조카들은 예쁜 꽃과 신랑, 신부에게 줄 값진 보석이 박힌 반지를 들고 애교를 피웁니다. 이렇듯 그 결혼식장의 분위기는 가히 이 땅에서의 천국과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결혼은 5년도 채 넘기기 전에 절반인 50%가 갈라섭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던 그들은 호랑이로 변합니다. 원수가 됩니다. 물고 뜯고 싸우며 돌아섭니다. 그 가운데서 생겨난 아이들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버림을 당하고 외면을 당하고 아빠 엄마 중 하나를 잃습니다. 그렇게 갈라진 그들은 또 다시 '이번에야 말로' 하면서 보라는 듯 서로 먼저 재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조촐하게 하지만, '이번만은' 하는 다짐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그들은 60%가 또 다시 돌아섭니다. 그 때는 서로 배가 다른 아이들과 씨가 다른 아이들이 섞이게 됩니다.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입니다.
작년 7월에 이와 같은 결혼의 부작용으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해 지난 목요일(2014년 3월 27일), 법원이 살인자 죠던 린 그레이엄에게 가석방 없는 30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8일 만에 남편을 절벽에서 밀어 추락사 하게 한 여성에게 미국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미줄라 법원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조던 린 그레이엄(22)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가석방 없는 30년 형에 출소 후 감독조건부 5년을 선고했다. 그레이엄은 지난 해 7월 몬태나 주 플랫헤드카운티의 글래시어 공원 절벽에서 남편 코디 존슨을 밀어 추락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들은 결혼 8일차였다. 그레이엄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사건 당일 글레시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후회하게 된 그레이엄이 남편에게 "결혼 후 행복하지 않아"라고 말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두 사람은 거친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그레이엄이 남편을 밀쳐 추락했다.]
이것이 바로 변화무상한 인생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인간들의 변화를 기록해 둔 것입니다. (창14:4)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 삼년에 배반한지라
이렇게도 글로 표현하면 한 줄 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이지만 그 속의 내용은 엄청납니다. 배반이라는 말과 전쟁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늘 여러분들에게 강조해 왔습니다. "인간은 사랑 할 대상이지 믿을 대상은 아니다."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사만큼 많은 배신을 당해 본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험으로 보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보나 사람은 도울 힘도 없거니와 진정으로 도와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최소한 한 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서 깨달음이란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하나님께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 깨달아도 신앙생활의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의 축복이 내일의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전쟁에 고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연류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쟁과 아브라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틀림없이 그 전쟁에 연류 되어 있었습니다.
(창14:14-16)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 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왜 이 엄청난 전쟁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카 롯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쟁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고 있었던 롯이 그만 포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롯을 구해내기 위해 친히 전쟁터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은 늘 아브라함과 같이 우르에서 나와 줄곧 같이 살았는데 왜 소돔 땅에 있어서 전쟁 포로가 되는 비참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다음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13:8-11)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참으로 아브라함은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고향을 떠나 올 때 그들은 빈털터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복을 주시므로 이제는 서로가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편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자 아브라함은 롯으로 하여금 살림을 나도록 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롯은 늙은 삼촌 아브라함에게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해서 가라고 선택권을 주었지만 자신은 젊고 재산도 많아졌으니 삼촌으로 하여금 먼저 좋은 땅으로 떠나시도록 배려해 드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선택권을 준 삼촌 앞에서 일언반구도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소돔 땅을 선택하고 미련 없이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그렇게 떠나버린 후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주시고 위로해 주셨겠습니까?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롯이 그렇게 삼촌 앞서 좋은 땅인 줄 알고 찾아갔던 그 땅이 지금은 저주의 땅이 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시는 비참한 곳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육신의 눈에 좋다고 덥석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최소한 10년 후를 내다보고 그 때도 유익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지를 따져보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먼저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은 언제라도 육신적인 판단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롬8:5-9)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롯을 보면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들도 예외 없이 롯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100% 육신적인 것들인데 우리가 어찌 신령한 영으로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육신의 한계에 갇혀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백 불짜리를 지불했는데 종업원이 거스름돈을 잘못 계산하여 20불을 더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시 가서 되돌려 주겠습니까? 웬 떡? 하면서 가지겠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에 자신이 어떻게 대답하는가? 에 따라 우리가 육신의 사람인지 아니면 영의 사람인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롯이 그렇게 소돔 땅을 향하여 미련 없이 삼촌을 뒤에 두고 떠나가 버린 것이 이처럼 육신의 욕심에 젖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결코 그에게 복이 되지 못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포로가 되어 죽을 뻔 하였고 그것을 겨우 극복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을 하시어 또 다시 죽을 뻔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평생을 통해 모아 두었던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그의 처도 잃어버렸으며 사위들도 다 잃은 다음 간신히 딸들과 함께 빈 몸으로 탈출하여 나왔으니 100% 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처럼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육신대로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의 축복이 내일의 저주가 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이 그 전쟁터에 뛰어 든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짓이었다고 말 할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5:4의 전쟁입니다. 그돌라오멜이라는 왕을 추종하는 왕들과 그를 배반한 왕들의 연합전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율이 바로 5:4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돌라오멜 쪽에는 4개의 성과 네 명의 왕들이 연합하였고 그들을 배신한 왕들은 다섯이요 또한 다섯 개의 성에서 나온 용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창14:8-9)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전쟁에서 4왕이 이끄는 군대가 5왕이 이끄는 군대를 이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돔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4왕들의 포로가 되었고 그 모든 재산들은 그들의 전리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가운데 자신들의 가솔들 318명을 데리고 그 전쟁터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 가솔들이란 아브라함의 양무리나 치며 지키는 목동들에 불과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318명이 과연 5왕들과 성들이 연합하고서도 비참하게 패배한 4왕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전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물어 보아도 승산이 없는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과를 보면 너무나도 뜻밖입니다.
(창14:14-16)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 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대패했던 5왕들은 12년 동안이나 그돌라오멜 밑에서 식민생활을 해 왔던 서러움에 맺힌 왕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독립을 위해 최선의 준비를 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대패하여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브라함이 식솔 318명을 데리고 나가 5왕들을 이긴 4왕들을 쳐부수고 모든 것을 다 빼앗아 왔다는 사실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100% 역사하셨고 친히 아브라함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도 기적같이 아브라함을 도와주셨을까요?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해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도 놀랍도록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축복하는 자들은 복을 받고 그를 헤치는 자들은 망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브라함이 소수의 정예 되지 못한 목동들을 데리고 나가서도 다섯 왕들의 연합군을 이겼던 네 왕들을 이기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약속 받은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사람인지라 애굽의 왕 앞에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자신의 아내도 아니라고 했던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내였고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아들 이삭을 기다리지 못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므로 이 땅에 비극을 만들어 놓은 장본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지 인간의 도덕이 아닌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들의 기나긴 인생 여정에는 꼭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도움이 어디에서 와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인생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별되어 영적인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면 하나님은 친히 보장하신 약속 그대로 우리들을 어디서나 도우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43:2-3)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는 약속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도우시는 하나님을 모신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당하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나님과 손을 잡고 이기며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들에게 우리들을 불러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보다 더 복된 사실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 불러내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면서도 죄가 죄인 줄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을 불려주실 뿐만 아니라 친히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갔을지라도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거기에서 귀한 모든 것들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의 삶은 정녕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변화무상한 육신적인 삶을 넘어서 영적인 사람들로 변화를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축복이 내일의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여 오늘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삶을 지양하고 내일을 꿈꾸고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이란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삶에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하고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시고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복된 관계를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약속에 진실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된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고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풍성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2014년 3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