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8일 주일낮설교 (서로 발을 씻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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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Friday, 06 June 20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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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을 씻기라
6. 8, 2014
本文:요한복음11:3-15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6월 6일은 조국 대한민국의 현충이었고 5월 26일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현충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계절에 우리들이 가슴으로 느끼는 하나는 누군가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 소중한 목숨을 희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녹아 있습니다. 작게는 가정에서 부모님들의 눈물과 땀과 정성이 녹아 있어 우리 자녀들이 자라났고 우리 교회 또한 지난 31년간 누군가가 몸과 마음과 재물을 바쳐 섬겨 왔기에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라면 이와 같은 희생을 값지게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또한 그와 같은 희생과 사랑으로 후손들에게 우리 또한 무엇인가를 남겨 주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사건이 요한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잔인한 고통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길 여유가 어떻게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렇게 발을 씻어 주셨고 또한 그 사건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실 고귀한 교훈을 남겨 두셨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명하신 하나의 명령이 오늘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 앞서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서로 발을 씻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우리는 "서로"라는 말을 곱씹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중에 이처럼 "서로 ···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문안하라(출18:10)
서로 화목하라(막9:50)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라(골3:13)
서로 돌아보아 주라(히10:24)
서로 사랑하라(요15:17)
서로 짐을 지라(갈6:2)
서로 발을 씻기라(요13:14)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시고 그렇게 함이 "옳으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슴에 모신 성도들은 혼자 살고 혼자 즐기고 혼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엇을 하든지 "서로"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주님의 명령을 중심으로 "서로 발을 씻기는 일"에 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그들은 참으로 황송해 하였고 베드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8절)고 질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그들의 발을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도 서로 발를 씻기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새로운 변화와 축복을 맛볼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기다려 보십시다.
낮아지고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발은 우리들의 신체 중에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고 발은 우리들의 신체 중에 가장 냄새나고 험악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들의 모든 몸 중에서 그 발을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그 지방은 아열대 지방이라 덥고 먼지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 발은 언제나 더럽고 냄새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발을 서로 씻기라고 하시는 것은 참으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라는 뜻입니다. 남의 발을 씻기면서 교만해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섬기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낮아지고 겸손해져야만 가능합니다. 잘나고 교만한 자는 결단코 주님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잘났던 유대인들은 스스로 높아져서 예수님을 잡아 죽였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감히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다"고 말한 것만 보다도 그들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19:10-11)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미리 예견하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 줄 정도로 낮아지고 겸손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겸손만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들의 발을 씻기는 낮아짐의 자세와 겸손의 미덕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 앞에 군림하고 이웃을 업신여기거나 학대하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기 직전에 유언과 같이 귀하게 남겨 주시고 몸으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이 귀한 명령을 무시하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들이 그 주님의 은총을 덧입고 그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암탉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자와 싸우다가 패배한 수탉이 컴컴한 구석에 가서숨어 있었습니다. 싸움에 이긴 수탉은 의기양양하여 높은 담 위에 올라가 큰 소리로 꼬꼬댁거리며 승리의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독수리가 내리 꽂히며 그 수탉을 낚아채 가버렸습니다. 싸움에 진 수탉이 안전한 곳에 피해 있다가 나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암탉에게 구애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알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웃들의 발을 씻기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처럼 몸소 본을 보여주시고 "너희들도 그렇게 서로 발을 씻기라"고 명령하시고 전혀 엉뚱한 한 말씀을 던져 주셨습니다.
(요13:15-17)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고 말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왜 갑자기 발을 씻기는 말씀을 하시다가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다"는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오늘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고 그분이 친히 발을 씻어주시는 우리들은 그분을 섬겨야 할 종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최소한 주님과 그 주님께서 보내신 종들 앞에서 앞서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한 말씀을 더 덧붙여 증거해 주셨습니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이렇게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발을 씻겨 주신 우리 주님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친히 모범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들이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서 말씀 드린 겸손과 낮아짐의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오만방자하고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님과 그 종들을 업신여길 때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6월 4일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를 때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투표를 하고 그곳에서 참관인으로 봉사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 주었습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가 원수에 대한 예를 갖추었는데 통진당의 김한울이라는 참관인은 그 자리에 빳빳하게 앉아서 대통령을 째려보며 악수를 거부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기고한 한 네티즌의 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어 잠시 인용해 보았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패륜아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픔에 앞서 분노가 치민다. 대통령이 악수를 청했는데 다른 이들은 일어서서 대통령께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이자는 앉아서 두 눈을 위로 치켜서 째려보는 원숭이 같은 패륜아 짓을 하고 있다. 그 옛날에는 몰라도 최소한 이씨조선시대 이후로 이런 일이 <역사나 실록>에 기록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자신은 대단한 영웅적 일을 했다고 말 할지 모르지만 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스스로 얽어맨 그 저주에서 풀려나지를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자를 비웃었고 조롱했다. 이자의 정체는 노동당 참관인으로 자리한 김한울이라는 자로 노동당 종로·중구 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이다. 자리에 앉은 채 악수를 두 번이나 거부했단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시 2: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종을 비웃는 자에게는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셨고. 하나님께서 세운 종을 조롱한자의 결말은 암곰에게 찢김을 당했다(왕하2:23,24)고 기록하고 있다. 필자의 걱정은 하나님은 결코 비웃고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심을 알기에, 김한울님에게 부탁하노니 이글을 보는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박근혜대통령께 석고대죄하기를 바란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속히 회개하라.](조선일보 6월 4일 자)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천명해 놓으셨습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분명히 알고 처신해야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펄쩍펄쩍 뛰지도 말아야 하고 너무 교만해서 오만방자를 떨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잘 되면 잘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못되면 못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스스로도 일만하면 돈을 벌어 잘 살 줄 알고 물고기 잡으러 득달같이 달려갔었지만 그들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해야 합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라고 말입니다.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하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만큼 대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서 가장 뜻 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고 말입니다.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눈앞에 둔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모범을 보여주시고 진정 그들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결국은 순종입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들에게 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한 말씀은 대충 지나가면서 하는 말씀이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지나가는 말씀으로 한 마디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22:21-22)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고 말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한 말씀이 나중에 엄청난 재난으로 가룟 유다에게 미쳤습니다.
(행1:16-18)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렇듯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서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핑계 대며 주님의 말씀을 뭉게버리지 말고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사막의 개혁자라는 별명을 지녔던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A.D. 4세기 경 사막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던 텔레마쿠스라는 수도사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어느 날 텔레마쿠스는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로마로 가야한다. 그곳이 네가 일할 곳이란다. 그곳이 지금 너를 부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일어나 로마로 갔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주말이면 원형극장에서 포로로 잡혀 온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텔레마쿠스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도 두 포로가 시퍼런 칼을 쳐들고 서로 죽이기 위해 원형극장에서 짐승처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군중들은 그 잔인한 경기를 바라보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가 피를 흘리며 죽어야만 끝이 나는 처절한 광경을 관중들은 오히려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 본 텔레마쿠스는, "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으라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하는 직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즉시 그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에 이 잔인한 경기를 멈춰라!" 그리고 칼을 들고 싸우는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섰습니다. 이와 같은 엉뚱한 광경을 바라보던 관중들은 어떤 미친 사람이 쇼를 벌이는 줄 착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텔레마쿠스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이 싸움을 멈추라!"는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쇼가 아니라 현실임을 직시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한결 같이 이 수도사를 향하여 야유를 퍼붓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 경기를 진행하고 있던 지휘관이 검투사 한 명에게 텔레마쿠스를 처치하라고 사인을 주었습니다. 순간 대형 칼이 허공을 휘두르며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수도사가 꺼꾸러졌습니다. 피를 흘리며 텔레마쿠스는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싸움을 당장 멈추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경기장은 숙연해졌습니다. 황제 호르니우스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경기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관중들도 그 황제의 뒤를 이어 경기장을 빠져 나갔습니다. 결국 검투사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주후 391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 이후 로마의 원형극장에서는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잔인한 검투사들의 경기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과 희생으로 더 이상의 시민들이 죽어나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택하신 종들의 희생과 눈물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희생이 되었고 에스겔의 아내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결혼조차 하지 않았고 호세아 선지자는 음녀랑 결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소중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희생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 모두가 순종으로만 가능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희생으로만 가능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땅에는 이처럼 순종하는 사람도 없고 희생하는 사람은 더 더욱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만한 인간들만이 판을 치고 있고 하나님의 의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그 말씀을 무시하고 우리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이성과 지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로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순종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결국 선택은 오늘 우리 모든 각자의 몫입니다. 부디 바른 선택으로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복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현충의 달 6월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룩한 희생자들로 인해 한 나라가 서 가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한 국가로서의 자주독립을 이루어 놓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며 죽어간 사람들이 산을 이루었고, 미국의 독립을 위해 영국군과 맞서 싸우며 남북전쟁에서 죽어간 사람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의 피흘림이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반듯한 자주독립국가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의 그 피흘림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의 존재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이제 명령하십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고 말입니다. 겸손하게 낮아지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여 끝까지 순종함으로 복된 자가 되게 하시려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명령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가슴에 새겨 놓고 우리들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함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은총이 머물고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머물 수 있도록 오늘 우리들이 작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귀한 말씀을 받으며 예배자로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진정 이처럼 순종하고 주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복을 누리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 년 6월 8일
1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