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주일낮설교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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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9 June 201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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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6. 29, 2014
本文:다니엘6:10-15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6월 5일 우리 이웃에 있는 미션스쿨인 퍼시픽대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4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그 중에 한 학생은 오래곤에서 유학 온 우리 한인이라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범인은 아직도 실탄을 50발 이상 가지고 있었고 붙잡히고 나서도 '더 많이 죽이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할 만큼 잔인한 사람이었는데 한 학생이 그 범인을 제압하였기에 사상자를 그만큼이나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그 학생이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으면서 각 종 SNS를 달구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해 더욱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6살의 쟌 메이스라는 이 청년은 학교를 통해 발표된 성명에서 "나는 그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범인을 제압할 수 있었고 다치지도 않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와 맞닥뜨린 그 범인은 익명의 괴물이 아니라 슬퍼 보이는 한 젊은 남자에 불과하였다."고 말하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되고 용서 받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저보다 더 많은 충격을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일생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면서 "저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감동도 받았지만 앞으로는 이 모든 관심이 피해자들에게 집중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였습니다. 아직도 26살에 불과한 젊은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과 믿음이 참으로 아름답고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의 이와 같은 선행과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며 결혼을 앞둔 그를 위해 성금을 모으고 있는데 한 달도 안 돼 5만 불 이상이 모여졌다고 합니다. 상대가 총을 난사하고 이미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그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범인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죽을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더 큰 피해를 막고 그 모든 칭송을 하나님의 은혜에 돌리는 이런 청년을 이 시대에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처럼 용기를 동반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용기는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니엘이 역시 그런 역사에 길이 빛나는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을 줄 알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쫓아갔기 때문입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는 말씀이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은 현충의 달 6월을 마지막 보내면서 진정한 용기와 믿음에 관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모아 들으시고 은혜 받는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을 줄 알면서도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렇게 초연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시고 끝내는 예정된 죽음의 그 길에서 희생되어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잡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칼과 몽치로 무장한 군병들이 들이닥쳤는데도 주님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당당하게 맞이하셨습니다. 죽기로 각오하신 우리 주님의 그 당당한 모습이 우리 성경에 고스란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마26:48-54)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과연 이 땅에 그 누가 이처럼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그렇게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모르는 것이 없는 식견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단 한 가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죽을 줄 알면서도 그 죽음의 길로 담담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주인공인 다니엘은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당당하게 그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어 그로 하여금 죽지 않도록 보호하실 뿐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이 땅에 참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생한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은 결국 선택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잡혀온 포로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지혜가 빼어나고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능력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왕의 다음 자리인 총리로 등용이 되자 바벨론의 정치꾼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공격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흠을 잡기 위해 가진 모략을 다 동원했으나 워낙에 깨끗한 다니엘인지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6: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다니엘이 진실된 신자임을 발견하고 매일 자기의 하나님을 향하여 절하며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것을 이용하여 다니엘을 잡을 방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 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6: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오직 다니엘 한 사람을 잡아 죽이기 위해 그들은 이렇게도 다니엘이 꼭 걸려들 수밖에 없는 교묘한 법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왕의 법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기도하던 자신의 영적인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역시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비장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자기가 이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면 그들이 꾸며 만든 법에 걸려들어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알면서도 이처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처럼 믿음의 길,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들의 삶을 친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선택은 이처럼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참 아름다운 믿음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쟌 메이스와 같이 총을 든 살인마를 덮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무서운 길이었지만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그 범인을 제압해야 되겠다고 의로운 길을 선택하였을 때 비로소 그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두 청년이 저녁 황혼이 짙어오는 때에 시내로 나가서 뭐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보자! 며 의기투합하여 도시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도박장과 교회가 붙어 있는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어 섰습니다. 한 친구는 도박장으로 들어가자고 하고 또 한 청년은 교회로 먼저 들어가 보자고 우겼습니다. 그 교회의 벽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는 그 날 저녁 설교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 서로 같이 가자고 다투다가 결국은 각 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로 하고 거기에서 헤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도박장으로 들어가고 또 한 사람은 교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때 교회당으로 들어갔던 사람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회심하여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죄의 삯이 사망을 만들지 못하도록 신앙 안에서 인생을 잘 살아 마침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구의 제22대와 24대 대통령 클리블랜드(Cleveland)였습니다. 그가 이처럼 영광스럽게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그 날, 그때 도박장으로 들어갔던 사람은 감옥에서 신문을 통해 자기의 옛날 친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한 순간의 선택이 이처럼 한 인생에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언제나 눈앞에 있는 유익이나 두려움만 보지 말고 가슴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서에서 기적 같이 보고 있는 하나의 분명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수 천도의 뜨거운 불 속에서 살아날 수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굶주린 사자가 들어있는 사자 굴속에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는 이렇게도 불가능한 사람의 생명이 거짓말처럼 살아나왔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3:22-26)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이것이 정녕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일진데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별명이 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강조하셨고 그와 같은 믿음에는 능치 못함이 없는 기적이 따를 것을 선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니엘서의 짧은 12장 안에는 또 다른 기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졌던 다니엘이 거뜬히 살아나온 것입니다.
(단6:16-17)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6:19-22)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는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게 하는 귀한 자료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내일을 알 수 없듯이 사람의 생명 또한 우리들이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104:28-29)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을 오직 하늘의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니 그 분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천후적인 감사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값진 교훈은 다니엘이 그와 같은 생사가 달린 위기의 순간에도 감사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지금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말입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그냥 감사가 아니라 "범사"라는 말씀입니다. 범사란 "모든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좋을 때,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가진 우리 인생들이 모든 일에 늘 감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의 입장이 오늘 우리들이 처한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십시다. 예수님의 자녀답게 대적이 아무리 흠을 찾아보려고 해도 흠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인생을 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까지 들어가야 하는 지경이라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어쩌다가, 마지못해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하루에 세 번씩이나 그렇게 변함이 없이 감사를 드렸다고 하니 그의 감사생활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은 비결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굄을 받고 사랑을 받는 가장 귀한 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생활일 것입니다.
일본에 미즈노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즈노씨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불구자입니다. 전신이 해삼처럼 퍼져서 수족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며 물론 글도 쓸 수 없습니다. 그가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눈을 반짝이는 것뿐입니다. 그가 작품으로 발표한 시는 그의 형수의 헌신적인 협조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그가 시를 쓸 때에는 그의 형수가 일본어 50자표를 걸어 두고 막대기로 한 자씩 짚어 내려가다가 미즈노 씨가 원하는 글자가 집히면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수는 그 글자를 백지에 써 두고, 또 짚어 내려가다가 다음 글자를 쓰는 식으로 미즈노 씨의 마음에 있는 시가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 한 수를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두 사람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그 시가 바로 일본 문단의 걸작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NHK가 특집으로 보도까지 한 것입니다. 미즈노씨의 시집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즈노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터인데 말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조건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조건에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미즈노 씨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세상의 어떤 환경 속에서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희생과 사랑의 달 6월이 저무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 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니엘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악조건 하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스스로도 승리하는 위대한 삶을 살고 갔습니다. 오직 믿음 하나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니엘과 같이 용기 있는 결단으로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변함없는 감사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지만 우리 스스로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잠시 살고 이 세상을 떠나가지만 우리들의 믿음의 유산들은 다니엘과 같이 이 땅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덧 2014년도도 절반이 다 지나버렸습니다. 흐르는 세월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믿음으로 굳게 서서 다니엘처럼 승리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6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