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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4년 7월 20일 주일낮설교 (정복하라!)

2014년 7월 20일 주일낮설교 (정복하라!)

정복하라!

7. 20, 2014

本文:창세기1:26-30

說敎:崔 仁 根 牧 師

그 옛날 인도의 창조신화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곳에서도 창조신은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여자를 만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창조신이 여자를 지을 때 연못 속에 있는 연꽃으로 만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쁜 여자를 만든 다음 그 여인을 위해 집을 지어주려고 여자와 의논하는 데 맨 처음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속에다 용궁을 지어 주겠다고 제의 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파랗게 질려서 연못 속에는 귀신들이 살고 있는데(인도 신화에는 귀신이 연못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거기에서 어떻게 살겠느냐? 싫어합니다. 그러자 창조신은 넓은 광야에다 지어주겠다고 제의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또 다시 거절하며, "저는 원래 연꽃인지라 연약하여 그렇게 광활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광야에서는 살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러자 창조신은 또 다시 고민하다가 아주 아늑한 동굴 속에다 지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또 다시 거절합니다. "저는 늘 밝고 환한 곳에서만 살았는데 동굴처럼 음침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은 난감해 하며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창조신이 먼저 지어 놓았던 멋진 남자 와르미키라고 하는 사람이 새벽이슬을 헤치며 반조를 키며 숲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창조신은 여인에게 다시 제안합니다. "여인아, 저 남자의 가슴 속에 들어가 살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사뿐사뿐 걸아가 그 남자의 가슴 속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는 질겁을 합니다. "신이시여, 저로 하여금 저 사람의 가슴 속에서 살라고 하십니까? 그 속에는 지금까지 제가 싫어했던 용궁과 광야와 동굴 속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연못과 같이 음침함과 광야와 같은 모진 바람과, 동굴과 같은 어두움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저는 나쁜 것들이 다 들어 있는 이 남자의 가슴 속에서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고 잘라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창조신이 조용히 다가와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그러한 태도를 가지면 이 세상에서는 살 수가 없단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말고 일단 저 남자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거라. 만일 그 가슴 속에 연못과 같은 음침함이 있거든 너는 한 알의 진주가 되어라 그리고 음침한 그곳에서 밝은 빛을 비추어라. 그리고 그 가슴 속에 광야와 같은 거친 곳이 있거든 너는 그곳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백합화가 되거라. 또한 남자의 가슴 속에 동굴과 같은 흑암이 있다면 너는 작은 빛이 되거라. 이렇게 타이르는 창조신의 말씀을 듣고 있던 여인은 무엇을 깨닫고 결심하였는지? 조용히 남자의 가슴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도에서 전해 오는 신화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결국은 극복해야 할 문제요 정복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모든 것이 다 우리들에게 맞도록 준비 되어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주셨던 것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중에서도 오늘은 "정복하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이 시대를 복되게 살아가는 방도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듣고 은혜와 축복을 만들어 내시는 귀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복하라!

이 세상에서 가장 자녀 교육을 잘 하는 민족은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자녀 교육 방법론 중의 하나는, "자녀들에게 생선을 주지 말고 생선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해 주는 것이 임시방편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반대로 가르칩니다. "생선 잡는 일은 천하고 힘드니 돈을 주어서 잡아 놓은 생선을 구하는 것이 편하다."는 식입니다. 훗날 누가 더 이 세상을 올바로 정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근본을 해결할 줄 아는 유대인의 자녀 교육 방식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결코 모든 것을 그냥 주시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그냥 무상으로 주었더니 그들은 사탄 마귀의 꾐에 넘어가 타락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방법을 바꾸셨습니다. "가나안 땅의 정복"이 바로 그랬습니다. 땀을 흘리며 살게 하신 것이나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것 등이 다 그런 맥락입니다. "정복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정복해야 할 대상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사탄 마귀를 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는 자기 자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창세기에서 "정복하라"고 명령하시고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자"에게만 천국을 주신다는 결론을 내리신 것입니다.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결국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축복의 방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정복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신앙과 인생의 필연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모두 정복자로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그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 방도를 함께 찾아 우리 모두 정복자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진정 복 받은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정복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타국에서 왕의 명령이라도 거역할 줄 아는 용기가 있었으니 진정한 사나이들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이라도 굴복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처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였다가 실패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을 꿈꾸며 평생을 바쳤던 장개석은 "영웅은 용감하게 실패하는 자"라고 설파하였던 것입니다.

소련과 같은 척박한 곳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솔제니친은 감시와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역사에 길이 빛나는 [수용소열도]를 집필하였습니다. 600만 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는 소련 수용소 내막을 고발하는 소설이기에 그는 한 목숨을 내 걸어야 했습니다. 그 내용은 스탈린뿐 아니라 신성불가침이라는 레닌까지 규탄하는 것이니 목숨을 걸지 않고야 어떻게 시도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내가 만약 암살이라도 당하게 되면 비밀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 책을 꼭 출판해 달라"는 유언을 측근들에게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끝내 그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이것을 안 소련은 그를 국외로 추방하고 말았습니다. 끝내 독재자라고 해도 세계의 여론이 두려워 그를 수용소에도 보내지 못하고 죽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무서운 악당들을 정복할 수 있고 또한 고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고 말입니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7일 목요일 낮 1시가 조금 지났을 때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 등 298명이 탑승한 말레시아 항공이 우크라이나 국경 접경지역에서 미사엘을 맞고 추락하여 298명 전원이 사망한 끔찍한 항공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계적인 에이즈연구 전문가가 108명이나 한꺼번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국제 에이즈 학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 비행기를 탔다가 변을 당한 것입니다. 미국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발표한 바에 의하면 친러 반군들이 쏜 미사엘이 이 비행기를 격추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끊임없이 악을 자행하여 소중한 인명을 살상하는 이와 같은 세력들을 정복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악과 사탄 마귀의 세력들을 우리는 어떻게든 정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악의 세력들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 예수님께서 주신 단 한 마디의 말씀이 중요한 해결책의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해답입니다. "믿음"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 이것만 있으면 끝가지 낙심하지 않고 악을 정복하고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이처럼 강력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절망하는 연약함만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나 늙은이를 막론하고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굳게 서지 못한 채 불가능을 먼저 내다보고 있으니 단 하나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도리어 악의 세력들에게 정복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지니고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친히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수1:6-7)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굴하지 않는 강력한 믿음과 신념으로 굳게 서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고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 대적이 제아무리 크고 강하여도 능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1895년 미국 남부에 무서운 비극이 엄습해 왔습니다. 특별히 알라바마 주는 눈물의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알라바마 주는 목화제배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일거리도 풍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난데없이 목화밭에 생각도 못했던 목회바구미가 들끓기 시작하여 전체 목화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목화바구미와 살인적인 사투를 벌였으나 그 해의 수확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실직자가 생겨나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하였으며 질병까지 돌아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 영향은 이웃 주에까지 파급하여 그 어디에도 직장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알마바마 주민들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조상대대로 물려받아 왔던 목화밭을 갈아엎고 목화대신 옥수수와 감자와 땅콩을 심었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땅콩 밭을 일구어 갔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알라바마 주는 전 세계적인 땅콩, 감자, 옥수수의 재배지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훗날 엔터브라이즈 동네의 재판소 앞뜰에 목화를 망치게 했던 목화바구미를 위한 기념탑을 세워 두었습니다. 그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목화바구미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이 벌레는 우리들에게 번영의 계기를 주었고 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놀라운 신념을 주었다. 목회바구미들이여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를 바치는 바이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역경 중에 감사드렸던 고상한 믿음의 역사와 비슷하여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때때로 정복은커녕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잘 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일어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이와 같은 믿음을 상실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만 있다면 끝까지 끈질기게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Peary와 Henson이라는 두 사람은 에스키모 몇 사람을 데리고 북극의 정점을 정복하기 위해 일곱 번이나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여덟 번째는 끝내 인간이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던 그 옛날 1909년 4월 5일 그 얼음판의 북국의 최정점에 밟을 딛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七顚八起(칠전팔기)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200번 이상 실험하지 아니하고 발명품을 내 놓은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강력한 믿음과 신념은 끝내 목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귀한 분들이 온 몸으로 우리들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이 세상에 두실 때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말로는 아무도 "돕는다"고 하지 않지만 묵시적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가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자동차를 만들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 자동차를 사서 운전하며 다니게 되고 우리들이 직접 도로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혼자서 이 먼 길을 만들고 그 길로 자동차를 만들어서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도우며 묵시적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을 정복하는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8888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은 산을 어떻게 인간 혼자서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총동원 되어 장비를 제공하고 베이스켐프를 지키고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돕는다 할지라도 인생에게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친히 도와주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셨습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험한 세상을 정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처럼 능력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사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그토록 놀라운 축복을 많이 누리며 온 세상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매사를 그 하나님과 의논하며 도우심을 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시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는 말씀과 같이 그는 매사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기는 삶으로 일관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사라는 왕은 발에 병이 생겨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의원을 의지하다가 결국은 그 발병으로 죽는 비극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대하16:12-13)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위에 있은지 사십일 년에 죽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하면 응답하시고 찾으면 만나주시며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데도 그와 같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근본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고 그러므로 겸손하지 못한 채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은 참으로 사람이 순박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재임 중일 때보다는 오히려 퇴임하고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를 낮추고 언제나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이 인생 신념으로 삼고 있는 성경 구절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특별히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힘든 세상을 정복하는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악한 모든 세력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신령한 사명을 감당하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 자신이 스스로 고백한 바와 같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결코 스스로의 능력이나 노력이나 믿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그 모든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나도 한계를 지닌 하나의 꽃과 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 능력자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고 또한 삶 속에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바 이 세상을 정복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날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자연과 동물을 정복하라고 지음을 받은 인생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배당하고 사탄 마귀에게 지배당하며 심지어는 자기 사신에게 조차 지배를 당하며 그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는지? 그 목적의식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복하라"시는 명령입니다. 그렇게 온 세상과 사탄 마귀를 정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니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이 이 세상을 정복하고 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오직 "이기는 자"에게만 풍성한 축복을 주겠다고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존경 받는 삶을 살고 하늘나라에서는 상급 받는 멋쟁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그렇게 하라고 불러 주시고 예배자로 우뚝 세워주신 우리 귀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십시다!

할렐루야!!!

주후 2014년 7월 2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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