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7일 주일낮예배 (나눠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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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7 July 20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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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주라!
7. 27, 2014
本文:누가복음6:27-38
說敎:崔 仁 根 牧 師
대한민국 SBS에서 제작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나온 한 여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져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멀쩡하게 살아가던 삶에 재앙처럼 닥친 이 불치병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굽어져 가슴과 배가 맞닿을 정도로 허리뼈가 구부러져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희귀병입니다. 밤이면 더욱 고통이 심하여져 밤새도록 생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며 잠을 잘 수가 없게 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고통과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와 같은 형편에서도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대로 걷지도 활동하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런 모습은 정상적인 생활과 건강을 누리는 사람들조차도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이처럼 이웃들에게 나눌 때 비로소 우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이웃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사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송하나 삶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벨뷰 오버레이크 병원의 마취과 의사가 태국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매춘사업을 하다가 체포된 사건은 오늘 우리들에게 돈의 노예가 된 허황된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월급만도 한 달에 적게는 2만 불, 많게는 4만5천불이나 된다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처럼 끔찍한 범죄로 돈을 벌고 있었으니 자기중심적인 인생의 현실은 이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것입니다. 7월을 마지막 보내면서 오늘은 진짜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부디 듣고 감동을 받아 우리들도 소중한 것을 이웃들과 나누며 주님의 삶을 본받아 가는 멋들어진 신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눠주라!
우리들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온 몸으로 어떻게 신자답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명하시는 하나의 소중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라!"는 것입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냥 "주라"고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여 주면, 더 많은 것으로 넉넉하게 채워주시겠다는 약속 또한 함께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오늘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인정을 받게 되고 부수적으로 주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축복 또한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거야 말로 一擧兩得(일거양득)이요 도랑치고 가제 잡는 풍성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자세히 듣고 순종하여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그런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재물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냉철하게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이웃이나 주의 종들에게 얼마나 주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닮아왔고 또한 이웃들을 얼마나 사랑하여 왔는지 스스로 평가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단 한 푼도 이렇게 내어주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진정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살기 원한다면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니 그것이 바로 "주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하십니다. "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돈은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가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부모님을 받았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받았으며 좋은 직장을 받았고 천국에도 갈 수 있는 믿음도 받았습니다. 소중하고도 온전한 몸을 받았고 그 몸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는 영혼구원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하나도 돈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가치 없는 돈을 아무런 욕심 없이 내어 줄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내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주님께서 친히 명하시는 "주라"는 말씀을 결코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그렇게 뜨겁게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금요 철야기도 같은 것은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새벽기도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습니다. 예배도 우리들처럼 주일 낮, 저녁, 수요일, 금요일까지 그렇게 열심히 드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유사시에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삶을 보면 진짜 크리스챤 같을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일례로 지난 2001년 9월 11일! 명세기 이 땅에 영화 같은 거대한 테러가 뉴욕 맨하탄의 쌍둥이 빌딩에서 터졌을 때 전 국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돈을 내 놓았습니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각 방송사를 통해 "도네이션 그만해 주세요"라는 광고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참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생활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웃인 오소에서 산사태가 나서 마을 하나를 온통 덮어버렸을 때도 너도나도 자원하여 기부금을 내 놓아 고통당하던 그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는 아직도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기독교에 뿌리를 둔 베푸는 사랑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이 어려울 때, 우리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돈을 내 놓고 도움을 주려는 자세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삶의 기본입니다.
지난 1981년 8월 3일 뉴욕타임즈 칼럼에 한 한국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미담이 게재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인 헨슨씨의 친구 이 모 교수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헨슨씨의 도움으로 미국까지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헨슨씨가 변호사로 개업하고 첫 손님으로 한 흑인 청년의 사건을 맡았는데 그 흑인 청년은 남의 자동차에 침입하였다가 입건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보석금 250불이 없어 감옥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는 딱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 씨는 자기도 미국에 와서 고학으로 간신히 공부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었지만 그 이름 모를 흑인의 딱한 소식을 듣고 250불을 대납해 주어 흑인 청년이 보석으로 석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그 덕에 그는 밤마다 남의 집 식당에서 늦은 시간까지 접시를 닦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가슴이 따뜻한 이 씨의 마음을 들은 유욕타임즈는 그를 특집으로 다루어 신문에 게재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진짜 크리스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우리들의 형편이 어렵든지 넉넉하든지를 막론하고 주님께서 친히 "주라"고 명하시는 그 말씀 그대로 절대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이처럼 따뜻한 손을 펴고 우리들의 소중한 재물로서 도울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주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도로 갚아 주시는 복된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몸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숱한 죄악으로 더렵혀져 있는 무익한 육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죄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그 몸을 원하고 계십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우리들의 몸이 비록 죄로 더렵혀졌지만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유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너희 몸을 내어주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며 또한 우리들의 몸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애틀 지역에 이 몸으로 그릇 산 사람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 케이스는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뱅크 오버 어메리카에서 일어났습니다. 30대의 한 젊은 남성이 은행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원의 총을 빼앗아 경비원을 쏘고 범행에 나섰는데 그 경비원이 또 다시 그 범인을 향해 총을 쏘아 두 사람이 다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고 은행일대가 마비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건은 렌튼 가정집에서 일어났는데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몸에 휘발유를 들어붓고 불을 질러 죽이려던 여인이 체포되는 끔찍한 사건이 그것입니다. 남편이 얼마나 미웠던지 총으로 쏘아죽여서는 고통을 잠시밖에 못주니까 그렇게 불을 질러 더 큰 고통을 주려고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미움과 증오만 남게 되면 바로 이처럼 소중한 몸으로 끔찍한 범죄에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몸을 내어 놓고 값진 일에 쓰여지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지금 워싱턴 주에는 전례에 없었던 거대한 산불로 12만 에이커의 산림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 깊은 산 속에서 불을 끄는 소방대원들을 도와 32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사업이나 직장을 제쳐두고 그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그들의 헌신은 문자 그대로 한 몸을 다 바쳐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2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31%이고 시시때때로 자원봉사로 헌신하는 미국인들은 63%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7시간 이상 몸을 내 놓고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정신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지난 주간에 나흘 동안 2014 VBS가 열렸습니다. 젊은 선생님들과 보조 선생님들이 자신의 휴가로 여행 떠나지 아니하고 나흘 동안 어린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학부형들도 시시로 부엌으로 나와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식사를 챙기며 헌신하고 수고하였습니다. 그냥 지나쳐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깊이 그들의 수고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칭찬 받아야 마땅할 복된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섬기는 삶은 역시 아름다운 것입니다. "섬김"은 곧 우리 주님을 닮은 모습이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저절로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주님의 사랑을 품고 하는 이와 같은 헌신은 자신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지만 그 후손들이나 보는 이들까지도 깊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지 못하게 되면 끝까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고 결국은 비참한 생을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권총 강도나 남편도 살해하려 했던 잔인한 살인자와 같이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처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키에르 케골(Kierkegoard 1813-1855)은 인간을 고슴도치와 같은 실존이라고 설파하였습니다. 이기적인 자아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그들은 누구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실존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추운 겨울을 당한 고슴도치가 서로의 체온이 아쉬워서 그들끼리 접근을 할라치면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찔러 피를 흘리게 되고 그러므로 피차를 미워하면서 영원한 고독의 삶을 살아가듯 인간들 또한 그들의 삶의 양상이 꼭 고슴도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여 사랑하는 듯해도 또 다시 서로를 찌르고 적대시하고 시기하며 돌아서는 모습이 꼭 고슴도치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의 최후는 과연 무엇일까요? 쓸쓸히 혼자서 그렇게 죽어가는 불쌍하고 가려한 외로움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넘치도록 후히 되어 누르며 채워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양이는 주인과 함께 따뜻한 방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온갖 대우를 다 받는데 개는 왜 마루 밑에서 온 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그렇게 문밖에 머무는 존재가 되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고양이와 개가 하루는 주인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여의주를 구해다 주인에게 드리자고 의기투합하고 용궁으로 들어가 여의주를 훔칩니다. 개는 그 깊은 바다를 헤엄치며 등에 고양이를 업고 주인에게로 돌아옵니다. 여의주는 고양이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입에 꼭 물고 있었습니다. 거의 물가에 다 나왔을 때 개가 고양이이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우리 참 수고 많이 했지?" 하고 말입니다. 여의주를 물고 있던 고양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우리 둘 다 목숨을 걸고 참으로 귀한 수고를 잘 해냈어." 하고 대꾸를 했는데 그때 그만 입안에 있던 여의주가 물속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둘이서 전전긍긍하며 아무리 찾아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개는 "할 수 없지 뭐"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고양이는 여의주를 찾기 전에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마음을 다지며 가진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낚시꾼이 물고기를 많이 잡고 다듬는데 어느 물고기의 배속에서 여의주가 나오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양이가 잽싸게 낚아채서 결국은 주인의 손에 갖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고양이는 품에 품고 지내고 개는 마루 밑에서 지내게 하였다고 합니다.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우리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충성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응보의 대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진실 되게 온 몸을 다 내놓고 충성하고 사랑하여 하나님 앞에서도 축복을 받고 사람 앞에서도 사랑을 받으며 사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을 나누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생명 또한 더불어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그 정도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랑은 결국 공연불에 불과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생명이고 사랑의 근본 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진짜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이웃들에게 영원을 살 수 있는 생명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세상없이 귀한 것을 다 나눈들 그 삶이 육신에 국한된 것이라면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고 생명을 전하여 온 천지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쳐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생명 그 자체라고 선포해 주셨던 것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비록 자신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었습니다.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나누어야 할 최대의 생명은 곧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들에게 우리들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나누게 될 때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을 그들에게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주라"고 하시는 숨은 깊은 뜻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고 백인들이 미국을 점령하게 되었을 때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원주민들은 엄청나게 죽고 또 변두리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인디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 바닷가에는 인디언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들을 외견상으로는 특정지역을 지정해 주고 정부의 예산으로 보조도 해 주며 매우 잘 섬기는 것 같지만 그 지역을 벗어나면 그 어떤 혜택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그들을 격리시켜 놓은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선교하는 "사랑군대 선교회"가 북미주캐나다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모형제들을 백인들에게 잃어버리고 딸들은 그들의 노리게가 되어버렸으며 자신들 또한 특정지역으로 수감되어 있는 생활을 하는 그들의 가슴에는 숱한 분노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고 예수님의 참 생명을 전하여 주어서 그 분노에서 자유하게 해 주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심어주는 선교사역은 곧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그 이상의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한 그들은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증오의 대상이었던 백인들을 용서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생명을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용서"입니다. 참 생명을 가진 자들은 육신적인 그런 일들 때문에 예수님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힘을 다해 먼 곳에는 선교하고 가까운 곳에는 전도하며 특별히 우리 교회 30주년을 앞두고 "동행 2014"이란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근본적인 취지는 바로 이처럼 이웃들에게 참 생명을 불어 넣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물과 이 세상의 축복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친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시급한 것도 없고 이 보다 더 값진 것 또한 없습니다. 우리 비록 부족하고 전도와 선교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순종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참 생명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도록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진짜 신자는 무엇이 되었든 지간에 고귀한 것을 아낌없이 이웃들에게 나눌 줄 아는 자입니다. 반대로 제아무리 잘 믿는 척 해도 이웃들에게 나누지 못한다면 그는 여전히 이기적인 자요 자기밖에 모르는 자로 참 신자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참 신자를 만들어 내시기 위해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주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들이 귀하게 여기는 재물을 내 놓고 나누어야 하겠고 우리들의 몸이라도 내 놓고 헌신해야 하겠으며 심지어는 생명이라도 줄 수 있는 진정한 주는 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우리 주님께서는 몸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모진 고난을 다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만 걱정하고 있다면 누가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는 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삶의 풍성함과 천국에서 누릴 거룩한 상급과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덤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웃들에게 내어주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하게 다시 받는 진정 복된 참 신자로 거듭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7월 27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