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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4년 8월 3일 주일낮설교 (오늘보다 내일을 보라)

2014년 8월 3일 주일낮설교 (오늘보다 내일을 보라)

오늘보다 내일을 보라

8. 3, 2014

本文:사사기6:11-18

說敎:崔 仁 根 牧 師

어느 소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 한 신사가 용감하게 뛰어 들어 건져 내 주었습니다. 그 소년은 너무나도 감사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내 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단 한 마디로 그 소년에게 일침을 주었습니다. "살려 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똑 같이 죄악의 강에 빠져 죽어가던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우리들을 건져내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 주님께서도 그 신사와 같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만한 가치를 가진 삶을 살고 있는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 엄청난 축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귀한 생명을 받았고 온전한 몸을 받았으며 정신이 혼미하지 않고 똑 바른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영육이 지속적으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귀한 환경 또한 허락 받았습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본인 환경이 좋지 못해 물과 공기의 오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고 영혼의 안식처인 교회 또한 온전치 못한 곳을 만나 자신도 모르게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교회 좋은 환경 속에서 이처럼 복을 누리고 있는데도 감사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곱씹어 보면 참으로 깨달아야 할 많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롭던 삶에 미디안이라는 악한 민족들이 공격하여 와서 숱한 고통을 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기드온이라는 인물을 부르시고 준비시키시는 과정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동일한 복된 교훈을 던져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보다 내일을 보라"시는 명령입니다. 과연 우리는 내일의 무엇을 보며 하나님의 기대해야 하겠는지? 계속해서 본문으로 돌아가 말씀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보라!

신앙생활이란 오늘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아 오늘을 잘 살아야 된다고 그릇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정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을 고통스럽게 연단하시고 내일을 평안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음 몇 구절의 말씀을 살펴본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두 말씀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이며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주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대비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복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하고 내일을 위해 살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들을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오늘보다 내일을 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더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기드온 역시나 이해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일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삿6:11-12)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선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씀을 우리들이 그냥 읽고 지나가면 별 일 없이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기드온은 자신의 나라를 쳐들어와 괴롭히는 미디안을 피하여서 아무도 몰래 먹고 살기 위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참으로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라고 부르니 참으로 앞뒤가 안 맞는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진짜 그가 큰 용사라면 초라하게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밀이나 타작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담대히 나서서 젊은 청년들과 뜻이 있는 애국자들을 규합하고 자신의 나라를 짓밟고 있는 미디안을 대적하고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찌하여 이렇게 비참하게 숨어서 먹고 살기 위해 밀이나 몰래 타작하고 있는 이러한 개인주의자요 이기주의자인 기드온을 향하여 "큰 용사"라고 부르고 계시는가?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들과 다른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을 보지 않고 내일을 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오늘의 우리들을 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일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이는 모세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도를 닦고 무술을 좀 익혔다고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억압 속에 눌려 있는 자신의 민족을 해방시켜보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만 죽이고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결국은 왕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와 같은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시고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낼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깨달았던 모세는 그래서 한사코 자신은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노라고, 결코 또 다시 바로의 궁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고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을 보지 않으시고 내일을 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한 가지 귀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기드온 같이, 모세 같이 비록 오늘은 초라하고 무지하고 무능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만 하신다면 우리는 더 없이 복된 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의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우리들을 미리 내다보시므로 오늘은 비록 초라하고 부족할지라도 그러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내일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난 7월 중순에 우리는 김영철 선교사님을 모시고 캄보디아의 선교현장을 보고 또 들었습니다. 그 김영철 선교사님은 오래 전 우리교회의 초라한 서리집사였고 잘 되지도 않는 테리야끼를 운영하며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7월 중순 토요일 밤에 저에게 전화를 해 왔습니다. "목사님, 저 김영철입니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내일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뵙겠습니다." 그러더니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오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짜고짜로 땅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부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같이 먹는데 성령님께서 저에게 조용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영철 선교사를 찬양예배 때 한 번 세워보아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웠는데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 이 종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보지 않으시고 내일을 보신다."고 말입니다. 사실 오래 전 김영철 집사와 그 두 남매를 우리 교회에서 제가 다 키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큼 나에게나 교회에 그리 비중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나님은 그를 통해 캄보디아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내일을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주님을 기대하며 그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야 됩니다

비겁하고 비굴하게 자신이나 살아남기 위해 젊디 젋은 청년이 숨어서 밀이나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단 하나의 진실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받은 기드온은 콧방귀를 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렇게도 비참한 일이 개인과 나라에 온통 넘쳐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드온도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께 되물었습니다.

(삿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영원히 이 종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네가 가서 이 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삿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너무나도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초라하게 숨어서 먹고 살기 위해 밀이나 타작하며 자신의 삶만을 염려하고 있는 이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어마어마한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미디안 군대가 무서워 숨어서 타작하는 이렇게도 무능하고 초라한 자신에서 "나가서 미디안과 같이 싸우고 이 백성들을 건져내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한 사람이 목사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목사님, 진짜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아프리카의 그 불쌍한 어린 아이들이 먹지를 못해서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올라 비참하게 죽도록 내 버려두시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랑도 많고 능력도 많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그렇게 늘 설교를 하시는데 미국에서는 너무 살이 쪄서 다이어트 식품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렇게 불쌍한 어린 생명이 죽어가도록 침묵하시는 분이 진짜 살아 계신 하나님이 맞을까요?" 하고 말입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심각하게 그 믿음 없는 신자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먹이라고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셨답니다. 이제 그들을 먹이고 살려야 할 사람은 오늘 우리들이랍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들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기드온에게 "네가 가사 이 민족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라"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네가 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살려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추수 때를 맞은 우리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 종은 이즈음에 종종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 때가 바로 종말의 때고 지금이 바로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되는 때"라고 말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버리시고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그 생명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무엇으로 주님과 교회와 인류를 위해 유익을 끼쳐주고 있는지요? 기드온처럼 자신의 목숨이나 연명하기 위해 적을 피해 밀이나 타작하고 있는 그런 초라한 삶을 살아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으니 담대하게 믿고 일어서는 용기를 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낼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능력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6월 30일은 이렇게 주님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미국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투쟁하던 믿음 좋은 한 기독교인이 크게 승리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하비라비(공예품 생산업체로 3만5천의 직원에 년 매출 40억불)의 회장인 데이빗 그린은 지난 1912년 9월 오바마 케어에서 요구하는 낙태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법정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회사가 오바마 케어에 들지 않을 경우 벌금이 자그마치 하루에 130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린 회장은 그 벌금을 내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이런 보험에는 들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워싱턴 DC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왔는데 그린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종교적 신념으로 낙태를 죄악으로 여기는 배경 때문에 오바마 케어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신앙과 정의가 이긴 멋진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고 연약하지만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연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정의가 승리하도록 친히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사는 날 동안 잊지 말고 담대하고 당당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께서 초라한 나와 함께 역사해 주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바로 이와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의심을 불어 넣습니다. "하나님이 왜 너 같은 형편없는 자와 함께 하실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기드온도 과연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비겁하고 초라하며 이기적인 사람에게 함께 해 주실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히 하나님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삿6:36-40)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 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이리하여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과연 자신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시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성경에 친히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들고 있는 성경은 천 번의 기적으로 보여주시는 기적보다 더 기적이요 완벽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우리들을 도우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드온과 같이 담대하게 일어나 행동하는 멋들어진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강력한 미디안을 치기 위해 전쟁터에 나설 용사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인 수는 고작 3만 2천명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나마도 두렵고 무서워 전쟁터에는 도저히 나갈 수 없겠다는 불안 불안한 사람들을 골라내보니 무려 2만 2천 명이나 되어 다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제 겨우 1만 명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미디인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지금 미디안의 군사는 무려 12만 명이나 되는데 기드온의 용사는 고작 1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또 추리고 추리니 고작 300명이었습니다. 이 300명으로 12만의 미디안을 치러 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이 처한 냉철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기적 같은 역사로 그들을 도우시니 300으로 12만을 다 무찌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삿7:22-23)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에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함께 하겠다"고 하시면 그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확신하여 하나님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신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지성을 더 믿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3백으로 12만을 공격해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인생을 인간 이성과 경험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이기게 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이는 우리 인생들이 아니라 미디안을 무찔러 주셨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진리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미디안 12만을 다 죽일 수도 있고 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못나고 초라한 기드온이었지만 그 사람을 통해 300명을 만드시고 그 300을 통해 미디안을 무찌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 혼자서 기적과 기사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오늘 우리들을, 비록 못나고 가진 것 없지만 지금 예배자로 구별하신 우리들을 통하여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이끌어 가시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처한 환경이 그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기드온과 같은 정신과 믿음으로 당당하게 미디안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기는 자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이 기적을 맛보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월은 빨라 비록 덥고 힘들지만 어느 덧 8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소중한 세월 기드온과 같이 먹고 사는 일에만 투자하지 말고 오늘도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똑바로 만나야 하겠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있으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분연히 일어나서 생명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에게도 기쁨을 드리며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와 사회도 반듯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렇게 멋진 삶 살으라고 오늘도 기드온을 통하여 역사하시던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기적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뭔가 생산적이고 소망찬 삶으로 이 한 달도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라한 우리 자신만 보지 말고 우리들을 통하여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처럼 담대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기적과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처럼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께 예배자로 구별되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의 위대한 은총이 심령마다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8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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