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7일 주일낮설교 (세상보다 천국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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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7 August 20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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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다 천국을 보라
8. 17, 2014
本文:요한일서2:12-17
說敎:崔 仁 根 牧 師
신앙생활이란 우리들이 속해 있는 이 세상을 떠나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지만 육신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것들이 또한 이 세상과 연관되어져 있기에 시시때때로 신앙생활에 제동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섞여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이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외형상으로는 세상을 떠나 주님께 속한 것 같은데 실제적 삶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두 곳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셋째는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오로지 세상에만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마치 가라지가 알곡과 같이 자라고 있으나 추수할 때는 결국 가라지와 알곡이 구별이 되어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 삶의 추수 때는 주어진 삶을 다 살고 죽을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을 때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과 함께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내려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 우리들이 과연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는지? 그 방도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과연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보다 천국을 보라!
이 종은 40년이 넘는 긴 목회 여정에서 참으로 많고 많은 장례식을 치루었습니다. 그 장례식에서 꼭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한 가지 순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인의 약력'입니다. 한 사람의 평생 삶을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종이에 기록되고 또한 사람들에게 보고되는 모습은 참으로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한 평생이 저렇게 요약되고 마는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한 평생이 정녕 그렇게 마무리 되고 마는 것이라면 너무 안타깝고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그나마도 자식을 낳고 돈을 벌고 자기들끼리 사진 찍고 즐거워 하다가 끝나버리는 인생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모든 것을 마치고 돌아설 때 아쉽지 않고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사람은 없는가? 하고 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95세까지 사시다가 돌아가신 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였습니다. 60년이 넘도록 오로지 천국가야 할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시다 천국으로 가신 그 목사님의 장례식은 참으로 가슴이 뿌듯하고 은혜가 되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큰 깨우침을 가지라고 귀한 말씀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말씀을 기초로 우리들의 남은 삶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 그 복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보지 말라!
바다에 떠 있는 모든 배들은 물을 이용합니다. 그 배는 물 위에 떠 있지만 물속으로 침몰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풍랑이 일어나거나 사고가 났을 때는 그만 물속으로 침몰하여 끔찍한 일을 만들어 낼 때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그것은 사고 때의 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상으로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 물 위에 떠 있지만 물에 침몰되지 않도록 만들어 지듯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으로 빠져들지 않는 기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이 배를 떠받쳐주어서 목적지에 무사히 가도록 하지만 때로는 그 물이 배를 송두리째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를 만드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발달할수록 배가 물에 쉽게 침몰되지 않도록 좋은 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빠져서 죽지 않도록 영적인 기술을 날마다 개발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것이 바로 결론적인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금하신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정 반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타락한 인생들은 한결같이 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들이 이처럼 세상에 젖어서 살았고 그것이 온 몸과 피와 살에 배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아무리 우리들이 미국에서 잘 살고 성공하고 뭣하나 부족함이 없다할지라도 늘 고국과 고국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우리들이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는 하였지만 우리들은 원래 이 세상에 있었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살았던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이 세상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천국으로 가야 할 구원 받은 백성들이니 다시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무섭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교회요 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시어 모든 것이 다 차고 넘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붙어 있었던 조차 롯에게까지도 임하여서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을 분가시켜 주려고 좋은 곳을 먼저 선택해 가라고 했더니 롯은 망설임 없이 소돔 땅을 차지하고 떠났습니다. 그곳은 그의 눈에 너무 좋은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창13:10-11)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훗날 그에게 올무가 되고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육신의 눈에 좋은 세상을 선택한 롯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창19:23-26)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이렇듯 롯은 모든 것을 다 잃고 아내마저도 잃어버린 채 간신히 딸들과 빈 몸만 의지하고 소돔 땅에서 탈출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들이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결국 다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지나간다"는 말씀은 '일시적'이라는 뜻입니다. 일시적인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정 반대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시면서까지 금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의 할머니가 5일마다 서는 장에 가셨다가 너무나도 달고 시원한 아이스케이크를 사먹었습니다. 그렇게도 뜨거운 여름날에 그렇게도 차고 달고 시원한 것을 처음 본 할머니는 혼자 먹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손주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주들에게 주려고 손주들 수만큼 아이스케이크를 다섯 개를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 신기한 것들을 손주들에게 주려고 장바구니를 열었는데, 그곳에 분명히 있어야 할 아이스케이크는 간데없고 꼬챙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처럼 잠시 잠깐 후면 없어져버릴 아이스케이크를 붙들고 있지 못하도록 오늘 강력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수제자 디모데에게 오늘 하나님과 꼭 같은 말씀으로 부탁하고 권면하였습니다.
(딤전6:8-12)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고 말입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대신해 주었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때 사도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인생이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인데 이렇게 세상에 빠져서 세상에서 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도 성경에 그들의 이름을 남기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경고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양은이파의 조양은씨를 잘 압니다. 인생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상을 청산하고 남은 삶은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회개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하고 그것을 간증하며 전국을 돌았지만 결국은 그 세상을 버리지 못해 또 다시 폭력과 돈과 세상으로 낙을 삼다가 결국은 또 다시 원점인 감옥으로 되돌아 간 사실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은 그렇게도 한 때는 온 세상을 다 자기 손에 쥐고 흔들다시피 한 조양은씨는 보석금조차 마련하지 못해 감옥에서 나오지를 못한다고 하니 격세지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도라고 불리울 정도로 신출귀몰했던 조 모씨도 손을 씻고 주님께로 귀의했다고 간증까지 다니며 유명세를 탔으나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도적질을 하다가 붙잡히는 해프닝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모든 것이 부질없이 다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세상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또한 실감하게 됩니다. 마치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끊지를 못하는 것과 같이, 도박은 패가망신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이 이 세상에 발 담그고 사는 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가지 팁을 주시고 계십니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결국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방증입니다. 우리는 매우 강한 것 같아도 매우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이든, 육적이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천국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포해 주십니다. 이 세상을 우리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원해도 결국은 한 순간에 머물다 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영원한 것을 원한다면 오직 한 가지 길밖에는 없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지루하고 때로는 너무 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70-80년의 인생이란 우리 인간 편에서 하루살이를 보는 것과 같이 짧고도 허무한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그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모세는 단언해 두었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신 바와 같이 우리는 오직 우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면서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경을 덧입고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아 누리는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꺼번에 양 옆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그렇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삶이 동시에 두 가지를 다 누릴 수 없도록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세상의 모든 것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나타내는 그런 삶은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영원한 것과 하나님의 뜻은 이룰 수 없고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영원을 사모하게 되면 이 세상의 것들은 가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지나나고 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영원하니 그 길을 택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뜻을 귀하게 이루어간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루터교 목사인 벤자민 슈몰크 목사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당시 구라파의 신교와 구교의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무리들을 위해 노심초사 목회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의 여파로 도심지에서는 천주교가 차지하고 개신교는 교외 밖에서만 목회가 가능하여 시골의 36개 마을에 단 한 개만 허용된 루터교회에서 세 번씩이나 풍을 맞으며 절뚝거리는 다리를 달래며 먼 곳까지 매일 같이 심방으로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며 목회를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과 함께 먼 시골동네에 심방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불이나 집은 흔적도 없이 다 타버리고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여야 할 두 아들이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란 슈몰크 부부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잿더미를 뒤집으며 아들을 찾았는데, 두 아들이 형체도 알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탄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가슴으로 새기면서 시를 지은 것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 431장의 가사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절박한 고통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뜻을 찾고 맡기는 삶이야말로 영원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가능할 수 있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기에 그 때는 비록 힘들고 어려웠어도 끝내 이처럼 역사에 길이 남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위대한 삶을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너무 육신에 치우쳐서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고 좀 더 가슴을 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원을 바라보고 오늘을 접을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인생이 짧고 허망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겪으며 깨달았던 모세는 그래서 육신적으로 유익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허망함을 또한 온 몸으로 겪어보았던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유익하던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버렸던 것입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도 이처럼 귀한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기대하고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보다 더 고귀한 천국을 바라보며 그렇게 영원을 살아가는 준비를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짧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이 땅에 남기고 갈 가장 소중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름의 마지막 달 8월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설립 30주년의 복된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귀한 계절에 우리들도 뭔가를 결단하고 신선하고 새로운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결단하지 못하면 결국 육신의 종이 되어 이 세상만 바라보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무더운 여름을 이기며 영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귀한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을 위한 성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매 주일마다 내려주시는 이 아름다운 말씀들을 헛되이 듣지 말고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육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그런 아름다운 변화를 우리 모두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결국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도 때가 되면 다 지나가고 신령하고 영적인 것들만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귀한 성도 여러분들에게 이처럼 영원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는 놀라운 변화와 결단이 있어지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8월 1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