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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4년 9월 21일 주일낮설교 (위대한 선택!)

2014년 9월 21일 주일낮설교 (위대한 선택!)

위대한 선택!

9. 21, 2014

本文:여호수아24:1-14

說敎:崔 仁 根 牧 師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정몽준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에게 시가보다 3배 이상이나 더 비싼 10조 5,500억에 팔렸습니다. 3조원 가량의 현싯가로 내 놓았으나 삼성과 현대가 맞붙어 경합을 벌이므로 경매에 들어갔는데 현대가 3배 이상의 가격을 써냄으로 삼성을 이겨 현대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에서 현대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개발할 것으로 결정함에 따라 인근 부동산 시장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현대차그룹의 통합 사옥이 들어서는 데다 잠실종합운동장 부지 등과 연계해 종합 전시·컨벤션을 결합한 국제 교류 복합 단지로 탈바꿈할 경우 서울의 신흥 개발 축(軸)으로 부상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큰 정몽준회장의 이와 같은 선택이 과연 한국과 현대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는지 재계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크고 작은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선택을 통해서 인생이 복되고 행복하게도 되고 반대로 불행하고 비참하게도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버리고 돈을 선택했지만 그 돈으로 행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택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더니 역사에 길이 남는 놀라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영원을 좌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옹졸한 육신에 사로잡혀서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조금 더 비범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또한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값지고 귀한 것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소중한 진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여리고성에서 기생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여인이었지만 순간의 소중한 선택으로 그의 일생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까지도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시 여인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도 않던 그런 시대에 성경에 떡하니 이름을 올려놓는 놀라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도대체 그녀는 그 당시 무엇을 선택하였기에 이처럼 보아스를 낳고 성경의 그 위대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우리 함께 이에 대한 해답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넓은 가슴으로 하나님을 품고, 사는 날 동안 순간순간의 선택에 성공하여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선택!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대군들은 가장 중요한 관문인 여리고성을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철옹성 같은 여리고를 점령하기 이전에 정탐꾼들을 여리고성으로 몰래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여리고성의 왕에게 들키게 되었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성에서 기생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라합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한 라합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정탐꾼들을 왕에게 고하고 왕의 신임과 상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왕을 따돌리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어 여리고를 정복해 들어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부터 보호함을 받고 가족들을 구원시켜 낼 것인가? 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후자를 선택하였습니다. 비록 정탐꾼들은 낯설고 왕은 자신과 더 가까웠지만 현실의 상황과 미래를 내다볼 때 정탐꾼들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미래에 훨씬 더 유익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과연 정확한 상황분석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똑바른 선택을 잘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부모형제를 구원해 내고 위대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자손만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들도 많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어리석은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가룟 유다와 같이 망하는 내일을 살지 않도록 오늘 라합의 지혜와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예배자로 구별하신 우리들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은혜를 사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유익보다 내일의 유익을 보라!

기생 라랍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오늘의 유익보다 내일의 유익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탐꾼을 왕에게 잡아가야 백성의 도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 또한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어려서부터 간첩을 잡으면 엄청난 상급을 받게 됨을 잘 배우고 또한 알고 자라 왔습니다. 하지만 라합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을 따돌리고 간첩들을 숨겨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녀는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예리한 삶의 경험과 지혜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분석한 현실은 너무나도 정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분석한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2:8-11)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비록 라합은 기생이었지만 상황분석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식견과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여리고성의 생명이 다 된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실례로 그녀는 역사적인 사건을 증거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애굽과 같은 강한 나라라도 하나님께서 순간에 엎어버리시고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갈라서까지 인도해 내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 막는 자는 상대가 그 누구였던 지간에 다 죽었다는 사실을 시혼과 옥의 멸망을 근거로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눈앞에 있는 자신의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더 높이 평가하고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정탄꾼들을 과감하게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있는 미래와 천국을 선택할 줄 아는 믿음과 지혜와 식견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계시는 분은 이 땅에 있는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룻기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선택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식 하나 없이 남편이 죽자 그 시어머니이신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러 자기들의 장래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선택해 가도록 강요합니다.

(룻1:12-14)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여인이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르바는 결국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의 내일을 위해 떠나갑니다. 하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선택합니다. 비록 늙은 시어머니이고 돈도 없고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런 유익도 소망도 없었지만 룻은 한사코 나오미를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두 여인의 미래는 하늘과 땅으로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오미를 버리고 자신의 길로 떠나갔던 오르바는 그 순간부터 성경에서 그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룻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여인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없는 나오미를 선택하였으나 그 나오미가 결국 축복의 원조가 되었고 그녀로 인해 보아스를 만나 재혼에 성공하였으며 그 보아스를 통해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는 역사역인 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위대한 인물로 영원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이렇게도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슴에 모신 성도라면 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육신은 눈앞에 있는 유익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자로 구별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처럼 복된 믿음으로 멀리를 내다보고 값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라합과 같은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실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고 우매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완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에게서 귀한 선택의 기초가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은 누가 소개해서 귀하게 보이거나 능력이 엄청나신 것으로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스스로 체험하고 깨닫고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같은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감히 낮고 천한 우리 인생들이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주인공인 라합이 그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수2:8-10)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라합은 여기에서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이러 이러한 일들을 들음으로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라합이 표현하고 있는, "들었음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들음으로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부지런히 교회에 나오고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많이 있지만 일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첫발걸음입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세상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계속 듣지 않는다면 그는 세상에서는 잘났는지 모르나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와 모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작은 자신의 육신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으며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하시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순간과 한 세상에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역사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실 때 다음과 같은 표현을 즐겨하셨습니다.

(출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이처럼 한 시대에만 머물러 계시는 지나간 시대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처럼 세대간을 연결하시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역사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라합과 함께 역사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가지고 인생의 소중한 선택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멀리를 내다보고 라합과 같이 지혜롭게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은 죽을 때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엄숙히 유언하였던 것입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투명한 우리들의 미래를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대의 비결은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포항에 가면 선린병원이라는 병원이 있습니다. 그 병원의 원장이 이건오박사인데 국민일보에 게재된 그 분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시골 동네에서 친구의 인도를 받고 교회에 나갔는데 그 때부터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 결국 의사가 되어 하나님의 손과 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는 교회에 처음 나갔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그 성경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한 밤을 꼬박새우시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도무지 알지 못했으나 이처럼 주야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음도 생겼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에 다 밝혀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성경책을 읽고 들으면서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라합처럼 이건오박사처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도 그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미래를 올바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른 선택을 위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선택하고 행동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육신은 자석과 같이 현실에 안주하고 웬간해서는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들여다보면 라합의 용기 있는 놀라운 결단을 보게 됩니다.

(수2:2-6)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신다면 라합의 용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이 친히 그 집에 들어간 정탐꾼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정탐꾼들을 집에다 감추어 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무서운 결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정탐꾼들을 자신의 집에 감추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추적조차 못하도록 멀리 내 몰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녀는 과연 어디에서 이처럼 무서운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본문은 그녀의 이와 같은 용기의 출처를 두 가지로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하나는 정탐꾼들이 믿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어차피 여리고는 망하게 되어 있고 그들의 미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내일을 향한 진정한 구원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목숨을 건 모험으로 용기를 내어 정탐꾼들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석의 증거로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수2:12-13)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이 두 말씀은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 준 라합의 결단을 이끌어 낸 놀라운 비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확신에 찬 결단을 내리고 내일의 우리들과 우리들 가정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비상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우리들의 내일은 참으로 불투명하고 불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유약하고 무능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강하고 담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와 아이성을 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거듭 거듭 이와 같은 용기를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수1:6-7)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엄청난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처럼 강하고 담대한 결단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와 같은 성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로 그 장본인들입니다.

(단3:14-18)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참으로 놀라운 결단이요 용기요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들과 똑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일진데 그들은 어떻게 이처럼 목숨을 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위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있었고 또한 그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강력한 믿음과 용기와 결단을 할 수 있는 올바른 신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일 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불 속에서도 친히 건져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복된 30주년설립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고 처음으로 시작하는 귀한 주일에 우리는 내일을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믿음의 원천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정확한 판단력과 믿음, 그리고 불타는 용기를 가지고 적군을 숨겨주고 자신도 가족들도 또한 자신의 먼 미래도 보장 받았던 라합의 이야기는 두고도 잊지 못할 우리들의 귀한 영적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고리로 엮여 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도 복되고 내일도 희망에 넘치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의 큰 뿌리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볼 수 있는 안목과 우리들의 삶을 친히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관한 분명한 식견과 마음을 결단하고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멋들어진 선택의 기본인 용기가 있어야만 됩니다. 라합은 이와 같은 놀라운 준비로 유사시에 구원 받는 위대한 반전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성경에 기록되는 놀라운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준비된 믿음과 삶으로 라합과 같이 역사에 길이 남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자로 구별되어 나와 복되고 귀한 말씀을 받고 있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라합과 같은 아름다운 신앙으로 불투명한 내일을 희망과 소망이 넘치는 축복의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9월 2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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