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2일 주일낮설교 (위대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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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2 October 20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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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순종!
10. 12, 2014
本文:사무엘상24:1-7
說敎:崔 仁 根 牧 師
인간은 동물과 달리 그 존재 자체가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 곧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관계는 결국 "순종"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이라는 고리가 끊어지면 결국 관계도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고 만사형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고 그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유지를 잘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 에덴동산을 통째로 인생들에게 무상으로 불하하시고 오직 하나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따먹지 못하도록 금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어기고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만 하였고 사는 날 동안은 땀을 흘리고 수고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인생들의 짧고 허망한 삶의 본질인 것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와 같은 불순종의 어리석은 삶을 청산하고 순종하는 성도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풍성한 복을 누리는 가장 분명한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순종!
성경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는 사람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고 반대로 심판을 받아 망한 사람들은 또한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 마음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극명한 사실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고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을 누리는 반열에 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찬 듣고 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우뚝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순종이란 그만큼 복된 삶의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삶의 근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선지자로 꼽히는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순종과 불순종에 관한 명언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복된 인생의 가장 숨은 비밀로 순종을 꼽고 그렇게 이 땅에서도 순종함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엡6:5-7)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삶의 덕목은 오직 "순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순종적인 한 사람을 찾아 그의 아름답고 복된 삶을 본받고 우리들도 그와 같이 복을 누리며 사는 행복한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사모해 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잘 듣고 순종하여 소중한 삶의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진정 복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을 대신 할 가장 소중한 분들을 우리들 앞에 두셨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십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부모님들의 사랑과 축복을 외면한 채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낳고 기르시고 교육시키시며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위해 쏟는 그 정성과 사랑은 가히 우리 작은 입술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부모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님께 순종하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삶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이 종은 우리 교회에서 참으로 육신적으로 이 종을 잘 섬겨주던 한 집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수집사도 시키고 심지어는 장로까지 시켰습니다. 그런데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어리석은 종은 그것이 진실한 그 사람의 믿음인 줄 잘 못 알고 속은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우연찮게 그 장로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임종이 가까워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나가 생전 처음 가보는 지방의 작은 도시로 물어물어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제가 그 장로의 친어머니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친 어머니는 모처에서 살고 있는데 죽기 전에 그 아들을 보고 싶어 하고 화해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는지? 그 친 어머니를 만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장로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자기 친 어머니와 화해를 할 줄 알고 기대하고 권면하고 통사정까지 해 보았으나 막무가내입니다. 목사님, 그래도 장로까지 되었으면 딴 사람도 아니고 제 어미하고는 화해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죽기 전에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편하게 눈을 감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그런데 끝내 그 장로는 친어머니와 화해를 하지 않았고 결국은 그 아름다운 소원 하나 이루지 못한 채 그 다른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언하건데 이런 사람은 장로는커녕 신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셨고,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되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는데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두 어머니의 그렇게도 간절한 소원조차 묵살하고 원수로 남아 있다면 그 속에 어떻게 성령님이 거하신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역하고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신자는커녕 사람도 되어 있지 못한 악한 심령이니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을 보면 그는 참으로 가슴이 따뜻한 순종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부모님을 순종하고 형제를 사랑한 인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입증할 만한 다음의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삼상16:10-11)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아들 여덟 명 중에 오직 들에 나가 양을 치는 아들은 막내인 어린 다윗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다윗은 왜 혼자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버지 이새의 말씀을 순종하여 거기에 있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상17:17-18)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삼상17: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의 명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싸우려고 고함하며
라는 말씀 속에서도 다윗은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 一言半句(일언반구)도 없이 순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그의 형들이 다윗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못마땅하게 여겨 왔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삼상17:28)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이는 다윗이 왕으로 간택되고 어리지만 하나님 앞에서 굄을 받고 있음을 안 형들의 질투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다지 괘념치 아니하고 아버지 이새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양을 치라시면 들에서 양을 치고 전쟁터에라도 갔다 오라면 두 말 않고 순종하여 전쟁터에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크게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게 된 근본된 배경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과 은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다윗과 같이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하고 섬기는 자세부터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불순종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語不成說(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으로 원수라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더욱 위대한 모습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죽이려고 용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추적하는 왕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잘 못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을 괴롭히는 적대군 블레셋의 골리앗을 쳐 죽인 것과 목숨을 내 놓고 전쟁터에 나가 대적들을 죽이고 나라를 평안하게 만들어 놓은 공 외에 아무 것도 왕을 위해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왕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시달릴 때 수금을 켜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는 소중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하고 좋아하는 것 때문에 질투심과 시기심을 느낀 사울이 다윗을 그렇게도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삼상18:7-9)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사력을 다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잔인한 다윗 살육전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골리앗도 이기고 백전백승하는 다윗에게 칼로 사울의 옷자락을 벨 수 있는 정도였으면 백번이라도 죽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다윗은 역시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오직 단 하나,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상24:4-6)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는 그와 같은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결국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두 번씩이나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헤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끝까지 사울을 죽이기는커녕 다치게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는 악랄한 사울이었지만 끝까지 그를 헤치지 않았고 나중에 어리석은 졸개가 그를 죽이고 다윗이 기뻐할 줄 알고 승전보를 들고 왔을 때에도 다윗은 사울을 향한 한결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삼하1:11-16)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다윗은 남이 죽였을지라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울을 죽인 자를 죽일 만큼 사울에 대한 그의 진심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고 사울의 왕위를 다윗에게 주시고 평생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복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신의 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겨 순종하였습니다
다윗이 태평성대를 누릴 때 그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 건축에 마음을 두고 이 일을 이 땅에 이룩해 놓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전쟁터에서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흐렸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십니다.
(대상17:1-4)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악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고하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한결 같은 마음과 충정으로 그와 같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 쏟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범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것을 말리시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하시니 무관심 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품은 사랑과 충성심은 더욱 뜨거웠고 결국은 그 정성을 삶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상29:1-5)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족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금 3천 달란트는 오늘의 온스로 환산하면 3백 60만 온스이고 은 7천 달란트는 8백 40만 온스이니 가히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재물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이렇게도 아낌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더 무슨 말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세대를 위해 또한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위해 이처럼 아낌없는 헌신으로 일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다윗을 축복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친히 이와 같은 다윗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내 주셨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행13:21-23)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다윗의 이와 같은 아름다운 순종을 "위대한 순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森羅萬象(삼라만상)의 축복 받은 열매들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10월 중순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겠는지? 오늘은 "위대한 순종"이라는 재목으로 다윗의 순종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는 오늘 우리들과 다른 그 무엇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온갖 핑계를 다 동원하여 자신의 유익과 소욕만을 생각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그만의 삶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는 다윗의 이와 같은 멋들어진 신앙의 중심축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우리 부모님을 순종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만 순종이 아닌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모든 축복을 하나님께 온전히 되돌려 드리는 일에도 인색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드는 멋들어진 성도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귀한 날 하나님 전에 나아와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 말씀을 순종함으로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객관성을 지니는 아름답고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10월 1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